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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영일목사

[스크랩] 요21:15-17 주님을 사랑한다면

요21:15-17 주님을 사랑한다면

 

 

한 주간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문제를 위해 더 기도하며 저를 보았습니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고백했습니다.

 

아직도 사랑이 부족한 목사입니다.

神前 박영일 목사

 

삶에 지쳐

신음하는 성도들을 보고

잘잘못을 말하니

아직도 사랑이 부족한 목사입니다.

 

부족하다

알아주라 하면

마음이 좁혀지니

사랑이 부족한 목사인가 봅니다.

 

성도가 아파하면 목사도 아파야 하고

울면 같이 울어야 하는데

기도만 하고 있으니

사랑이 부족한 목사입니다.

 

지금도 내 안에

긍휼지심보다 시비지심이

더 많으니

사랑이 많이 부족한 목사인가 봅니다.

 

기독교는 사랑입니다. 위로는(수직) 하나님 사랑, 옆으로는(수평) 이웃 사랑, 사람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내 몸보다 더 사랑해야 하고 이웃은 내 몸 사랑하듯 사랑해야 합니다. 기준은 ‘나’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셔서 주님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압니다. 2016년에는 우리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라는 소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마을에 드넓은 초원이 있고, 진한 갈색의 멋진 종마(좋은 품질의 말)가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그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와 종마를 사랑하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멀리 출타하면서 소년에게 말을 부탁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종마를 사랑하는지, 또 그 말이 자기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이제 종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종마가 병이 나고 만 것입니다. 밤새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종마에게 소년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원한 물을 먹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눈물겨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종마는 더 심하게 앓았고,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는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놀란 할아버지는 소년을 나무랐습니다. “너는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랐다는 말이냐?”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후 말했습니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이 소년이 말을 사랑했지만, 말을 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 찬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1. 내 마음에 주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성막을 지어라 명하셨습니다. 광대한 우주도 담을 수 없을 만큼 크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 그 작은 성막에 오셔서 거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저 사랑하시기 때문에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신 것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과 함께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도 네 자녀와 같은 지역 가까이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니까 주님도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신 줄 아십니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해 내 안에 오셨습니다. 백부장처럼 크신 하나님께서 내 집에, 내 몸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해야 마땅한데 사랑하셔서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 안에 오셨습니다. 언제나 주님 안에, 그 중심에 내가 주인공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 안에는 주님이 계실까요? 주님과 늘 함께 하시기 위해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시고 기도와 예배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느헤미야 안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조국이 있었고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지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 일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체크 한 번 해 보세요.

주님이, 섬기는 교회가 내 안에 있습니까?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예’로 답을 하신 분들은 사랑한 것입니다.

‘아니오’로 답을 하신 분들은 사랑이 부족하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최진사댁 셋째 딸’이라는 노래 아시지요? 칠복이가 예쁘다고 소문난 최진사댁 셋째 딸을 사랑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용기 내어 최진사댁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요즘 보기 드문 사윗감이 왔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결과 아십니까? 최진사네 셋째 딸이 사뿐사뿐 걸어와서 절을 하였습니다. 장가를 들어 사위가 되었습니다. 먹쇠, 밤쇠가 뭐라 한다고요 ‘일곱 개 복중에서 한 개가 맞았다’라고 합니다. 칠복이 니까요.

 

건너 마을의 최진사댁에 딸이 셋 있는데-

그 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아따 그 양반 호랑이라고 소문이- 나서

먹쇠도 얼굴 한번 밤쇠도 얼굴 한번 못 봤다나요-

그렇다면 내가 최진사 만나 뵙고 넙죽 절하고

아랫마을 사는 칠복이 놈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서

염체 없지만 셋째 따님을 사랑하-오니

사윗감 없으시면 이 몸이 어떠냐고 졸라봐야지

 

다음날 아침 용기를 내서 뛰어 갔더니만

먹쇠란 놈이 눈물 흘리며 엉금엉금 기면서

아침 일찍이 최진사댁의 문을 두드리니

아! 얘기도 꺼내기 전 볼기만 맞았다고 넋두리하네

그렇지만 나는 최진사네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요즘 보기 드문 사윗감이 왔노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서

육간대청에 무릎꿇고서 머리를 조아리니

최진사 호탕하게 껄껄껄 웃으시며 좋아하셨네 하! 하! 하!

 

아! 웃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최진사 양반 보이지 않고 구경꾼만 모였네-

아차 이제는 틀렸구나 하고 일어서려니까-

웬걸! 최진사네 셋째딸이 사뿐사뿐 걸어와서 절을 하네요-

얼시구나 좋다 지화자 좋을시고 땡이로구나

천하에 호랑이 최진사네 사위 되고 예쁜 색시 얻으니

먹쇠란 놈도 밤쇠란 놈도 나를 보-면은

일곱개 복중에서 한개가 맞았다고 놀려대네요 놀려대네요

장가를 들었네요 장가를 들었네요

미인을 얻는 방법? 용기입니다.ㅎ 용기가 미인을 얻습니다. 그 용기는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방법을 사도바울이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빌1:3-7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사랑하니까 바울 안에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니까 생각하고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늘비전 성도 여러분, 항상 내 마음에 주님을 두시고 사랑하시고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기도로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2. 주님을 위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니까 다 참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희생을 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해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낮아져 오셨습니다. 죽기까지 다 내주셨습니다. 주님의 희생은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사53:5절입니다.

그가(예수님이) 찔림은 우리의(나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예수님이) 상함은 우리의(나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예수님이)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나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나는) 나음을 받았도다

고후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나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예수님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나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희생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사랑한다면 양을 먹이고 치는 희생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십니까? 2016년에는 행함, 희생으로 주님을 사랑합시다. 나의 밀알 같은 희생으로 섬기는 주님의 교회가 부흥, 성장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도 나를 위해 목숨을 주셨는데 나도 주님의 교회를 목숨 걸고 사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수 만개의 교회들 중 내 목숨 걸고 사랑할 만한 교회 하나 없다면 슬프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합시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산 교회를 사랑합시다. 위해 기도하시고 희생을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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