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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0:24-25 2016.2.7(일) 격려가 필요합니다

10:24-25 2016.2.7()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 만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항상 같이 있어 평소에 많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저 분이 내 어머니, 아버지가 되고, 어떻게 저 아이들이 나를 닮은 아들, 딸이 되었는지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 많은 사람중에 왜 그가 내 형제가 되고 그 많은 여자중 왜 그가 내 자매가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신비합니다. 짧은 영상 하나 보겠습니다. 미국의 한 쌍둥이 이야기입니다(영상). 어떻습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쌍둥이, “동생이 아파 힘이 없을 때 언니가 팔을 뻗어 안아 주었더니 살아나 지금까지 잘 자란다”.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가족의 사랑입니다. 이들이 서로 가족인 것은 알았을까요? 그럴리 없습니다. 몰랐어도 둘이 함께 있어서 서로 힘이 됩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아니라 입양된 가족도 위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 한 한국인 교수가 오래전에 미국여자와 결혼했습니다.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어서 한국에서 여자 아이 하나를 데려와 입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허공만 바라봅니다. 이 아이를 고쳐주기 위해 부모가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바이올린을 하면서 숨겨진 천재성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7살 때 예루살렘 심포니와 협연하고 12살 때 미국 카네기홀에서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KBS와도 협연했습니다. 제가 연주회에 참석했는 데 연주회 기간 내내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이의 바이올린 실력때문이었지만 그것보다 그 아이를 데려다 가족으로 키운 부모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가족이 없었더라면 버려졌을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 가족이 없었다면 바이올린은 그만두고 그가 가진 잠재력, 가능성, 다 묻혀 있었을 아이가 한 가정의 가족이 되어 사랑받고 격려받아 놀랍게 성장한 이야기, 그 가족의 위대함 때문에 눈물이 난 것입니다.

 

오늘 설을 맞이하여 우리는 가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정의 축복은 무엇인가?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가? 오늘 히브리서 말씀은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을까요?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에 가족의 세 가지 의미가 나타납니다.

 

가족은 함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라,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그리고 모이기를 힘써라. 이 중에서 내용상 가장 먼저는 모이는 것입니다. 이 모인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가장 좋은 특징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결혼주례때마다 그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결혼식때 서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서약할 때 이렇게 묻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아플 때나 건강할 때 늙거나 병들 때에도 함께 하겠습니까?” 결혼한 분들은 다 그렇게 서약했던 분들입니다. 요즘 어떤 젊은 부부가 혼인서약을 이렇게 썻습니다.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한 서약입니다. “우리 결혼하면 당신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놔도 뭐라하지 않을게요. 대신 뒤집힌채로 빨테니까 뒤집어서 신어요. 일요일 날 당신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일부러 깨워서 쓰레기를 버리라고 심부름 시키진 않을께요. 대신 낮잠에서 깨면 밀린 집안일, 설거지는 도와줘야해요. 바쁜 회사생활이지만 취미생활 하나 정도는 같이 하도록 해요. 또 백화점을 백바퀴 돌지언정 충동구매는 하지 않을께요. 연하라고 절대 핀잔 주지않고 항상 존경하며 살께요. 사랑합니다”, 또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서약했습니다. “우리 결혼하면 치약은 중간부터 눌러서 안짜고 꼭 아래쪽부터 짤거예요. 같이 외출할 때 당신이 화장하고 옷입느라 시간이 걸려도 현관에서 짜증부리지 않을거고 일요일날 당신이 오전 내내 자느라고 밥안주면 난 알아서 짜장면 시켜먹을께요. 양말 두 켤레 사는데 백화점을 다섯 번 돌아도 화내지 않을께요. 또 과음해서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절대 바람피는 짓은 안할께요.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괜히 결혼했다고 짜증부리면 당신 도데체 뭐냐고 화내기보다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실천하겠습니다. 항상 배려하며 살께요. 사랑합니다”. 한마디로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함께 먹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체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초등학생 아들이 크게 잘못해서 아빠에게 눈물이 혼났습니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식탁에 앉아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밤은 먹어야지. 오늘 잘못한 것도 있고 하니 네가 기도해”. 아들이 갑자기 기도하려니 생각이 안 났습니다. 이렇게 한 마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원수와 함께 밥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식사는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외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혼자 먹는 사람입니다. 혼자 먹으면 맛도 없고 건강에도 안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혼자 먹는 데 잘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먹으면 바쁘기도 하고 누가 볼까 해서 빨리 먹는 패스트푸드를 먹습니다. 그러면 맛은 없으면서 오히려 살만 찝니다. 그런데 여럿이 먹으면 잘 먹으면서도 살은 안찝니다. 좋은 음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음식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차리느라 수고는 했지만 그 속에 사랑과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좋은 음식입니다. 며느리 여러분, 어머니 여러분, 수고스럽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내가 만든 음식으로 가족들을 행복하게 나도 기쁘면 감사하지 않습니까? 내가 아직 젊어서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대접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여자로 태어나 음식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남이 해준 것 먹는 것보다 내가 해서 먹이는 것이 보람있지 않습니까? 음식을 만들면 좋은 것은 남으면 집에 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함께 먹는 식탁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한 것이 송아지잡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씻기기 전에 송아지부터 잡았습니다. 사랑은 늘 같이 먹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오면 좋은 것이 함께 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함께 있는 가족은 다만 먹기 위해서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화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은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몇 년전에 T.V 개그 프로그램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셋이 마주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밥묵자”. 그리고 침묵이 한참 이어집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동민이 너, 요즘 너 어디 갔었어? 통 안보이데”.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에, 수학여행 다녀왔슴더”. 아버지는 아들이 수학여행 다녀온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여려분의 가정은 대화를 많이 합니까? 초등학생 1/3은 방과후 집에 가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부부의 30%는 거의 이야기를 안하고 산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작년 여성가족부에서 낸 통계를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 부모와 자녀가 하루에 얼마나 대화하나? 하루 30분 미만 대화가 42.1%, 1시간 미만이 45.2%였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와 하루에 많아야 1시간, 대부분 30분 미만 대화한다는 것입니다.

 

대화의 내용도 문제였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공부문제, 의식주문제 생활문제였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앉아 요즘 어떻게 지내니?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니? 요즘 사회적 잇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 이런 대화는 거의 없습니다. “밥먹었니? 밥먹어라. 옷잊었니? 옷 입어라. 학원갔니? 학원가라”. 주로 단답형 대화가 주였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장속의 새가 말한다. 당신은 내 먹이가 충분한지 살피지만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우리 부모의 주된 관심은 자녀가 먹고 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너 밥먹었니?”하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배고픈 시절에는 그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새장에 갇힌 새에게 중요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새에게 먹이가 있느냐 없느냐 보다 지금 자유로우냐 갇혀 있느냐가 더 시급합니다. 자라나는 자녀들은 많은 문제로 힘들고 억눌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부모는 항상 밥먹었니? 박먹어라만 계속한다면 대화가 될까? 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이 말하고 나는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자신을 개방합니다. 스티븐 코비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말을 들을 때 듣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기 위하여 듣는 경향이 있다”. 그렇습니다. 대답하기 위해 듣지 말고 듣기 위해 들어야 합니다. 1:19입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입이 하나요 귀는 둘입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2배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함께 있으면서 슬픔을 나누고 함께 있으면서 기쁨을 나누는 곳입니다. 가정에서 조차 눈물을 흘리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 어디에 가서 울까요? 가정에서 조차 웃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 어디에 가서 기뻐할까요? 가족은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은 서로 돌봅니다.

가족의 두 번째 의미는 오늘 말씀 서두에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가족은 서로 서로 볼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매스컴에 난 소식은 이 시대가 서로 잘 돌보지 못하는 시대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엄마가 어린 딸을 던져서 숨지게 했다고 합니다. 어떤 데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 집안에 시신을 유기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마저 방조했다고 합니다. 왜들 이러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누가 부모는 하늘이 보낸 천사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입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의 돌봄을 받고 자랍니다. 부모의 돌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보호하고, 사랑하고, 양육한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는 우리를 안고 업고 얼러 주셨습니다.핏덩이때 부모는 24시간, 365, 한 순간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우리를 돌보았습니다. 자라면서 우리가 나쁜 친구와 사귀는지. 나쁜 일, 나쁜 습관,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돌보았습니다.

 

돌보는 일은 부모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밑으로 동생들이 몇 있었는 데 어릴 때부터 동생들은 네 책임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아침에 학교갈 때 동생들을 데리고 갑니다. 학교에 가서도 동생들이 싸우나 안싸우나 살핍니다. 집에 올 때 같이 와서 씻기고 같이 숙제합니다. 아플 때는 업고 주고 칭얼댈 때는 달랩니다. 그래서 옛날에 자란 형제들은 나이를 먹어도 정이 있습니다. 업어서 키웠기 때문입니다. 제 동생중의 하나는 제가 실제로 업어 키웠습니다. 어릴 때 하도 경기를 많이 해서 무던히도 업고 병원으로 뛰었습니다. 지금 나이가 40이 넘었는 데도 설만 돌아오면 저에게 와서 형님하고 넙죽 세배합니다. 이 동생이 사춘기때 많이 반항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너 어릴 때 내가 어떻게 했는줄 알아?” 하면 금방 , 알았어. 미안해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제가 업어서 키웠기 때문입니다.

 

훗날 목회하면서 , 교회는 이런 곳이구나깨달았습니다. 교회는 먼저 믿는 사람이 나중 믿는 사람을 업어 키우는 곳입니다. 늦게 믿은 동생들은 먼저 믿은 형들을 보고 자랍니다. “. 예배는 저렇게 드리는 것이구나. , 저렇게 기도하는 것이구나, , 저렇게 하나님께 십일조하는구나.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저렇게 대하는 것이구나이것을 배우며 자랍니다. 작년 한 해도 우리 교회 목장에서는 이런 간증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목장 식구 하나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알고보니 중한 병이었습니다. 이 목자가 매일 심방합니다. 자기 사업까지 뒤로 하고 매일 심방합니다. 새벽마다 나와 기도합니다. 정말 애절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하도 애절하게 기도해서 처음 듣는 사람은 자식이 죽는 줄 알았답니다. 한번은 저하고 같이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하고 위로하고 떠나려고 하는 데 그 분은 그냥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안갑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저에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목사님, 목자가 평소에 하는 일이 있습니까? 아플 때 같이 있어줘야죠”. 그 분은 그날 하루 목장식구 돌보려고 직장까지 하루 결근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영적 가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먼저 믿는 분들. 여러분이 업어키운 믿음의 동생들이 교회안에 몇이나 됩니까? 여러분이 등에 업고 고생 고생해서 키워 믿음이 자라고 세례받고 집사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교회는 영적 가정이요 교인들은 영적 가족입니다.

 

어릴 때 돌봄을 받고 자랏으니 커서는 부모를 돌보아야 합니다. 제가 결혼식때 신랑신부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하면 반드시 부모에게 세 가지를 하십시오. 하루에 한번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일주일에 한번은 부모님께 전화하십시오. 한 달 한번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십시오. 사실 제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이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을 키워도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모시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라”. 가족은 서로 돌봅니다.

 

가족은 서로 격려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세 번째입니다. 오늘 말씀 24절을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했습니다. 가족은 서로 격려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고 선을 행하도록 돌보는 곳입니다. 격려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16:24,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사람은 말 한마디로 죽고 삽니다. 격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윌리엄 아더 워드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썻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당신이 대하는 그대로 그 사람은 자라간다. 아첨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비난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시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격려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격려는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격려 때문입니다. 어릴 때 저는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공부잘한다고 해서 공부를 좋아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항상 저를보고 공부잘한다고 하면서 집안에 인물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서 할아버지 집은 한 200미터 떨어졌는 데 학교에 갔다 오면 거의 매일 할아버지 집에서 공부했습니다. 호롱불을 켜고 공부하던 시절에 하룻밤인가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가 다 탓습니다. 호롱불에 머리가 홀라당 탓습니다. 할아버지가 예뻐해주고 격려해주니까 할아버지집에서 머리 타는 줄도 모르고 공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존 맥스웰의 말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믿어 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한다”.

 

아이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못한다고 해서 잘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어느 학교에서 그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한번은 세 명의 교사를 불러서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들로 뽑혔습니다. 여러분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 90명을 선발해서 맡기려고 합니다. 이 학생들을 한 해동안 잘 지도해 주세요. 아마 놀라운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해동안 열심히 가르쳤더니 학업 성취도가 30퍼센트 이상 높아졌습니다. 연말에 교장 선생님이 세 명의 교사를 불러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맡은 90명의 학생은 사실은 보통 학생들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임의로 선발해 여러분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러자 교사들은 자신들의 교수 방법이 뛰어나 좋은 성과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한가지 더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도 뛰어난 교사들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여러분의 이름의 첫 머리글자를 보고 무직위로 선발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학생들과 교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좋은 교육적 성과를 올렸을까요? 격려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격려. 학생들은 뛰어난 학생들이라는 격려. 여러분이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그 격려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수상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것이 격려의 능력입니다. 하나님도 스스로 격려하는 사람은 격려합니다. 33:22절입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인자를 베푸십니다.

 

설교도 격려받을 때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 이 강단에서 설교했는 했는 데 설교를 조금 은혜가 안되었습니다. 설교를 잘못한 것은 설교자가 제일 먼저 압니다. 교인들이 반응이 없고 나갈 때 얼굴이 어둡습니다. 그날 저도 힘이 없이 제 방으로 들아와 문을 걸어 잠궜습니다. 조금 있는데 누가 노크합니다. 문을 열었더니 어떤 집사님이 웃으며 들어옵니다. ”목사님, 죽좀 쒀 왔어요“.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설교를 죽쒔는 데 무슨 죽?“ 그래서 물었습니다. ”무슨 죽이요?“ 했더니 집사님이 말합니다. ”꽤죽이예요“. 그러면서 말합니다. ”목사님, 오늘 목시님 설교에 은혜받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설교 때문에 실망하신 것 같아 꽤죽을 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는 꽤죽이었습니다. 꽤죽이 밥보다 좋잖아요. 목사님이 주는 것은 밥을 주든 죽이든 다 좋습니다“. 그날 제가 얼마나 힘이 나는지. 죽은 죽인데 꽤죽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고마웠든지. 하나님이 그날 그 집사님의 아름다운 거짓말을 용서하신줄 믿습니다. 설교도 하나님이 주시지만 교인들의 격려로 더 은혜로운 설교가 됩니다. ”아멘많이 하고 은혜받았습니다 많이 하면 정말 그런 줄 알고 목회자는 순교할 각오로 설교준비합니다. 혹시 앞으로 제 설교에 은혜 못받거든 제게 와서 귀에다 이렇게 속삭이세요. ”목사님, 오늘 꽤죽 잘 먹었습니다“. 이것이 격려의 힘입니다.

 

사람이 무슨 힘으로 사는지 아십니까?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격려의 힘으로 삽니다. 미국 와싱톤에 가면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에이브러함 링컨이 암살당하던 날 지녔던 개인 물품이 전시되어 있습니었다. “링컨이라고 수놓인 작은 손수건, 연필깎기, , 면실로 짠 안경집, 5달러짜리 지폐가 있었고 특이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는 데 그것은 링컨을 칭찬하는 신문 기사 조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 한 사람이다”. 왜 링컨은 호주머니에 그 낡은 신문조각을 가지고 다녔을까요? 링컨도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대를 이끌면서 많은 비난과 협박을 받았던 링컨, 그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중요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세요라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존엄,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탁월한 격려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격려를 볼까요? 투박하기만 하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베드로를 처음 보더니 베드로, 너는 게바야. 반석이야”. 갈릴리바다에서 고기나 잡아 먹고 살던 베드로보고 반석이야, 큰 바위 얼굴이야”. 이렇게 말할 때 사람들은 다 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대로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잖아요? 요한을 보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는 우레의 아들이다”. 요한은 그 뒤에 밧모섬에 귀양가서 하늘로부터 우레와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예수님은 격려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에게는 그를 두둔하면서 죄없는 자가 먼저 쳐라”. 믿음없는 도마에게는 네 손을 들어 내 옆구리를 만져보라. 그리하여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있는 자가 되라”. 울면서 십자가를 따르는 여인들에게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부활의 아침 무덤밖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는 마리아야”. 사랑이 넘치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가 아닙니까? 이 말씀이 366번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목회하면서 발견한 세 가지 격려의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나쁜 일이 생기면 항상 나 때문이야.”.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우리 때문이야.”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당신 때문이야”. 우리 인생의 문제는 이것을 반대로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반복합시다. 나쁜 일이 생기면, “나 때문이야.”.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 때문이야.”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당신 때문이야”. 이번에 교향에 가서 꼭 말하세요. “재가 지금까지 산 것은 부모님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산 것은 형님 때문입니다”. 말도 좋고 편지는 더 좋습니다.

 

얼마전 우리교인 결혼식이 있었는 데 딸을 여운 어머니가 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 애들이 어디서 배웠는 지 신혼여행 떠나기 전에 편지를 줘서 읽었는 데 엄마, 감사해요. 내가 산 것은 다 엄마때문이야라고 편지를 썻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결혼 하느라 바빳을텐데 어떻게 그런 편지 쓸 생각이 났는지. 너무 고마뭐서 눈물이 났어요”. 그날 저는 제가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편지쓰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차마 못했습니다. 그 편지 한 통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30년동안 키운 모든 수고와 눈물을 한 순간에 씻어주었습니다. 이번에 꼭 어머니에게 말하세요. “엄마, 감사해요. 내가 살아있는 것은 다 엄마때문이예예요”. 그냥 세배만 넙죽하지 말고 아버지, 감사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다 아버지 은혜예요”. 이것은 조금 발전시켜 볼까요? 교회올 때마다 목사님, 제가 이렇게 은혜받고 사는 것은 목사님 때문입니다”. 예배후에 찬양대에게 말하세요.“오늘 찬양에 큰 은혜받았습니다”. 교회에서 평소에 수고한다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하세요. “집사님, 집사님을 볼 때마다 크게 은혜받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0:24-25 2016.2.7()

격려가 필요합니다

미국 쌍둥이(영상).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가족은 함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우리 결혼하면 당신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놔도 뭐라하지 않을게요. 대신 뒤집힌채로 빨테니까 뒤집어서 신어요. 일요일 날 당신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일부러 깨워서 쓰레기를 버리라고 심부름 시키진 않을께요. 대신 낮잠에서 깨면 밀린 집안일, 설거지는 도와줘야해요. 바쁜 회사생활이지만 취미생활 하나 정도는 같이 하도록 해요. 또 백화점을 백바퀴 돌지언정 충동구매는 하지 않을께요. 연하라고 절대 핀잔 주지않고 항상 존경하며 살께요. 사랑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우리 결혼하면 치약은 중간부터 눌러서 안짜고 꼭 아래쪽부터 짤거예요. 같이 외출할 때 당신이 화장하고 옷입느라 시간이 걸려도 현관에서 짜증부리지 않을거고 일요일날 당신이 오전 내내 자느라고 밥안주면 난 알아서 짜장면 시켜먹을께요. 양말 두 켤레 사는데 백화점을 다섯 번 돌아도 화내지 않을께요. 또 과음해서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절대 바람피는 짓은 안할께요.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괜히 결혼했다고 짜증부리면 당신 도데체 뭐냐고 화내기보다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실천하겠습니다. 항상 배려하며 살께요. 사랑합니다”.

 

유대인의 격언, “새장속의 새가 말한다. 당신은 내 먹이가 충분한지 살피지만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가족은 서로 돌봅니다.

 

가족은 서로 격려합니다.
16:24,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윌리엄 아더 워드,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당신이 대하는 그대로 그 사람은 자라간다. 아첨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비난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시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격려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존 맥스웰,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믿어 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한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33: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나쁜 일이 생기면 나 때문이야.”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 때문이야.”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당신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