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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주를 따르려면-눅 9:57~62

복 받는 자리에 있으라는 책의 저자인 신승훈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와 과외강사 등 가르치는 일에 몸을 담았습니다. 손대는 일마다 물질의 축복이 따르자 돈벌이에 타고난 재주가 있다고 확신하고 결혼과 함께 서른셋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민 사회에서도 타고난 은사를 발휘하며 각종 사업을 벌이고 계획한 대로 많은 돈을 벌고 성공을 거두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풍요 속에서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탈봇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어떤 사역을 할 것인지 기도하던 중에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거듭 하나님께 물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결국 가족들에게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로 갈 것을 말하였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신목사 역시 부모를 공경하라고 설교하면서 부모를 뒤로 하고 아프리카 케냐로 가야 하나라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주셨습니다. “물론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말씀을 순종하고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와 복음을 위해서 가족과 처자와 전토를 버리고 내 말에 순종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니냐? 너는 내 말에 순종하라.”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프리카 케냐로 향했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는 드문드문 다니시던 교회마저 발을 끊고 불평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뭔데, 기독교가 무언데...자식이 부모도 버리고 가는가?” 아버지는 아들을 미치게 하여 케냐까지 가도록 만든 예수가 도대체 누구인가 알아야겠다며 하루 10시간씩 성경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던 아버지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기쁨이 넘쳐 밖으로 뛰어나가 우리 아들이 예수 믿고 케냐 선교사로 나가 봉사하고 있다고 외치며 자랑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신승훈 선교사는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셨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순종하며 주를 따를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믿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까? 아니면 멀찍이 예수를 보고만 있는 자입니까?

본문은 제자도에 관한 교훈입니다. 특히 마태복음 818-22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피조물로서 안정을 추구하고 관습을 지켜야 하며, 가족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는 하나님의 일과 인간적인 추구사항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을 때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주를 따르는 일 때문에 형편없는 급료를 받거나, 장래성이 점점 없어지고, 자신의 가치관마저 포기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선택의 기로에 세워 놓고 우리의 중심을 가늠해 보려고 하십니다. 그리할 때 무엇을 따라야 합니까? 세상의 안락함과 편리함을 따라야 합니까? 아니면 주를 따라야 합니까? 주를 따르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로 고난을 각오하여야

진주는 땅에서는 나지 않고 바다에서 아빌퀼리테라 불리는 조개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보석입니다. 몸속에 모래가 들어가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빌퀼리테 조개가 다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몸속에 모래알이 들어온다는 것은 큰 고통이며 아픔입니다. 모래알이 주는 아픔에 대해 조개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진주를 만들어내느냐, 아니면 썩어 죽느냐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진주가 되려고 하면 라카는 특수한 물질을 발산하면서 모래알을 감싸 안고 꺼칠한 부분을 부드러운 조갯살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들어 야 합니다. 라카를 낼 때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참아 이겨내면서 대처해 나갈 때 모래알은 비로소 진주가 됩니다. 그리고 진주조개가 되어 최고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썩는 것은 간단합니다. 모래알이 들어오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모래알이 몸에 상처를 내어도 무시하고, 썩게 해도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결국 썩어 냄새나는 죽은 조개가 되어 가치는커녕 쓰레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도 역경과 어려움이 올 때 라카를 발산해서 진주를 만드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소극적으로 대처하여 현실을 도피하다가 썩어버리는 조개처럼 파멸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모래알이 들어오는 고통은 누구나 겪기 마련인데 모래알을 진주로 만드는 라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모래라는 십자가의 길이 있지만 순종이라는 라카를 발산해서 우리는 보석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를 따르는 길은 고통을 주는 모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각오하고 순종의 라카로 감싸면 진주와 같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본문 5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세상에서 얻어지는 명성과 부귀와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우나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와 같은 짐승에게도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와 활동무대가 있으나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는 이것마저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기에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는 길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의 뒤를 따르고자 한다면,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아까지 아니하고 내어 놓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장식품처럼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고난과 희생의 각오가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출세의 수단이 되어도 안 됩니다. 감투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마음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를 따르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사명을 우선하여야

캐나다의 더 피플스(The People's) 교회는 5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세계적 교회입니다. 담임목사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J. Smith)하나님이 쓰는 사람이라는 저서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는 1927118, 38회 생일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눈앞에서 잡다한 일들이 사라지는 것을 그는 느꼈습니다. 이전에 중요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이차적이고 후순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서 있는 자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 진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기도를 서재에서 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주여,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을 원합니다.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햇빛 비췬 마음을, 당신의 마음과 같은 마음, 거룩한 마음, 눈같이 흰 마음을, 주여 나에게 이와 같은 마음을 내려 주옵소서.” 그 후 놀라운 변화를 맛보았습니다. 그는 왜 사도들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했을까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고 계신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난들 못하겠는가? 나의 일이나 소유물보다 내가 하나님께 더 귀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시는 것이지, 단지 나의 봉사만을 원하신 것이 아니다고 다짐하며 두 손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두 발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두 눈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두 귀를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입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마음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사명을 우선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있고 없음에 대한 소유에 대해서 결코 말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우선하며 주를 따라갈 때 저절로 따라 옵니다. 무엇보다 사명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60절입니다.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육신적인, 세상적인 일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데 적합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우선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예수를 따르는 일, 주님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일보다도, 내 사업보다도, 내 육신의 일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며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일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진정 주를 따르는 자일 것입니다.

부친을 먼저 장사하고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는 자는 예수를 따르는 일을 경시하고, 핑계만 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기회를 상실하지 말고 어떠한 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인도하시는 대로 영적인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는 십자가 앞에서 사명의 때가 온 줄로 아시고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기도하시며 사명을 우선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사명을 우선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유혹을 이겨내어야

1887년 미국에서 태어난 윌리엄 보덴(William Boden)의 부모는 목장을 경영하는 대부호였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부모는 그에게 세계 여행을 시켰습니다. 혼자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결심을 했습니다. “불쌍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한 평생을 바치리라.” 성경책 표지 안쪽에 이렇게 적어 넣었습니다. “No Reserve-지체하지 않고, 다른 마음을 품지도 않겠다라는 뜻입니다. 그 뒤 미국의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좋은 일자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프린스턴 신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 부모는 막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선교를 위해 모두 헌금했습니다. 차도 사지 않고 검소하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이슬람 사람들을 위한 선교를 위하여 이집트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친지와 친구들이 말렸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곳에 가서 사서 고생을 하려느냐?” 그때 그는 성경 표지 안쪽에 또 한 마디의 말을 집어넣었습니다. “No Retreat-물러서지 않고 후퇴하지 않겠다.” 그는 홀로 이집트로 건너갔습니다. 거기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에게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사역한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뇌막염에 걸렸습니다. 발병한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하였군!” 그러나 보덴은 죽어가면서 성경표지 안쪽에 한 마디를 더 남겼습니다. “No Regret-후회하지 않는다입니다. 그는 친지들과 친구들에게 남긴 유서에서도 같은 말을 썼습니다. “No Reserve, No Retreat, No Regret.”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전진했습니다. 예수로 인해 짧은 일생을 살았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카이로에 있는 무덤의 비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윌리엄 보덴(188719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본문 6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면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하여 줄달음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애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받는다면 배격해야 합니다. 여기의 합당'유데토스' 라는 원어인데 잘 놓여 있는, 적합한이란 뜻입니다. 합당치 않다는 것은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된 것을 의미하기에 주를 따르려는 자는 세상의 유혹을 멀리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 합니다.

바울처럼 이전에 즐기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뒤돌아보지 말고 주만 바라보며 나아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에 두고 온 재물이 탐나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물 때문에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명예와 권세 때문에 뒤를 돌아보아서도 안 됩니다. 인정 때문에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은 유혹을 이겨내며 주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순교자 주기철(朱基徹) 목사의 일사각오(一死覺悟) 신앙이라는 글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과 영광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 무슨 말로 대답하랴!”

예수께서 우리의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버리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주를 따르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를 따르며 내려놓은 것은 반드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세상이나 사람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주를 따르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를 따르는 자는 누구입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각오하는 자입니다. 사명을 우선하며 앞세우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혹을 이기며 뒤돌아보지 아니하고 진정으로 주를 따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6-11 19: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