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흙수저 출신 20대 청년이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조정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꿈을 이뤘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습니다. 다투 보카날(Dattu Bhokanal)은 인도 서부 탈레가온 출신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다가 오랜 가뭄으로 작물이 자라지 못하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입대를 결심했습니다. 한 달에 5000루피(8만7000원) 월급으로는 먹고살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군에서 훈련을 받던 보카날은 키가 193㎝로 크니 조정을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고 난생 처음 군 조정팀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보카날은 큰 강을 본 적도 없고, 수영을 전혀 못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한 뒤 선수로 활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노력파인 보카날은 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14년 인도 국내 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땄습니다. 보카날은 특히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은메달을 타면서 리우올림픽 출전권까지 얻었습니다. 보카날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금메달도 꿈꾸고 있지만 나한테는 수년째 가뭄 피해를 입고 있는 고향에 비가 내리는 게 금메달 따는 것보다 더 반가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4년마다 개최되는 올림픽은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Baron de Coubertin)이 주도하여 1896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쿠베르탱 남작이 모델로 삼았던 것은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고대 올림픽이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활동하던 시대도 고대올림픽 경기가 열렸습니다. 선수들은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했습니다. 올림픽에는 아무나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훈련해야 하고 자신이 출전할 경기 규칙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해야 합니다. 실제로 고대 올림픽에서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은 경우 실격 처리와 동시에 영구적으로 올림픽 경기를 출전할 수 없도록 조치되었고, 태형, 채찍형의 벌칙이 뒤따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올림픽 역사를 보면 달리기 경기에서 부정 출발을 한 선수를 사형시킨 기록도 있었다고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본문을 통해 신앙생활을 경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앞에서 경주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누구입니까? 이는 역사에 나타난 믿음의 용사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11장에 나타난 대로 이미 달음질을 마친 자들입니다. 사실 그들도 약한 점이 있었습니다. 허물과 죄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할 때도 혹은 쓰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경주를 잘하여 최후 승리를 얻은 자들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성도들 역시 믿음으로 달리는 경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기에는 확실한 목표가 있고 약속된 상급이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 경주자의 달음질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망에 넘치는 경주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경주자들은 낙심하지 말고, 달음질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둘러싼 증인들 앞에서 경주를 잘 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벗어버려야 1960년 로마에서 열린 제17회 올림픽대회에서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 아베베(Abebe Bikila)는 맨발로 뛰어 우승하고 ‘맨발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에게는 신발조차 무겁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경기에 나서는 자들은 행군하는 군인들처럼 완전무장을 하지 않습니다. 짐꾼들처럼 어깨나 등에 무거운 짐을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몸을 가볍게 하고 저항을 덜 받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는 얽매이게 만드는 질긴 올무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뛰는 자를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며 달리는 자에게 거리끼는 장애물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경주자는 크든지 작든지 죄를 벗어 버리고 시원스럽게 달려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여기의 무거운 것은 몸과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생활의 염려와 근심입니다. 또 얽매이기 쉬운 죄는 쉽게 죄에 빠지게 하는 습관들을 뜻합니다. 따라서 신앙의 경주자들은 자신을 얽어매는 염려와 죄악의 습관들을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이러한 것들을 성령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마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암세포를 제거하듯이 신앙의 경주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벗어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신앙의 경주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벗어 버리라고 강조합니다. 영혼을 끌어내리는 무거운 짐과 얽어매는 올무와 같은 죄를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믿음의 경주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죄가 속에 있으면 우리를 얽어매어 기쁨을 빼앗아 버립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신감도 잃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자유하게 되어 신앙의 경주를 제대로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인내하여야 미국 스포츠사이트 엡슨(ESPN)은 8명의 전문가들이 60개 경기종목을 대상으로 난이도가 높은 정도를 수치화한 것을 발표했습니다. 인내력, 내구력, 힘, 스피드, 긴장, 유연성, 민첩성, 10개 항목을 10점 만점으로 계산했는데 복싱이 72.375점을 받아 가장 힘든 운동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경기하면서 체력소모가 가장 심한 운동은 테니스라고 합니다. 제한시간 규정이 없어 5시간 가까이 경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테니스와 복싱을 지옥의 스포츠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모든 경기가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매일 고된 훈련을 하기에 자기가 하고 있는 운동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피겨 스케이트의 김연아, 축구의 박지성 선수가 세계적 스포츠영웅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오랫동안 험한 훈련들을 잘 견디어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는 평균적으로 3,000번의 엉덩방아를 찧을 때 한 번의 완벽한 점프가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어린 시절, 박지성 축구선수는 발등 구석구석 마다 적어도 3,000번씩 공이 닿아야 감각이 생기고, 다시 3,000번이 닿아야 어느 정도 볼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는 코치의 말을 듣고 쉴 새 없이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선수들은 슈팅과 멋진 드리블을 연습하였지만 박지성은 융통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인내하며 연습한 결과 세계 수준의 체력과 기본기를 갖춘 선수가 된 것입니다. 왜 운동선수들이라고 힘들 때 포기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목표를 향해 인내하여야 승리의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경주에 나선 자는 참고 견디며 달리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경주에는 재난, 사고, 핍박, 유혹, 온갖 악마의 궤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인내로써 우리의 당한 경주를 달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참고 견딜 줄 알아야 신앙의 경주를 제대로 마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계 상황에 이르렀습니까? 바울은 참으로 인내의 사도였습니다. 수없이 매를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고, 위험과 헐벗음과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기를 열망했으며 인내의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가 신앙의 경주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까닭은 인내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경주자는 인내로 달려야 합니다. 욥의 인내는 재앙을 물리치고, 모세의 인내는 시련을 이기게 했습니다. 세상에는 인내할 줄 몰라서 실패하고 재앙을 만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인내로써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십자가를 참고 이겨내신 예수를 본받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로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바라보아야 하비 콕스(Harvey Cox)의 ‘예수, 하버드에 오다(When Jesus came to Harvard)’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버드는 본래 목사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대학이었으나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점점 종교적 색채를 벗어버렸습니다. 풍부한 재정과 함께 세계적 명문대학의 자리를 굳혔지만 하버드 대학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커리큘럼이나 카탈로그에서 예수의 이름을 빼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전문화를 지향하면서 신학을 외면했습니다. 더 이상 종교의 문제와 신학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으며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와 신학을 외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당시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이 온갖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80년대부터 하버드 대학에 윤리적 사유(Moral Reasoning)라는 과목을 신설하게 되었고 그것을 하비 콕스가 맡았습니다. 그때 강의 하였던 내용이 바로 ‘예수 하버드에 오다’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예수 없는 하버드가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니 다시 예수를 바라보고 좇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예수가 빠지면 안 됩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자는 신앙의 경주에 끼어 들 자격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달리는 영적 경주자는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 볼 때 비로소 믿음이 생깁니다. 히브리 기자는 그리스도를 앙망할 때 온전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다른 것에 한눈을 팔면 실패합니다.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보며 달려가야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보는 눈은 중요합니다. 실망하기 잘하는 사람은 자기의 속을 봅니다. 패배의 쓴 잔을 마시는 자는 흔히 뒤를 보는 사람입니다. 줄곧 남만 따라 다니는 자는 늘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도중하차하는 자는 한치 앞만 봅니다. 좌절에 빠진 사람은 인생의 밝은 면을 아예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경주자는 잠시도 눈을 감지 않아야 합니다. 시선을 조금도 헛된 데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고 달음질을 하여야 합니다.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달려가는 경주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눈은 예수께 고정시키고 예수만 바라보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미술계의 거장 라파엘(Raffaello Sanzio da Urbino)은 그가 늘 사용하는 이젤의 상부 한쪽 모서리에 다이아몬드를 끼워 두었다고 합니다. 눈이 불투명한 색채들을 바라보느라고 피로해질 때면 언제나 이 다이아몬드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곧 그의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고 합니다. 우리의 다이아몬드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다이아몬드는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것을 보지 말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영적 경기에 나선 자들이 왜 주저하며 두려워합니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잘 하기 위하여 올바른 차림을 하여야 합니다. 모든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인내로써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죄를 벗어 버리면 잘 달릴 수 있습니다. 인내로 달리면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만 바라보는 자는 결코 길을 잃지 않습니다.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로지 앞에 있는 즐거움과 승리를 위하여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달려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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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8 19:5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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