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알려진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덴마크의 비극적인 역사를 가슴 아파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소원을 품었습니다. 그룬트비가 목사고시를 치룰 때 설교 제목을 ‘덴마크 교회 지도자들이여 회개하라’로 정하였습니다. 그러자 시험관들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그를 섬 교회로 발령하였습니다. 덴마크 교회는 국교회인지라 목사들은 정부에서 월급을 받고 발령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살리겠다던 그룬트비는 섬으로 갈 수 밖에 없자 절망하고 낙심하였습니다. 장래가 캄캄하였고 처해진 현실을 바라볼 때 암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헛소리까지 하면서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렸습니다. 그때 그룬트비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눈물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뜨겁게 하셨습니다. 그룬트비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체험하면서 신경쇠약과 불면증이 사라지고 도리어 용기 있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담대해진 그의 입에서 강력한 말씀들이 쏟아졌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마다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가 부르짖었던 것은 세 가지 사랑입니다.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나라 사랑’입니다. 그룬트비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진 국민들은 하나님 사랑하는 일, 이웃 사랑하는 일, 조국 사랑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각 계 각 층에서 일꾼들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룬트비로 인해 뜨거워진 사명자들로 말미암아 덴마크가 달라졌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원이 덴마크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덴마크에 가면 곳곳에 그룬트비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낭패와 좌절을 딛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소원을 가졌을 때 위대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그룬트비가 암울한 현실만 바라보고 절망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며 증오심의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섬에 유배당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이상에 걸렸을 것입니다. 덴마크도 선진국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원을 가졌을 때 현실을 뛰어넘는 밝은 미래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엄청난 기적도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위인들은 누구입니까?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에 따라 행하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향해 소원을 품었던 자들입니다. 현실을 극복하고 담대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소원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본 장을 통해 종말론적인 표상들을 사용하여 지상에서 겪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대조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장차 영광스러운 몸, 즉 영생의 몸으로 변형될 것이라는 확고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현재 당하는 고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친밀한 영적교제를 나눔으로 생명의 삶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인가 소원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관계 속에서 성도들이 가져야할 소원을 본문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은 우리가 ‘간절하게 가져야 할 소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담대히 원하는 바’의 소원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와 함께 있는 것 간암이 뇌에 전이되어 시한부 판정을 받는 지미 카터 (Jimmy Carter) 전 대통령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나에게 어떤 일어나더라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닥쳐오든 나는 완전히 평안합니다. 이제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느낍니다. 그 동안 멋진 삶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기쁜 삶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 타계한 우리나라의 뛰어난 소설가 최인호 (崔仁浩) 작가는 “나는 물론 알고 있다. 내 인생의 고갯길 저 너머에는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영혼의 하나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음을”이라고 했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딸에게 남긴 말은 “주님을 봤다. 됐다, 가자”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죽음이 찾아 왔을 때, 죽음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주님과 함께 있을 소원 때문에 환한 미소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사도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 주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주와 함께 거하는 것뿐입니다. 칼빈은 “진정한 믿음은 죽음을 경시할 뿐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소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이 신앙에 도움이 되고 죽음 너머에 천국이 있음을 확신한 신앙인들의 거룩한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고 주의 재림을 희망했으나 점차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오히려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깨달아 가는 변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죽게 되는데 언제나 주를 뵙고 주와 함께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사는 것 때문에 기뻐하거나, 죽는 것 때문에 슬프다면 최고의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생사를 초월하여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진정한 소원이 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의 기쁨이 되는 것 제임스 매콘키 (James H. McConkey) 목사가 쓴 글입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우리 과에는 나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우리는 그를 톰이라고 불렀다. 그는 온화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그를 아는 학생들은 톰이 장차 사회에 나가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하고 3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톰이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강연회에 참석하러 가보니 4천여명의 청중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의 말은 힘이 있었고 화술은 뛰어나 청중들의 혼을 빼앗아갔다. 강연이 끝난 후 나는 그를 찾아가서 대학생활을 회상하며 기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 난 후 내 친구 톰은 돌아갔고, 나는 10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친구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으나 내게는 부럽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또 비록 나는 세인들의 시선도 끌지 못하면서 조용히 생활하고 있었으나 그의 지위가 탐나지도 않았다. 나는 톰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내 속에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발견해냈다. 그것은 내가 주님이 주신 봉사의 장소를 발견한 후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는 소원을 품었을 때 우리는 그 무엇도 부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여기서 ‘몸에 거하는 것’은 사는 것이며 ‘몸을 떠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에 힘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살아서는 선교하여 주를 기쁘게 하고 죽을 때는 순교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겠다는 담대한 소원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부활하신 주를 만난 이후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투옥되기도 했고, 죽을 고비를 수차례나 넘겼습니다. 또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힘쓰노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절제하여야 합니다.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희생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하여 손해를 감수하면 하나님이 친히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소원을 두고 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부어 주사 만족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담대히 소원을 두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께 상급 받는 것 파나마 운하는 건축가 조지 위싱턴 괴델스(George W. Goethals)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그는 기후와 토양과 수질을 심도 있게 연구한 후 운하 건축을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은 신랄하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파나마 운하 건축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미숙한 건축가가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고 있다. 당장 공사를 중단시켜라” 온갖 중상과 모략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공사를 계속했습니다. 조금도 동요하는 빛이 없었습니다. 주위의 비난에 대해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괴델스를 향해 물었습니다. “당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왜 응답하지 않습니까?” “때가 되면 하려고 합니다” 직원이 다시 묻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위대한 건축가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운하 건축이 완공된 후에요.”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요, 다 이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께서 심판의 날에 선명히 밝혀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상급도 그 날에 주실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여기에 나오는 ‘심판대’는 원어로 ‘베마’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한 종목의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은 심판관 앞에 섭니다. 그때 선수들은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치른 경기에 대한 평가인 상급을 받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 신앙의 깊이나 열정의 정도, 혹은 헌신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평가도 다양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평가가 더욱 중요함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판단하실 분도 하나님이시요 상급 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 앞에 서는 날, 어떤 모습으로 서기를 원합니까?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답게 살지 못했다면, 주 앞에 서는 일이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는 삶이 되기를 담대히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말입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라고 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 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성도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비록 죽음과 핍박 가운데 살고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궁극적 승리를 믿는 신앙으로 담대하게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의 소원처럼 죽음 앞에서도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진정한 소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세워져 상급을 얻는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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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6 17:5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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