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는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발자취를 남긴 선교사입니다. 50년 넘게 인도에서 사역했으며, 평생 6만번이 넘는 설교를 했습니다. 미국의 타임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선정했고,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선교사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런데 1971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눈의 초점이 달라져 글을 읽을 수 없고, 오른손이 마비되어 글을 쓸 수도 없고, 혼자서 걸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 저를 왜 이렇게 만드신 것입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감사한 사실은 나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승리다. 미국 최고의 의사들은 ‘당신은 이제 걸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인도 최고의 안과 전문의들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 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은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해답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믿음으로 매시 정각마다 기도했고 일주일 금식 후 걷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딸과 사위는 그가 훈련을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스스로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의료진들이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1킬로를 혼자 걷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는 설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14개월 동안 50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영적 유언과 같은 ‘하나님의 예스’라는 책을 남기고, 평생 사역지 인도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위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그는 노년의 에녹처럼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 스탠리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삶이 조각조각 부서졌다면, 그 조각들을 모두 모아 하나님께 드려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조각들로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실 것이다. 갑자기 나를 엄습한 뇌졸중 발작은 장애와 슬픔을 견디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장애와 슬픔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줄 기회가 되었다. 예수는 우리의 해질녘을 새벽녘으로 바꾸신다.”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는 역사를 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갔을 때 가나안 여인이 흉악하게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녀가 예수께 간청했더니 냉담하게 대하고 무시하셨습니다. 모독에 가까운 말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 매달려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본문 28절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의 헬라어 원문은 ‘메가스 피스티스’입니다. 예수께서 여인의 믿음을 메가톤급의 믿음이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메가는 100만이라는 단위를 말합니다. 여인의 믿음이 백만 단위의 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인은 그 믿음의 결과로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귀신들려 불행한 삶을 살던 딸이 깨끗이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인생은 소원을 가진 피조물입니다. 큰 소원에는 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에게는 큰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교리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지식적인 믿음도 아닙니다. 다만 원초적인 믿음을 소유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을 모델삼고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여인이 어떻게 구하였더니 예수께 큰 믿음이라고 인정받는 자가 되었습니까? 첫째로 사랑으로 구하니 중국 쓰촨성(四川省) 대지진 발생 하루 뒤인 2008년 5월 13일 오후, 베이촨현(縣) 폐허 속에서 구조대는 두 팔을 땅에 짚고 무릎을 꿇은 웅크린 자세로 숨을 거둔 20대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식사하던 중 젓가락을 채 놓을 새도 없이 몇 십톤에 이르는 무너진 건물 잔해를 온몸으로 지탱하며 죽은 한 여인..구조대가 여성의 시신을 들어 올리자 그 밑에 태어난 지 서너 달 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떨어지는 건물더미 속에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버틴 채 건물의 잔해가 자신의 몸으로 떨어지는 데도 팔로 버티면서 아기를 지키다가 죽어간 것입니다. 구조대가 아기를 발견했을 때, 아기는 전혀 다치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아기에게 모유수유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 중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와 함께 발견된 휴대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아가, 만약 네가 살아남게 된다면 이것만은 기억해주길...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문자가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살리려는 감동적인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딸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귀신들인 딸을 고쳐 보겠다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은 모든 것을 허비했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든 자식의 아픔은 자기의 아픔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께 접근하게 한 것은 딸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삼는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보다 더 인간을 하나님께 접근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한 것입니다. 딸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이 땅의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 사랑에 대한 가나안 여인의 사랑은 끝이 없을 만큼 간절했습니다. 이 사랑이 큰 믿음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둘째로 인내로 구하니 1940년 체스터 칼슨(Chester Carlson)이 아이디어를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본도 없었고 제품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기에 아이디어를 상품화할만한 회사를 찾아다녔습니다. 성공할 만한 아이디어이니 한 번 해보자고 제의하였지만, 아이디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무려 7년 동안 20개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칼슨은 실망하지 않고 언젠가 아이디어를 인정해 줄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으로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어느 날, 뉴욕의 헬로이드 컴퍼니 회사 사장을 만나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기회를 주십시오. 조금만 도와주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열정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사장은 시범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품으로 만들어지자마자 전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으며 두 사람은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 제품이 바로 제록스 복사기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여도 즉시 응답하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가나안 여인처럼 인내하며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고통의 시기가 끝나면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여기의 ‘절하다’는 ‘프로세퀴네이’ 라는 단어는 미완료시제로 표현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완료시제는 종료된 행동을 묘사하지만 미완료시제는 지속적인 상태나 반복되는 행동을 묘사합니다.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매달려 구한 것입니다. 한 번 절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하여 절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여인을 시험했습니다. 침묵의 시험, 거절의 시험, 멸시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의 냉담함과 제자들의 불친절도 무시함도 모욕도 극복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신앙은 시련과 환난을 지낸 후에야 견고하고 완전해져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인은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견디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여인의 포기하지 않는 믿음과 끈질긴 인내가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여인은 예수의 능력으로만 딸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멸시도, 모욕도 여인을 예수에게서 물러서게 할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여인의 인내가 큰 믿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셋째로 은혜를 구하니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의 저서 ‘래디컬(RADICAL)’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조지 뮬러(George Muller)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교회를 60년이 넘도록 돌보았던 목회자였지만 고아원사역으로 더 알려졌으며 평생 만 명이 넘는 고아들을 보살폈습니다. 뮬러는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의도적으로 운영자금을 보태달라고 부탁을 하러 여기 저기 다니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었습니다. 뮬러는 고아원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고아원을 세운 목적은 고아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고아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일기에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내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직 기도와 믿음으로 고아원을 설립해서 이끌어간다면,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아직 회심하지 않은 이들의 양심에 거룩한 역사의 실체를 보여 주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고아원을 세우려는 가장 큰 목적이다. 이 사역의 중요한 목표는 나를 비롯하여 함께 일하는 이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기도와 믿음만으로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신실하게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알리려 하는데 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뮬러는 자신을 보는 이들에게 기도와 믿음으로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은혜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는 기도꾼들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즐겨하십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인은 자신은 은혜가 없이는 못사는 부스러기 같은 존재이며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인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 앞에서 믿음의 행동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인생은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갈망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목말라 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을 바로 알고 바로 찾고, 주인의 은혜를 겸손히 구할 때 큰 믿음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은혜를 구할 때 은혜가 큰 믿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 (Joel Osteen) 목사는 ‘최고의 삶’이라는 저서에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생각뿐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각으로 능력의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풍성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처한 형편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환경입니까? 물질입니까? 그것들을 디딤돌 삼아 오히려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걸림돌을 디딤돌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며 자존심까지 다 버린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디 사랑으로 구하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로 구하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를 구하는 믿음이 되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 믿음을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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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3 22:3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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