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으로-대하 34:29~33 (종교개혁주일) 올해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1517년 10월 31일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타락한 중세 교회를 향하여 개혁을 외친 날이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교회의 건축으로 인해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독일 마인츠의 주교 알브레이트(Albert of Brandenburg)는 면죄부 판매권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수입의 절반을 주겠다고 교황에게 제안합니다. 제안을 수락하자 당시 유명한 웅변가 테첼(Tetzel Johann)을 고용하여 독일에서 면죄부 판매를 시행하였습니다. 면죄부는 죄로 인해 겪어야 하는 형벌을 줄여주는 방편이 되며 헌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연옥에 있는 조상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게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부패를 목격한 루터는 금전으로 죄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며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그 후 가톨릭의 잘못된 관행을 95개 조항으로 만들어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게시하고 교권에 대항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항거하는 자’라는 의미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인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자가 된 근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본문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8세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는 유대의 17대 왕이 되어 31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고 7년에 걸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우상의 전이 화려하고 즐비하게 서 있는 반면에 여호와의 전이 퇴락해 있는 모습을 보고 요시야는 여호와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하여 성전 수리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공사 책임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보수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힐기야는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그는 서기관 사반에게 율법책을 전하였고 요시야는 사반에게 그 율법책을 읽도록 명했습니다. 말씀을 듣던 요시야는 자기의 겉옷을 찢었습니다. 겉옷을 찢는 행위는 회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태도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라고 요시아가 외치며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역대의 왕들도 없애지 못한 산당들을 제거하고 가증한 것과 우상들을 찍어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도록 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시야의 개혁을 성경은 극찬하였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입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여호와 하나님은 그제나 지금이나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개혁을 기뻐하십니다. 요시아의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요인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그러면 ‘오직 성경으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말씀에서 시작하라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강론은 라틴어로 행하여졌습니다. 교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라틴어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루터는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부터 착수하였습니다.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교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개혁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본문 30절입니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주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개혁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고 백성들도 말씀을 듣게 하였습니다. 개혁은 말씀을 듣는 일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소신으로 개혁을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말씀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의 진리만이 개혁의 당위성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올바른 개혁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을 이루라 루터는 사제가 되었지만 죄사함의 확신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 라테란 성당의 ‘빌라도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는 업적으로 죄 사함을 얻으려고 했지만 도리어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영혼의 평안은 임하지 않고,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이 떠올랐다고 루터는 술회하였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실망을 안고 돌아온 루터는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구절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처벌하는 무서운 공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의로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비텐베르크 수도원의 탑에 올라가 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루터의 ‘탑의 경험(Tower Experiecne:Turmerlebnis)’이라고 부릅니다. 루터의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처벌하는 공의의 의만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의 개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의의 옷은 예수께서 땅에서 의로운 삶을 사심으로 이루어진 의를 말합니다. 그 의를 하나님께서 옷처럼 입혀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천국에 들어갈 공로나 업적이 없다 해도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만 있으면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사함은 돈이나 선행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깨달음의 변화가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 31절입니다.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여기의 ‘세우다’는 ‘카라트’라는 원어로 ‘자르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근동의 언약체결은 제물을 둘로 쪼갠 후에 쪼개진 제물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들이 함께 걸어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한 쪽이 언약을 어기면, 쪼개진 제물처럼 죽임을 당할 것임을 확증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이 언약의 주체임을 믿고 엄숙하게 백성들과 함께 언약 갱신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여호와가 아닌 우상의 뒤를 따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언약갱신을 통해 여호와의 뒤를 따르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이제부터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백성과 나라가 변하는 개혁을 원하였습니다. 그 개혁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이어야 합니다. 변화를 통해 말씀이 구체화될 때 비로소 개혁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말씀을 따르라 루터가 도서관에서 라틴어 성경을 발견하였습니다. 성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놀라움과 감격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성경을 내게 주시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가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루터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521년 보름스 국회에 소환을 당하였습니다. 국왕 찰스 5세는 루터에게 최후통첩을 합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 살려주겠다.” 그러나 루터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 잘못이 성경에서 증명되지 않는 한 내 주장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나의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다. 양심을 배반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루터가 종교개혁에 성공하였던 이유는 계속해서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2절입니다.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여기의 ‘따르니라’는 ‘아사’라는 원어인데 ‘행하다, 만들다’라는 동사입니다. 태도와 동작의 적극성을 담는 진행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거민들이 지체 없이 언약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개혁을 시작한 것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스림을 받는 백성까지 합류시킨 것입니다. 요시야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까지 따르던 우상들을 버리고 등져왔던 여호와의 뒤를 다시 따라가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화되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시야처럼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힘을 합하여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함으로 개혁을 일으켜야 합니다.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늦은 회개라는 것은 없습니다. 비록 징계하실지라도 멸망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회개를 미루다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A reformed church is always reforming)라는 종교개혁의 모토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자신을 개혁하는 일에 계속적으로 힘써야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목욕을 하고 또 목욕을 하듯이 교회는 개혁하고 머지않아 또 개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바로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왜곡된 질서와 잘못된 신앙의 관행을 청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성경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성경으로(Sloa Scriptura)’가 종교개혁의 모토이며 말씀으로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유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으로 개혁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이루는 실천이 개혁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르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개혁에 도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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