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사 33:1~6
폴프 슈나이더(Wolf Schneider)의 ‘위대한 패배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말합니다. 역사 속에 살았던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비참한 패배자들, 영광스런 패배자들, 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들, 왕좌에서 쫓겨난 패배자들,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들, 살아서 인정을 받지 못한 패배자 등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으로 윈스턴 처칠을 소개하였습니다. 처칠은 네 번 패배한 후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털고 일어나 네 번이나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서른 한 살에 차관으로 관직을 시작하여 1911년에 해군 장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장관직을 사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프랑스 전선에 나갔고 1917년 군수 장관이 되어 신무기인 '탱크'를 만들어 승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세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실패로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64세에 다시 해군장관이 되어 승리하였고 드디어 수상이 되어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76살에 다시 수상에 선출되었고 1953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고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 포병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실패를 통해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실패 앞에서도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일 때 찬란한 역사가 펼쳐지는 은혜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본문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심판의 경고와 동시에 회복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유다를 위한 간구과 앞으로 임할 평화에 대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믿고 의뢰하는 자들의 간구에 언제나 응답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미약한 자의 간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위기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보호하여 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는 원어로 ‘예흐와 한네누’로서 지체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몸을 굽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굽혀 도와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뢰할 때 더욱 더 긍휼히 여겨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위기가 닥친다 해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구원이 되소서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목사의 간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시무하는 수정교회를 섬기던 스텐리 장로가 심각한 심장 질환을 앓던 중 혼수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의사는 희망이 없으며, 또 살아난다 해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슐러 목사는 스텐리 장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신경외과 전문의 스마일러 브랜튼 박사의 말을 생각했습니다. “두개골 부분에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뇌에는 정상적인 부분도 아주 많습니다.” 슐러 목사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스탠리 장로가 들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스탠리 장로님, 슐러 목사입니다. 당신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첫 번째 표식이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으면서도 스탠리 장로는 자신이 회복된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스탠리 장로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목발도 없이 교회에 걸어서 들어왔습니다. 슐러 목사가 스탠리 장로를 맞이하자 그가 외쳤습니다. “목사님, 당신은 위대한 분입니다.” 그때 슐러 목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스탠리 장로님, 위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삶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한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다면 반드시 그 구원을 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은혜가 임하도록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2절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여기의 ‘구원’은 ‘예슈오트’인데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주시는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이며,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시작됩니다. 사망의 삶에서 살아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서 누리는 생명의 풍성함이 곧 은혜입니다.
유다의 대부분 거민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애굽을 비롯한 세상 세력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강력한 나라, 말과 병거로 무장된 애굽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은 앗수르의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여호와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시인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공의가 되소서
사도 법관이라 불리는 김홍섭(金洪燮) 판사의 이야기입니다. 김홍섭 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의로운 재판관이었습니다. 그의 책상에는 항상 성경과 육법전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판결을 내릴 때도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이나 나나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대한민국의 법관이 되어 당신을 심판하게 되었으니 널리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재판이 끝난 후에는 법의를 벗고 감방에 가서 피고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가족을 돌보아주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에는 저녁 식사를 하다가 숟가락을 놓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법정에 나와 있던 피고인의 가족들이 추운 방에서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였습니다. 그가 전주 지방법원장으로 부임하던 날, 그를 환영하기 위해 지방 유지들이 모여 잔치를 크게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김홍섭 판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6.25 전쟁의 참화와 거듭되는 흉년으로 민중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이때에 어찌 우리가 이런 주연상에 앉아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말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은혜로 임할 때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여기의 ‘공의’는 ‘체다카’인데 하나님의 덕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의 압제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정작 마음에 두신 것은 정의와 공의의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이 위기를 자처한 것은 하나님 앞에 불의하고 부정직하였고 정의와 공의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공의와 정의로 충만케 하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현실적 번영이전에 하나님 백성답게 의로운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의롭고 진실한 자리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유다의 대적을 물리치는 것만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시는 은혜 베푸심이 하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평안이 되소서
엔도 슈샤쿠(遠藤周作)의 ‘침묵’은 일본에서 기독교가 핍박을 받을 때의 사실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농부 두 사람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자 합니다. 예수 믿는 신앙을 절대로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됩니다. 십자가 형틀에 두 농부의 몸을 비끄러매어 밀물이 들어오는 바닷가에 세워놓았습니다. 물이 점점 불어나 급기야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부인하라고 협박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끝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물이 점점 허리에서 어깨로, 목으로 자꾸 올라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네덜란드 신부가 너무도 괴로워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을 도와주옵소서. 능력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어찌하여 침묵하고만 계십니까?”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때 신부의 귓가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저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느니라.” 그 때 비로소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평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안은 어디에 있습니까? 참 평안은 우리가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여기의 ‘평안함’에 해당하는 ‘에무나트’는 ‘확실히 서 있는 모습, 흔들지 않는 확고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전쟁과 소란, 거짓과 불안이 요동치는 세상에서 ‘에무나트’ 즉 평안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직 참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세상에서 살 때 비로소 평안을 체험하게 됩니다. 평안은 가치관의 혼동이 없는 확고함이며, 믿음과 진리가 외면당하지 않는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유다가 평안함을 누리는 근거는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습니다. ‘여호와 경외가 보배중의 보배’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경외하기만 하면 이방나라의 침략을 당하지 않고, 수치와 살육의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경외가 그토록 귀한 보배인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평안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세계 최초의 흑인 오페라 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의 간증입니다. 그녀가 대성하자 기자가 찾아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노래가 좋아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했는데 한번은 솔리스트가 결석해서 대신 노래하게 됐습니다. 예배 후 목사님의 칭찬을 받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 후에 주일예배에 절대 빠지지 않고 출석하다 보니까 은혜도 받고 노래 실력이 날로 향상됐습니다. 그게 성공 비결입니다.” 평범한 것 같지만 정말 아름다운 간증입니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힘을 쓰시겠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 공의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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