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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남준목사

예배 때 들어야 할 목소리 렘7:23

예배 때 들어야 할 목소리                      렘7:23                        

김남준 목사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7:23)

 

못 말리는 형제

 

제가 어느 교회에서 청년들을 목회할 때 일입니다.

열심을 내기로 이름난 한 형제가 예배가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이 친구의 기이한 예배 태도였습니다.

찬송을 좋아하고 악기도 다룰 줄 아는 터라, 이 형제는 자주 찬양인도자로 섰습니다.

그때마다 이 형제는 찬양을 부르다가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감동이 있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찬양하던 이 형제가 설교시간에는 언제나 졸았습니다.

 

잠에 취하다시피 설교시간을 지내고서는 제가 설교 후 주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자.”고 제의하는

통성기도시간에는 제일 큰 목소리로 열렬히 기도하곤 했습니다.

이 희귀한 예배태도를 저는 항상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형제에게 열심은 발견되는데 견고함을 찾을 길이 없고,

열심을 내면 낼수록 목회자인 저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든 뜨거워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신앙생활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머리가 혼탁한 사람의 열심은 신앙적으로 거의 가치가 없는 열심이거나

정상적인 신앙생활에 해로운 뜨거움이기 쉽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나 연단된 꿋꿋함, 성숙한 경건 같은 것을

그런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진주를 돼지우리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깨닫는 것 없는 신앙생활은 목양을 받는 교회생활이 아니라 사육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진리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7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주시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삶과 나뉠 수 없는 예배

 

너희가 나를 위해서 제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지내는 제사에 관심이 없으니

너희나 잘 먹고 살아라.”( 7:21)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지 못할 때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것은 예배자의 삶과 예배가 나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배자의 문제

 

여러분이 교회에 나올 때 일주일 동안 살았던 삶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고 계십니까?

예배드리기 전 일주일 동안 자신이 살았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참회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앞에서 먼저 나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와 우리가 살아온 삶의 격차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영혼이 깨어지지 않고 모든 제사와 예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고 예배를 드릴 때

진리로 말미암는 감격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먼저 우리의 삶이 예배정신에 합당한 삶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같은 나의 삶

 

어느 날 18세기의 전설적인 설교가 조지 휫필드의 생애를 읽으면서 커다란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가 초인적인 수고 속에서 복음을 전했던 순회 설교자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것 같은 격심한 수고에 자신을 바치면서도

그는 매일 밤, 열다섯 가지 항목의 점검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철저한 자기 관리의 태도를 확인하며

나는 거의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개인기도에 열렬하였는가?

2) 작정해 놓은 기도시간에 기도하였는가?

3) 매시간 부르짖었는가?

4) 대화하거나 행동하기 전이나 후에 나 자신이 행하려는 것이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 수 있을지에 심사숙고하였는가?

 

5) 기쁜 일이 있을 때 즉시 하나님께 감사하였는가?

6) 하루의 일과를 미리 계획하는 일을 잊지 않고 했는가?

7) 모든 일에서 순수하였고 또한 반성해 보았는가?

8) 내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을 감당하거나 행할 때 뜨거운 열심히 있었는가?

 

9) 말하거나 행할 때 온유하고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였는가?

10) 다른 이들에 대하여 교만하거나 허탕하게 굴거나 참지 못하거나 투기하지는 않았는가?

11) 먹고 마실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가? 또 잠자는 일에서 절제가 있었는가?

12) 윌리엄 로(William Law)의 규칙을 따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시간을 드렸는가?

 

13) 연구하는 일에 부지런하였는가?

14)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친절하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는가?

15)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하였는가?

 

삶에 대해 생각하라

 

만약 우리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예배하는 형식만을 되풀이함으로써

단지 예배를 값싼 은혜의 도구정도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아무 날 무슨 순서로 예배하든지 너희 맘대로 해라.”

 

실패한 자를 받으심

 

항상 교회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던 시기에는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예배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던,

자기의 의로 가득 찬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로운 감격이 있는 예배에는

항상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실패 가운데 더욱 주님을 찾았고 그 사모하는 마음은 예배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고자 하나 소외받거나 고난을 받으면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들은 더욱 예배를 사모하였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자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배신당하는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코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예배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목소리에 순종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되도록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시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계십니까?

 

마음을 바쳐 예배한다고 할지라도 예배 속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예배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신을 상실한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잡니까?

 

오늘날은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심각한 신성모독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너무나 피곤하면 예배 중에도 졸 수 있습니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한번이나 두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같은 시간에 되풀이되고 있다면

이것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고 영혼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 자신을 오래도록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께 예배드리는 우리가 그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졸음을 친구로 삼아 예배드리는 것을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청교도인 토마스 왓슨(Thomas Watt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들은 몸은 교회당에 있으나 그의 마음은 침대에서 뒹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에 당신이 졸음을 참을 수 없다면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해야 한다.”

 

기도원에서 만난 사람

 

언젠가 어느 기도원에서 집회를 하고 있을 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한 성도가 제게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남루한 옷에 털모자를 뒤집어 쓴 병색이 깊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하나님 앞에 함께 예배하던 지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해 주시는 은혜로운 예배시간에 꽤 오랜 기간 거의 매주 졸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지체가 예배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 예배하는 동안 그는 자신을 향해 하나님의 거듭되는 중요한 경고를 놓쳤고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얼마 후 그의 죽음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저는 거기서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 자의 영적인 손해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핑계를 찾지 말라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성도들의 한 핑계 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설교자에 대한 인격적인 흠을 빌미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빌미는 목회자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의 인격적인 흠이나 생활의 결함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일들이 있을 때 떠벌리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에 그럴 수가! 나는 그 설교자에게 너무나 실망했어. 목사가 그럴 줄이야.

여태껏 은혜 받은 것 다 헛것이었어. 나는 이제 설교는 듣지 않기로 했어.”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를 하나님 말씀 되게 하는 것은 설교자의 인격이 아니라

그 설교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이러한 거룩한 삶이 설교의 주석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맺음말

하나님께서 깨닫는 것을 예배에 중심이 되게 하신 이유는 우리로 행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통해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설교를 통해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이제 여러분의 예배태도를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