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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남준목사

아내도 ‘그릇’이다.

아내도 ‘그릇’이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3:7

 

 

◑아내의 사명을 인정하시라

 

▲아내=그릇=사명자

위 성경은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 ‘그릇’이라고 하는 단어는, 성경에서 사명을 가진 자를 가리키는 비유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을

금 그릇, 은 그릇, 귀하게 쓰는 그릇, 천하게 쓰는 그릇 등등

각자 목적에 맞게끔 선택하셨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딤후2:20

여기서 여자가 예외가 아닌 것은 당연합니다.

 

 ‘그릇이 사명을 의미’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을 부르시는 장면 속에 더 잘 나타납니다.

주님은 바울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가 이방과 임금과 나라들을 나에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택한 내 그릇

이라고 했습니다. 행9:15

 

▲우리는 흔히 아내의 삶이 남편의 삶에 종속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는 해외 선교에 꿈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을 선교를 위해 부르셨다고 수년간 간증하더니

그만 시골교회를 섬기는 어떤 목회자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해외선교를 향한 그 꿈이 자매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자매만의 생각이었는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처럼 여자가 가진 꿈은 독립적이지 않고

어떤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느냐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여자에게는 특별한 소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따라가기 마련이기에 남자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여자는 거기에 종속되고 부속품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그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벧전3:7

 

▲일을 같이 해도 사명은 따로다.

이것은 그 아내와 남편이 결국은 같은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그 사명(使命)은 각각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가 자기를 돕는다고 해서 아내를 자신의 종처럼 생각하거나

자신의 일을 돕기 위해서 시중드는 사람처럼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아내 역시 남편과 함께 동일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가정에서는, 남편은 머리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순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내도 바깥에서 자기 고유한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도 그것을 인정해 주고 외조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남편들은 아내를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택하신 독자적인 그릇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두 종류의 아내 사랑

 

오늘날 가정의 가치가 많이 허물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올바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아내 역시 성경적으로 남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데는 두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1. 비인격적, 애완견적 사랑

애완견적 사랑은, 남편이 지시한 대로 말을 잘 듣고 복종하기 때문에

뭔가를 보답해 주는 식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마치 애완견을 키우듯이 먹이고, 입히고,

사랑해 줍니다만... 아내를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첩을 둔 남자들이 이렇게 첩을 사랑?했습니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남편들 가운데 다수의 사람들이

아내를 자신과 함께 동등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아서 살아가는

‘은혜의 그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다툼의 원인을 살펴보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는데

아내는 사랑받을 짓을 안 한다는 것으로 돌립니다.

 

그런 사랑이 바로 ‘애완견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애완견적 사랑은 베푸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 사랑에 희희낙락하는 생각 없는 아내들도 문제가 많습니다.

 

▲2. 인격적인 사랑

인격적인 사랑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이익 때문에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주는 것이 좋아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퍼붓는 사랑도 아닙니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인정해 주며,

그 사랑의 질서 안에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데서 오는

사랑입니다.

 

그 인격적 사랑의 중요한 특징은,

상대방이 부족할지라도, 그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미성숙할지라도 인내하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인격적인 사랑은 ‘어설프게 서로를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지식을 따라 사랑함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벧전3:7

 

여기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아내에 대한 지식’이라 생각해 봅시다.

 

 

▲1. 하나님에 대한 지식 - 모성적 부성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아버지 상을 대입하여 하나님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에, 이 아버지는

‘어머니 같은 아버지(모성적 부성)’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성이 없으십니다.

언어적으로는 남성형을 쓰지만,

이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언어의 소산일 뿐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깃들어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희랍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 실려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둘이 쪼개져서 남자와 여자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이는 온전하고 고상한 인간들이, 신들의 지위를 넘보게 되자

신들이 저들을 그리 갈라놓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이루어졌으며,

성인으로 자라나 인간으로서 고상해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짝을 찾기에 정신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신화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원리 속에는

그분의 온전하신 성품이 배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합쳐질 때 온전해진다.

남성은 남성이고 여성은 여성인데,

남성 속에 여성 호르몬이 흐르고, 여성 속에 남성 호르몬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체 안에 두 호르몬을 같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 성품 모두를 가지고 계시듯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 남성에게도 여성성을,

여성에게도 남성성을 주셨지만,

동시에 이 두 사람이 본성적으로 구분이 되게 만드셔서

두 사람이 합하여 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을 자손들에게 잘 보여 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 것을 남녀로 하여금 나누어 가지게 함으로써

온전한 그분의 성품을 알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