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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 ; 14 - 22 제 목 : 종교개혁과 신앙개혁 운동

2012.10.28. 주일 낮예배 설교문
        【종교개혁 기념주일】
본  문 : 요한계시록 3 ; 14 - 22
제  목 : 종교개혁과 신앙개혁 운동
찬  양 : <새>93, 349, 351, 546, 585.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세세 무궁토록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났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춥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곤 합니다. 대관령과 오대산 등에서는 벌써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벼 수확은 거의 끝난 것 같고 밭작물 수확만 남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쁜 계절일수록 우리들의 신앙은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 지며…” 이 말씀은 씨뿌리는 봄철 농번기 때나 거두어들이는 추수 때에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곧 주일을 성수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 주일입니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10월 31일인데 매년 10월 끝 주일을「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매년마다 지키는 주일이지만 금년에도 종교개혁이 무엇이며, 또 오늘의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이 날을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칭찬과 책망과 권면과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과 또 우리교회도 이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지 살펴보면서 오늘의 우리들은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인가를 깨닫고 이 시간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아 멘>

 


1.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이란 성탄절과 부활절 다음으로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는 가장 뜻 깊은 주일입니다. 천년의 기나긴 중세 암흑시대가 막을 내리고 부패한 천주교의 무지한 교권의 탄압에서 해방이 되어 복음의 광명을 되찾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개혁 주일에 대하여 해마다 말씀을 드리지만 오늘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종교개혁은 지금으로부터 495년 전 1517년 10월 31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캐톨릭교회에서 제성절(The All St's day)이라고 불리는 천주교의 명절날인데 그날은 세상을 떠난 많은 성자들(우리 기독교로 말하면 순교자들)을 숭배하는 날입니다. 이날도 예외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지난번 성지순례 때에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을 갔습니다. 광장 뜰에는 20m가 넘는 아름드리 돌기둥이 280개가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성인 130명의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독일의 신부이면서 뷔텐베르그(Wittenberg)대학의 신학 교수인 마틴 루터(M, Luther)가 교황의 부당한 이단설에 항거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그 대학 강당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M, Luther)가 종교개혁 기치를 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그 유명한 면죄부 때문입니다. 당시의 교황인 레오10세 가 자기 당대의 사업으로서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데 사업비가 부족하여 이 면죄부를 고안해 낸 것입니다. 그것을 알브레트(Albrecht)라는 사람이 청부를 맡아서 전 유럽에 판매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일행이 독일에 와서 면죄부를 파는 광경을 본 루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황이 발행하는 이 면죄부만 사면 자신의 죄는 물론이고 모든 가족들의 죄가 다 사함을 받고 심지어는 죽은 조상들의 영혼까지도 지옥에서 풀려 나와 천당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듣고 그것을 사겠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기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악행을 그대로 둔다면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하나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요 교인들의 참다운 신앙을 말살시키는 일이라고 확신한 루터는 급기야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는 이 말씀에 힘을 얻고 외치기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Scriptura)
      오직 성경(Sola Gratia)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Deo Gloria) 은 루터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는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천주교의 세력은 말할 수 없이 막강하였습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말하기를 “마귀가 이 도시의 기왓장 수만큼 많다고 해도 나는 반드시 이 일을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일을 하는 데는 수많은 고난과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때로는 좌절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는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이때에 작사 작곡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같이 1절만 불러보겠습니다.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그래서 종교개혁은 항상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들의 신앙을 새롭게 개혁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과거의 나태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이제는 과감하게 개혁을 하여야 할 때가 된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종교 개혁과 신앙개혁 운동”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2. 오늘의 우리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에 개혁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초대 일곱 교회는 당시 실존해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 일곱 교회를 시대적인 상황과 예언적인 의미에서 볼 때 초대 일곱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시작이 되어서 예수님의 재림시까지의 시대를 일곱 시대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후 1900년 이후부터 앞으로 언제인지는 몰라도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까지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 시대의 모든 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책망하신 말씀이며 당연히 그 속에는 우리 ○○교회도 포함이 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라오디게아란 뜻은「백성을 기쁘게 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당시 상업이 발달이 되어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었으며 이 도시의 사람들은 지나칠 만큼 타협심이 많고 이렇다 할 특징적인 정신 사관이 없이 평범할 뿐이었습니다.
       또한 라오디게아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어서 관광객들이나 병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와 같은 천혜의 조건들이 그 도시를 미온적인 도시가 되게 한 동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이렇게 미온적인(미지근한) 도시로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 생활도 그저 형식적으로 교인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 뜨거운 열정이 없었고 모두가 미적지근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부요한 물질의 병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러한 물질의 부요함보다는 사랑과 믿음과 은혜가 충만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칭찬은 하나도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3.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은 책망에 대하여 상고해 보겠습니다.

 

(1)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계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냉철하게 차갑든지 열정적으로 뜨겁든지 해야 합니다. 그날그날을 안일한 가운데 아무런 발전이나 진보가 없이 나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살전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우리 기독교는 적당주의나 중립적인 태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토해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이것은 바알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닌 자들을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교회도 아니고 세상도 아닌 자들을 주님은 책망하십니다.
        교인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교인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닌 자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병균의 발생은 미지근한데서 많이 발생을 하고 번식을 합니다. 찬 곳이나 뜨거운 곳에서는 세균 번식이 잘 안되지만 미지근한 곳에는 항상 세균이 잘 번식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도 신앙이 미지근할 때 침투를 하게 되고 사탄의 유혹도 우리들의 믿음이 미지근할 때에 적극적으로 공격해 옵니다. 마귀는 미지근한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반면에 마귀는 열심히 뜨겁게 교회 다니는 것, 뜨겁게 기도하는 것, 뜨겁게 헌금하는 것, 뜨겁게 봉사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금 신앙은 뜨겁습니까? 차갑습니까?
       주님으로부터 토함을 받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한 사울이라는 사람은 매우 차가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아주 뜨거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뜨거운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두 번째 주님의 책망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우리들은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고 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을 스스로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17절)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17절 말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게 되면 교만하여져서 자신을 볼 줄 모릅니다. 그래서 저들은 물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영적 상태가 지금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3,40년 전의 배고픔과 헐벗음에서 헤어나 이제는 국민경제가 높아졌다고 해서 사치와 낭비와 향락에 빠져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 자신이 과연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가, 아닌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4. 그러면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 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부요함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부요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벧전1:7절 말씀 “신앙은 불로 연단한 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은 신앙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어떤 시련과 고통을 당해도 절대로 변질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은 신앙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이와 같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어떤 환난이나 시련 속에서도 영원히 변함이 없는 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찬450장 4절>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아 멘!

 

(2)흰옷을 사서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비단 옷을 입어도 믿음의 수치를 가리지 못한다면 마치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 잎사귀로 앞을 가린 아담과 하와와 같은 것입니다.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얻은 성결한 심령을 말합니다. 이 옷은 주님만이 주시는 신부의 예복입니다. 장차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때 이 세마포 예복을 입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이 주시는 이 예복을 지금 입었습니까?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하셨습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이 말씀과 같이 계시의 말씀 즉 주님의 말씀이 바로 영의 눈을 뜨게 하는 안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실상은 영의 지혜로서 알 수가 있고, 죄를 발견하는 것은 영의 능력으로 가능하며, 내세 즉 영생의 세계를 보는 것도 이 영안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의 눈이 밝아지면
      ①자기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②예수를 볼 수가 있습니다.
      ③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④천국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⑤불쌍한 영혼을 보게 됩니다.

 

(4) 다음 주님의 권면의 말씀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열심은 뜨거운 마음을 말합니다. 열심히 식어지면 미지근해 지고 더 식으면 차가워집니다. 차가워진다는 것은 곳 죽음을 의미합니다. 연탄불이 꺼지든지 보일러가 꺼지면 방바닥이 차가워집니다. 죽음 사람에게는 체온이 없습니다. 차갑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믿음이 식으면 이는 곳 영혼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시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 성도들은 언제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시간 주님 영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5. 그러면 오늘의 이 시대가 필요한 신앙 개혁 운동은 어떤 것인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도 교회적으로나 아니면 교단 적으로나 또는 개인적으로도 고치고 새롭게 개혁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치고 개혁하고 새로워 져야 합니다.
        사무엘이 외치는 종교개혁, 세례요한이 외치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고 니느웨 성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수문 앞 광장의 회개 운동과 개혁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1) 오늘의 종교개혁은 먼저 자기의 신앙 개혁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자기 개혁이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새로워 져야 합니까?
       ① 우리의 신앙이 새롭게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신앙이 좋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절대로 연조와 신앙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다닌 사람들을 보면 타성이 붙고 요령만 생겨서 하나님 앞에 형식적인 믿음이 되어 버립니다. 형식과 외식에서 과감하게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② 우리의 생활도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보십시오 불신자들과 비교하여 과연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이켜 보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행함의 생활로 변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③ 우리의 봉사도 헌신도 개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봉사니 헌신이니 하는 말들을 곧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주님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고 얼마나 봉사를 하였는지도 이 시간에 돌이켜 보고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2) 자기의 신앙 개혁이란 인간성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실상은 믿음이 없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믿음이 없이 살아온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인간성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처럼, 시몬이 변하여 베드로가 된 것처럼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릇을 만드는 공장에서 수백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 냅니다. 그 중에 재떨이가 있습니다. 그 재떨이는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재떨이입니다. 재떨이는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밥이나 음식을 담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악 된 인간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새롭게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3) 인간성이 변화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낡아서 못 쓰는 그릇이나 고철들은 그대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3천도 이상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 녹아져서 새로운 제품의 그릇이 되어야 하듯이 우리의 인간성 변화는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령 받고 변화되면 하나님의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나이 80세에 백발을 날리며 호렙산 기슭에서 양을 치는 목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불러 성령을 체험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일생 동안 고기나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성령 받고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습니까? 바울도 성령 받고 거듭나서야 하나님의 큰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고하면서, 주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잘 못된 것은 회개하여, 뜨거운 열심 있는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려면 열심을 내야 합니다. 
        마틴 루터와 같이 불의와 죄악과 싸워서 다시 한 번 우리들 자신의 믿음에 개혁의 불을 붙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루터와 같이 모두가 신앙 개혁 운동을 일으킨다면, 우리교회는 변화될 것이고,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되고, 이 지역사회가 변화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신앙 개혁 운동이 여러분들 가슴마다 뜨겁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