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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 ; 16 - 24 핑계하지 말라

2012.11.4. 주일 낮예배 설교문
                 
본  문 : 누가복음 14 ; 16 - 24
제  목 : 핑계하지 말라
찬  양 : <새>495, 511, 526, 528, 592.

 

        할렐루야!!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이 자리에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평강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어느새 11월이 되었습니다. 금년도 이제는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금년도 이제는 서서히 마무리 준비를 하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11월은 추수의 계절이요 또한 감사의 달이기도 합니다. 여름내 땀 흘려 가꾼 것을 거두어 저장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를 하면 수장절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우리교회도 셋째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 동안 기도로써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핑계하지 말라”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찬송가 511장 3절의 내용을 따서 정했습니다. 다 같이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죽을 사람 구하라고 예수 너를 부르니
       힘이 없어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지라
       주가 주신 직분 맡아 항상 기뻐 지키며
       부르실 때 대답 할 말 나를 보내 주소서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주로 전도를 목적으로 설교를 할 때에 많이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24절에 보면 “내 집을 채우라” 는 말씀이 있어 총동원 전도 주일이나 특별 집회를 앞두고 이 말씀을 많이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가 그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 속에 있는 진정 주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절로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 날에 한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아서 식사를 하시면서 세 가지의 교훈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안식일이라도 자식이나 소나 양이 우물이나 구덩이에 빠진 것을 보면 그것을 구출하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의식보다도 어떤 이론보다도 행함과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해 주셨고
       그 둘째는, 상좌(높은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들을 보시고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마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는 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의 천국 잔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보내어 빈객들을 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잔치를 열고 지방 내의 많은 유지들을 청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상당히 실력이 있고 또 부자이며, 권력도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일제히 사절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를 샀기 때문에 그 소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갈 수가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못 간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보고를 들은 주인이 몹시 노하여 종들에게 명하기를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주인의 명을 받아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잔치 자리는 차지 않고 많은 자리가 비어 있고 음식은 많이 남았습니다. 주인은 두 번째 명을 내립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고 하면서 한마디 부언을 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를 알레고리 식으로 해석을 하면
          ① 잔치를 베푼 주인은 하나님이요
          ② 잔치는 구원의 자리를 말함이고
          ③ 종들은 선지자들과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④ 잔치에 먼저 청함을 받은 사람은 유대인들이고
          ⑤ 나중에 불려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코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유대인들은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세리와 창기 같은 사람들이 먼저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이방인의 세계로 퍼졌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1. 그러면 먼저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초대를 받았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말씀은
           ① 초청을 거부한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불행한 일이요 위협입니다.
           ② 그러나 죄인들과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 계층의 사람들, 꿈에도 초대받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구원 사역을 담당시키려고 유대인을 택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그 사명을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약속하신 언약을 그들 스스로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행13:46절에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고 하였고,
        (행13:47-48)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초대를 받고도 초대를 거절한 이유를 보면

 

(1) 밭을 샀기 때문에 그것을 보러 가야 한다고 거절을 하였습니다.

 

       밭은 투자의 상징이요 물질의 상징입니다. 곡식을 심고 가꾸어서 거두어들이는 사업체입니다. 밭은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사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천국 잔치보다 자신의 사업체를 더 중요시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밭에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꾸고, 거두어들이고, 사업 관계상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노력하는 것 귀한 일입니다.
       사람은 일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 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요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또 다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그것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소를 샀다는 것은 재산의 증식입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초대도 사양하고 하루 품삯 몇 만원에 자신의 믿음을 배반하고 자신의 영혼을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한 사람은 동정이라도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의 이 사람은 배가 고파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입니다. 재산이 점점 늘어가니까 재미가 있어서 하나님도 저버리고 신앙도 멀리하고 열심이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3) 세 번째 사람은 “내가 아내를 맞이했으니 갈 수 없다” 고 거절하였습니다.

 

        (신24:5)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이 사람의 변명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자기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새로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남의 잔치에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은 상당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 사람은 세상의 향락을 즐기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요즘 세상에 향락의 요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다면 그는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낚시 가느라고 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등산 가느라고 주일성수를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골프 치느라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잔치 집에 가느라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 집 잔치에 와 주었으니 가보아야 사람의 도리를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장날이라서 장에 가느라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세상의 향락에 빠져서 하나님을 등한시 해 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 종류의 사람 모두가 거절하는 그 이유가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러한 사소한 개인의 어떤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천국 잔치의 초대를 거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원치 않으실 뿐만이 아니라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24절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기회는 1회밖에 없습니다. 그 기회를 잃어버리면 영원히 그 잔치에 참여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25장의 10처녀의 비유에서도 기회는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2. 두 번째 초대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잔치의 주인 되시는 왕, 하나님은 처음 초청하였던 사람들이 거절하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초대를 합니다. 처음부터 초대의 자격에서 제외되었던 죄인, 세리, 가난한자, 불구자, 맹인, 절름발이들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실 그날그날을 죽지 못해 살아가는 소외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감히 부잣집 잔치에 초대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눌린 자를 부르시고,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1) 주님은 세상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치 탕자와도 같고 요나와도 같은 나와 여러분을 우리 주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2)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마귀의 종, 죄의 종, 육신의 종으로 살다가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당 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불러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아 멘>

 

(3) 목마른 자들을 부르십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갈과 같이 이스마엘과 같이 사막과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영적 목마름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러 생수의 성령을 주셔서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4) 병든 자를 불러 주셨습니다.

 

       본문 21절 말씀 (눅14:21)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마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우리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병든 자를 고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3.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핑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은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소외 계층의 사람들에게 많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사실상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택함을 받았지만 그 구원을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성도들이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내용처럼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1)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핑계를 댔습니다.

 

       오늘의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핑계를 하지 않습니까? 밭일이 바쁘다. 추수하기에 바쁘다. 결혼식에 가야한다 환갑잔치에 가야한다 등등의 핑계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적당히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잔치의 부르심에 거부하고 있습니다.

 

(2) 핑계의 역사를 보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담은 해와 에게, 해와는 뱀에게 핑계를 했습니다. 가인도 아벨을 죽이고 모른다고 핑계를 하였습니다. 사탄의 전술 전략은 우선은 죄를 짓게 만들고 그 다음은 은폐하여 감추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발각이 되면 그 때는 핑계를 댑니다.

 

(3) 핑계의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핑계의 원인은 사탄의 전술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지금까지 사탄은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생리가 억압을 하면 할수록 더욱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전술을 바꾸어서 어떻게든지 교인들이 교회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이용물이 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5장 이하의 말씀에 보면 모세가 바로 왕에게 가서 우리 백성들이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였을 때에 바로는 ‘절대로 안 된다’ 고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재앙이 온 나라에 내리니까 그 다음에는 ‘광야로 가지 말고 이곳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안 된다고 하였고 애굽 나라에 다시 재앙이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바로가 말하기를  ‘그러면 여자와 아이들은 가지 말고 남자들만 가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자와 아이들을 볼모로 잡아놓으면 남자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계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집안에 온 식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와 같이 꼭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그래서 사탄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교회 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것도 안 된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소나 양이나 가축은 데려가지 말고 사람만 가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부분에서 조심하여야 합니다. 바로는 많이 양보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는 드리되 희생이 없고 제물이 없는 빈 제단을 드리라는 어마 어마한 사탄의 음모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헌금 없이 빈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이와 같은 달콤한 말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몸만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헌금은 무슨 헌금이냐 안 해도 괜찮다’ 이와 같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사탄의 유혹은 항상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해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 과연 지혜롭게 할만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술 전략입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림으로 은혜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하는 방법은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교회를 못 가게 하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② 교만에서부터 생겨납니다.
       나 아니면 어디 되나 보자 하는 심리,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서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잔치도 나 아니면 안 되겠지 하는 교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③ 그 외에도 우리들의 주변에는 핑계할 수 있는 요인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핑계의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4) 핑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모두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① 잔치가 중단될 줄 알았는데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나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어느 특정인 몇 사람 때문에 중단되는 법이 없습니다.
        ②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 잔치는 채워져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청함을 받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로서 합리화를 시키려고 해도 안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일도 귀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우선순위를 정하여야 합니다. 무엇을 먼저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농사일도 순서대로 하여야 힘도 덜 들고 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느냐? 내일을 먼저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절대로 사탄의 그럴듯한 이유와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이 해와를 유혹할 때 해와가 선악과를 보니까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하다” 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그럴싸한 유혹의 뒤에는 독약과도 같은 죽음의 독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이유에서건, 또 어떤 경우이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간에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핑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롬1:20)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핑계는 자신의 믿음을 파멸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핑계는 사탄의 이용이 되는 것입니다.
        핑계는 천국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래도 핑계를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도 오라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써 주시옵소서”
       “이 무익한 종을 불러 사명을 주시고 주님의 일군으로 써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