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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는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대상 4:9-10)

야베스는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대상 4:9-10)

 

  오래 전에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을 썼던 '부르스 윌킨슨'이라는 사람은 무려 30년 동안 오늘 본문의 이 '야베스에 기도'를 붙잡고 계속 기도한 결과 받은 축복이 엄청났습니다. 그것을 책으로 기록했는데 그 책이 나오자 말자 일년동안에 500만 부가 팔린 베스트 셀러가 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존'이라는 성도가 입신해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에 가서 보니까 성경에 있는 대로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도 있고, 천사들의 청아한 음악소리도 있고 다 있는데 이상하게 생긴 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안내자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바닥에서부터 천장의 높은 데까지 많은 선반이 있고 그 선반에는 빨간 리본이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자마다 개인의 이름이 써 있는데 이 땅에 살아있는 성도들의 이름이 다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이 '내 상자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베드로가 안내를 해서 자기 상자 앞에 가서 하얀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가 평소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그 온갖 좋은 선물꾸러미가 가득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존이 그걸 보고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베드로가 '이것은 천국에 보관할 것이 아니고 땅위의 성도들에게 주려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선물들인데 성도들이 기도할 때마다 그것을 주기로 한 것인데 존은 그런 것들을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에 보관만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무수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려고 하는 것들이 많지만 자기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늘 보관창고에 보관되어 있고 자기는 지금 빈털터리로 산다는 것을 깨닫고 존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응답이고, 축복이고, 약속이고, 축복의 원리입니다. /믿/ 무엇이든지 원리가 있습니다. 원리를 따르면 무슨 일이든지 순조롭습니다.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 원리입니다. 그런데 강제로 위로 올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강원도에 있는 어느 음식점 뒤에는 산을 개조하여 폭포를 만들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속이 후련합니다. 그러나 전기료만 한 달에 수십 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아가라 폭포는 수 천년동안 그렇게 많은 물을 품어 내어도 전기료 하나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물을 이용하여 대단한 수력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원리를 따르면 순조롭습니다. 그런데 축복 받은 사람들을 보면 원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축복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 중에 눈에 돋보이는 원리가 바로 오늘 본문의 야베스 축복의 원리입니다. /할/ ◀제목 소개!▶

 

  우리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빗대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본문에 나오는 야베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는 어렵게 세상에 태어났으며 여러 가지 환란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는 존귀한 자가 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자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대상 4장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유다지파와 시므온 지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지파는 다윗 왕가를 배출한 지파이어서 다윗 왕가를 중심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아주 특이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이 야베스입니다. 그런데 야베스에 대한 기록은 야베스가 유다지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야베스의 부친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야베스의 모친이 그를 출산하면서 수고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 받아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녀들의 행복을 바랍니다. 그래서 이름도 될 수 있으면 좋은 이름, 긍정적인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어머니는 자식의 이름을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즉, '고통'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아마 야베스가 태어날 때,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 어머니가 야베스를 힘들게 낫고 죽었을지도 모르고, 야베스를 낳았을 때 가정에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쳤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식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짓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야베스가 평생동안 '고통아, 고통아'라고 불렸을 때의 그 고통과 절망감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더욱이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운명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면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 뜻 그대로 야곱은 평생 동안 남의 것을 움켜쥐는 인생으로 삽니다. 형, 에서의 것을 움켜쥐기 위해 거짓말하고 사기를 치고 삼촌 집으로 달아납니다.
  삼촌 집에서도 삼촌 라반의 것을 움켜쥐려고 하지만 이번엔 자기가 속임을 당하면서 20년 동안 수고로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얍복강에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창32:28). 이는 '더 이상 사기꾼 인생으로 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줍니다.
  그렇습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운명입니다. 야베스는 고통스럽게 사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 말씀합니까? 9절의 첫 부분을 보십시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할/ 고통스런 야베스의 운명이 존귀한 자의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운명을 바꾼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본문의 10절에 보면, 야베스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야베스는 평생 동안 10절에 있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옵소서', '하나님,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하나님, 당신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이 네 마디 기도가 야베스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할/
  어떤 학자들은 야베스의 인생이 하는 일마다 '수고, 고통, 슬픔' 뿐이라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의 이름의 뜻대로 사실 그의 인생의 전체가 고통의 삶이요, 괴로운 삶이요, 답답한 삶이요, 환난을 겪는 삶을 살아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야베스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됩니까? 어떤 문제가 하나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그래서 괴롭고, 힘든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인생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기도로서 그 인생의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인간의 삶에 주어진 고통은 '기도하라'는 신호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기도로서 고통의 야베스를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 인생의 야베스를 처리해 주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믿/
  그렇습니다. 기도가 축복입니다. 기도가 응답입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쁠 때도 하나님께 기도했고 감사할 때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시116:1-4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심으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할/ 다윗은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예수님도 가장 힘들 때 산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지기 전날 밤에도 산에 올라가 밤새 철야기도를 하셨고, 공생애를 시작하던 때도 먼저 산으로 올라가 40일 금식기도하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기도가 능력이고 기도가 축복입니다. 왜 축복입니까?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할/
  시91;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하십니다. '간구'란 최선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축복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가 응답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할/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 야베스 기도가 우리에게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축복하는 기도가 약합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은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교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내가 능력 있어야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할/
  ▶그렇게 어려움이 많은 슬픔의 사람, 고통의 사람, 괴로운 사람 야베스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역전의 드라마가 자주 나옵니다. 그 가운데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아주 감동을 줍니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18만 5천의 군대로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 앞에서 너무나 나약한 왕이었습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과 히스기야 왕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사실 전쟁에서는 강한 자는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이고 약한 자는 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산헤립은 강한 자이기에 존귀한 자요, 히스기야는 약한 자이기에 천한 자입니다. 그런데 정 반대로 강한 자 산헤립은 천한 자가 되었고, 약한 자 히스기야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정답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산헤립을 이길 수 없는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야베스처럼 울부짖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 것처럼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로 하여금 역전하여 승리하게 하셔서 준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멘!/ ▶야베스를 분석해 보자!

 

  ①'야베스는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9).
  어떻게 고통의 사람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까? 기도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할/ 여기 '존귀하다'는 말은 '높일 만하고 섬길 만하고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삶의 목표는 어느 정도여야 하겠습니까? 높임 받아야 합니다. 인정도 받아야 하고 사랑도 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돈이 많고, 권력을 잡고, 공부는 많이 했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공부도 많이 못했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공부도 많이 해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자입니다. 존경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인정받을 때 성립됩니다.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존경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고리대금을 했다든지, 부동산 투기를 했다든지, 마약밀수로 부자가 됐다면 존경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떼돈을 벌어 갑부가 됐다 하더라도 낮과 밤을 주색잡기나 도박으로 보낸다면 존경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로 벌고 바로 써야 합니다. 권력도 바로 잡고 바로 써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칭송은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욕을 먹진 않아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이 야베스는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존귀한 자라고 인정해 주었습니까?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기도합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할/
  사실 여기 나오는 '존귀'는 하나님이 높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고 대상17:18절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라고 했고, 솔로몬은 전6:2절에서 '사람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라고 했습니다.
  '존귀'는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받아야 합니다. 히5:4절에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존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16:3절에 '땅 위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또 사49:5절에서도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할/
  ▶여러분,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존귀입니다. 왜 존귀한지 아십니까?
  첫째는 가치 때문입니다. 주님의 생명과 맞바꾼 존귀한 생명입니다.
  둘째는 쓰임새, 용도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라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존귀한 잡니까?
  셋째는 우리의 주인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인정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황송하게도 우리들을 향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도 흠모하는 대상'이라고 하셨습니다. /할/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의 헌신과 충성을 인정해 주시고 복음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열정과 수고를 보시고 인정해 주시면서 '그래 너는 참 존귀하다'고 하십니다. /아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존귀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바로 그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들 보다 존귀한 자'라 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존귀한 자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우리가 잘 아는 카터 대통령은 재임 시에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었답니다. 그러나 퇴임 후에 가장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인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귀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카터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주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대통령으로 사용하려고 하신 것보다 그 후에 쓰시려고 하신 계획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불과 4년이지만 그 후 일은 무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야베스의 복을 받아 더 크게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②야베스는 원래 가난하고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9).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 아픔,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아주 고통스럽게 낳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고통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태어날 때 뿐 아니고 그가 자랄 때도 아주 고통스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말은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자랐다는 말입니다. 아주 초라하게 자랐다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그 많은 백성들 중에서 가장 빈약하고 초라하고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야베스는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야베스를 '그 형제들 보다 존귀한 자'라고 했는데 이 야베스가 후에 크게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야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서 마침내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할/
  그래서 이 야베스는 오늘 성공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베스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공했습니까?
 
  ③성공의 원동력은 기도입니다(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또 '기도하면 승리자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으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문제를 안고, 안되고, 막히고, 얽히고 설킨 문제 덩어리를, 자신의 원함을, 자신의 성취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고,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에게 자기의 소원을 구하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 분만을 의지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하나님만이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히6:14절에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여러분! 마음이 아프고, 피곤하고, 낙심되고, 좌절되고, 답답하고, 괴롭고, 밉고, 원망이 나오고, 얽히고 설킨 문제로 고통 당하고, 상하고 찢긴 문제로 힘들어하며, 마음이 세상 적으로 흘러 들어가 소망을 잃어갈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께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것들을 다 맡아 주십니다.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 에 살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문제의 해결이 있고, 하나님을 찾을 때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오십시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찾아 나와야 합니다. /아멘!/
  ⑴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시30:1절에서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3절에서도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 '끌어낸다.'는 말은 '깊은 웅덩이에 빠져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없을 때 손을 내밀어 끌어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벼랑에 매달려 떨어지기 일보 전 손을 내밀어 끌어 올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 절망, 고통, 죽음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6장을 보면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의 국무총리로 있던 어느 날 그를 시기한 정적들의 음모로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그 이유는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정적들의 음모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단6:10절에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리고 난 후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23절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 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그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사자 굴에서 끌어내신 것입니다. /할/
  다윗을 끌어내시고 다니엘을 끌어내시고 바울을 끌어내신 하나님은 우리도(나도) 끌어내십니다. '죄와 사망의 웅덩이에서 절망과 고통의 심연에서 환난과 시험의 질고 속에서' 우리를 끌어내십니다. 시30:3절에 '끌어내시고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멘!/
  ⑵그는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부르짖는 기도를 했습니다. 여기 '아뢰어 가로되' '아뢰다'는 말은 '부르짖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야베스가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고, 또 '아뢰다'는 말은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고백의 기도'입니다. /할/
  오늘부터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당한 문제와 해결을 위하여, 또 여러분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아뢰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여기 '원컨대'는 '내가 소원한다', '내가 바란다'라고 하는 간절한 소원과 소망이 섞인 기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하기 위한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의 간절한 소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싸인(Sign)입니다.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삼하7:29절에 보면 다윗 왕도 복 받기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 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우리들도 '우리 집을 복되게 하옵소서. 우리 회사를 복되게 하시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복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이 진짜 복'이라고 했습니다. /할/

 

  ④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10)
  ⑴'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소서' 여기서 우리는 복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소서'라는 말은 '복이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에 놓여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좋아합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해가 바뀌면 무엇이라고 인사합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 되세요' '대박 터지세요'
  그런데 복을 얻기 위해서 누구에게 복을 구해야 합니까? 주께 구해야 합니다.
  '주께서' 이 말씀은 복의 근원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을 주관하시고, 결재하시며,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지 않고 어떻게 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복에' 복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가는 것, 가장 큰복 인줄 믿습니다. 또 육적인 복이 있습니다. 건강에 복, 재물의 복, 만사형통의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적인 복은 영적인 복을 받으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삼1: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형성입니다.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입니다. 복은 하나님과 손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욥22:21절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할/
  여러분, 사람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소유가 즐거움과 평안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재물은 많은데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마음에 복 받은 사람이 아니며, 유명한 사람인데도 근심이 있으면 복 받은 사람이 아니며, 지위가 높고 많은 지식을 가졌는데 그 마음에 늘 불안하고 근심이 있다면 복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은 마음에 평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갖되 즐거움이 함께 있는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10: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사람을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멘!/
  '내게 복에 복에 복을 더하사' 지금 현재 있는 것 위에 더 큰복으로 채워 주소서, 더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고백한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복 인줄 믿습니다. 이 복은 은혜 위에 은혜의 복이요, 능력 위에 능력의 복이요, 자손 만대로 이어지는 축복입니다.
  출20: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보태기의 종교입니다. 플라스 종교입니다. 누가 복을 받아야 합니까? 네가 받아야 합니다. /믿/
  야베스는 이미 받은 복이 있는데 그 위에 복을 더해달라는 것입니다. 복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받을수록 좋고 더할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저는 뺄셈보다는 더하는 셈을 좋아합니다. 나누는 셈보다는 곱셈을 좋아합니다. 100에다 100을 더하면 200이 되지만 100에다 100을 곱하면 1만이 됩니다. 축복과 은혜는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어야 합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작은 복에서부터 큰복에 이르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복에서부터 신령한 복에 이르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부모의 축복이 자손 대대에 이르는 복입니다. ㈃끊임없는 축복입니다. 즉 물질 위에 물질을, 건강 위에 건강을, 사업 위에 사업의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⑵'주께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이것은 곧 자기의 생존 세계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어디서든지 길이 막히지 않는 형통의 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들의 활동 무대는 결코 제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서남북이 성도들의 활동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창13:14-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얼마큼 축복을 주셨습니까? 동쪽을 바라보고 보이는 땅을 다 그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서쪽을 바라보고 보이는 땅을 다 그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남쪽, 북쪽, 그가 볼 수 있는 곳을 다 그에게 허락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뜻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서남북, 바라보는 것을 다 그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가 받은 선교 사명의 영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으로 점점 선교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이 기도의 응답대로 역대상 2:55절에 보면 '야베스의 이름이 그 지역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존귀하게 보셨으면 그 땅 이름을 '야베스'라고 붙였겠습니까?
  종종 훌륭한 사람들의 이름을 땅 이름으로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땅 이름을 살펴봐도 '을지로, 퇴계로, 세종로'와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 공항도 '드골 공항, 케네디 공항,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등 세계적인 공항에는 다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할/
  ㈀'지경은?' 내가 치고 있는 울타리입니다. 소유한 범위를 말합니다. 즉 지금 거하고 있는 집, 사업장, 어떤 자기의 소유를 말함이요, 직분이요, 위치이기도 합니다.
  ▶건국대학교 교수였던 유태영 박사는 조그만 섬 마을에서 중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머슴살이를 하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 조그만 섬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나도 이 세계를 향해 뜻을 펼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하고 늘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런 믿음의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갔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그는 하나님의 인도로 엉뚱하게도 덴마크의 왕에게 '덴마크에 가서 농사를 배워 한국의 농촌을 부흥시키고 싶습니다.'라는 간절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덴마크의 왕이 비행기표는 물론 장학금까지 마련해서 그를 초청했습니다. 그가 덴마크에서 2년을 공부하니 한국에 적용할 더 이상의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에 편지를 보내서 이스라엘로 가게 되었고, 히브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의 지경은 조그만 섬 마을에서 덴마크로 이스라엘로 대한민국으로 넓어졌던 것입니다. /할/
  ㈁'넓혀 주소서' 글자 그대로입니다. 넓혀 달라는 말은, 큰 발전을 달라는 말이요, 확장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넓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지경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지경도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장막 터의 지경도 넓어지기 바랍니다. 월세는 전세로, 전세는 내 집으로, 내 집은 더 넓은 집으로 지경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사업도 두 배, 세배로 넓어지고,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도, 때를 따라 진급의 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들의 십일조, 헌금의 지경도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지경도 넓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차고 넘치고, 성전 터도 넓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 꿈을 가지고 입을 넓게 엽시다. /할/
  엡3:19절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 '충만'의 헬라어의 뜻은 '가득 채운다'는 것입니다. 넘치도록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할/
  ▶건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건강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합니다.
  ▶물질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은 주실 수도 있고, 가져가실 수도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일찍이 깨달은 다윗 왕은 대상29:11절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했고, 12절에서는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할/
  ▶믿음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꿈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고, 병을 고치고, 성공을 도출해냅니다. 믿음은 절망을 이기고, 희망을 줍니다. 믿음은 패배감을 벗어버리고, 비전과 소망을 갖게 해줍니다. 믿음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영생을 누리게 해줍니다. 믿어야 죄 사함 받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믿음이고,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시81:10절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여기 '입을 크게 열라'는 말은, 큰 꿈, 큰 비전을 갖고 앞을 내다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없는 것, 안 되는 것, 못하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⑶'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주세요!'
  ㈀주님의 손은 긍휼과 자비의 손입니다(눅15:20). 탕자와 같이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 주는 손입니다. 사41: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합니다. /아멘!/
  ㈁주님의 손은 크고 능하신 권세 있는 손입니다. 시편기자는 시89:13절에서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고 했습니다. 그 누구도 주의 손을 당할 자가 없으며, 그 누구도 주의 보좌보다 높이 오를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때 자만했던 베드로는 이 사실을 깨닫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고 했습니다. /할/
  ㈂주님의 손은 모자람이 없는 넉넉한 축복의 손입니다. 요6:13절에 '저희가 다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작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주님이 손들어 축사하시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기는 넉넉한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과 베드로를 잡아 주신 손입니다. 그 손이 저와 여러분들을 붙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⑷'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환란이 외부에서 온 환경 적인 것이라면, 근심은 내부에서 온 심리적인 요소입니다. 사람이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에서 잘 넘어집니다.
  인생의 삶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경이 넓혔으니 환란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문제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은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창22:12).
  야곱의 얍복 나루는 그 생애에 잊을 수 없는 고뇌의 순간입니다. 앞으로 가자니 형의 공격이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외삼촌 라반과 맺은 언약이 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그는 기도함으로 환란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창32:25).
  모세는 홍해 앞에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14:13)고 했습니다.
  욥의 고난은 갑절의 축복을 받는 기회였습니다. 욥23: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할/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이름은 그 인격과 그 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실 때에 그 이름을 먼저 바꾸셨던 것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시몬을 베드로로, 사울을 바울로 바꾸신 것입니다.
  야베스의 고통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함으로 그 인생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인들에게는 운명이라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는 내 인생의 야베스를 처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심'이라는 단어는 '메리조'(분리시키다, 나누다)라는 말과 '누우스'(마음)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근심이란 마음이 둘이나 셋으로 분리되고 나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찰스 스윈돌'은 '다시 웃자'라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근심입니다. 근심이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일에 대한 터무니없는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은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는 근심보다 더 심각한 것인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과 육체를 괴롭히고 모든 질병의 원인을 된다고 합니다.
  셋은 두려움(공포)입니다. 이것은 위험이나 불행이나 고통이 있을 때 느끼는 무서운 불안정인데 근심이나 스트레스처럼 기쁨을 빼앗아 가고 사람을 망가트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근심, 스트레스, 공포는 기쁘게 살고 싶은 사람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원수인 것입니다.
  근심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하여 성경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했고, 요14:1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벧전5:7절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바울은 빌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근심을 해결하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께 믿고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축복입니다. /아멘!/

 

  ⑤기도는 약속이요, 응답이요, 축복의 원리입니다(10).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여기 '허락하셨더라'는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가져 오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생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확실한 증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실망을 당치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는 결코 공수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결코 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허락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장을 꽝 찍어주셔야 합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 상사나, 주인이나, 사장이 도장을 꽝 찍으면, 그 다음엔 모든 걸 다 책임져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7:7-8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만약에 간구 해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인내와 연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믿/
  ▶미국의 '톰'이라는 수영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고 돌아와서 의기양양하게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이 금메달을 땄어요' 자랑하자, 어머니는 '너 잘했다. 그런데 엄마의 기도제목은 네가 금메달선수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금메달 감이 되는 것이란다'
  '어머니! 다른 어머니는 아들이 이런 금메달을 못 따와서 성화인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기뻐하지 않으세요?' '1등도 좋지만 예수 믿는 것이 더 좋단다' 서운한 마음에 그 아들은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한참을 배회하다가 보니까 자기가 수영 연습하던 곳이 보였습니다. 다이빙 연습을 하려고 높은 곳에 뛰어 올라갔습니다. 두 팔을 벌렸습니다. 십자가가 길게 늘어져 보였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제기랄! 이놈의 십자가는 물 속에까지 나타나는구먼' 그는 기분이 상하여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 왔습니다. 그는 무심코 수영장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수영장안에는 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차 싶어 시계를 보았을 때 그는 또 놀랐습니다. 이미 수영장에서 물을 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무릎을 끓고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뛰어 내렸다면 자살이었습니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기도는 결국 아들을 예수를 영접하게 만들었고, 믿음의 금메달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할/ 오늘 야베스는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우리도 기도로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3년 8월 18일 대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