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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사랑하면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시 122:1-9)

교회를 사랑하면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시 122:1-9)

 

  저는 얼마 전에 감동적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 마라톤 대회에서 지병으로 걷지 못하시는 어머님의 휠체어를 밀면서 그 긴 마라톤코스를 완주한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아들은 마라톤은 커녕 변변한 육상대회에도 한번도 나가본 일이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걷지 못하시고 집에만 계시는 어머님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마라톤 대회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집에만 계시는 어머님께 좋은 공기와 멋진 경치를 보여드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혼자서도 완주하기 힘든 마라톤을 어머님의 휠체어를 밀면서 완주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 청년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생각하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드디어 경기 당일이 됐습니다. 어머님은 아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안쓰럽기는 했지만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기쁜 마음으로 출발선을 통과했습니다. 달리고 또 달리며 너무 힘이 들어 '어머님이 괜찮으신 지'를 물어볼 경황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그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결국 완주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사랑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품을 수 없던 생각을 품게 해 줍니다. 할 수 없던 일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아멘!/
  그런데 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변화시킵니다. 누군가가 자신만을 사랑할 때, 사랑은 그 사람을 이기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자기 밖에 모르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사랑은 그 사람을 이타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알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게 만들고, 나아가 공동체의 덕을 세우게 만듭니다.
  더더욱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랑은 그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 줄 알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만듭니다.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고 달려가게 하십니다. /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이타적으로 변해 가야하고, 또 거룩하게 변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러분! 남은 생애에 이웃을 사랑하고 더더욱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오늘 본문은 다윗이 기록한 시편으로 표제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나와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교회를 사랑하다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바로 다윗이 교회를 사랑하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 가운데는 성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했을까요?
  이 시에서 예루살렘은 두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서울로서 다윗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성전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성전이 없으면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유명해졌습니다. 성전이 없었더라면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전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거룩한 도성으로 불리고, 성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아멘!/
  이스라엘이 남 왕국과 북 왕국으로 분열되었을 때 형편은 북 왕국이 훨씬 강했습니다.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가 북 왕국에 속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역사의 정통성은 남 왕국에서 찾습니다. 다윗 왕조의 혈통이 남 왕국 쪽으로 이어졌고, 예루살렘이 그쪽에 있었기 때문인데 예루살렘이 그쪽에 있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전이 남 왕국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일곱 번이나 대 원정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성전이 중요한 곳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말과 예루살렘 성전이 같이 쓰이는 것처럼 모든 교회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①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자!(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여기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것은 성전을 사랑하는 것이요, 성전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오늘 우리가 앉아 예배드리는 교회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우리가 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까?
  ⑴교회가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마16:18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분명히 예수님께서 교회를 '내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소유권을 주장하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소유이고, 또 이 교회가 주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사실 세상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도, 땅도, 세상 만물도, 인간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주님께서 친히 주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교회를 '주님의 것'이라고 친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회가 주님께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대하7:16절을 보면,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각별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친히 세우시고, 특별히 소유권을 선언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주님께 아주 각별한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이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이런 사실을 깊이 깨닫고, 교회를 아주 특별하게 여기고 섬겼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교회가 바로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엡1:23절에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 안에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님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할/
  물론 바울도 각 교회에 저마다 나름대로 문제가 많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 교인 중에 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쓸 때마다 힘주어 권면하고 때로는 야단까지 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주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생명을 바쳤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우리 참 행복한 교회가 주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 교회를 세우셨고, 주님께서 지금도 이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교 계심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사랑할 수 있고, 특히 우리 참 행복한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멘!/
  ⑵우리가 이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놀라운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어떻게 그 몸을 이루는가?'에 대해서 엡2:20-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은 당시 건축 방법을 비유로 하여, 교회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당시 건축 방법은 모퉁이 돌을 놓고, 이것과 연관하여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모퉁이 돌은 그 건물의 중심이고 기초입니다.
   교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그 모퉁이 돌과 연결된 건물의 부속물로서 연결되어 교회라는 하나의 건물을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할/
  고전12:27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고, 골1:18절에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이 말씀은 사람의 몸 또는 살아있는 유기체의 몸을 비유로 하여, 교회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몸은 각 지체가 연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손, 발, 몸통, 각종 체내 장기들... 이런 지체들이 저마다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사람의 몸을 이룹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머리입니다. 모든 지체들은 머리의 지시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연합하여 한 몸으로 기능하고 움직여 갑니다.
  교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예수 믿는 우리 예수의 사람들이 저마다 몸의 각 지체를 이루어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연합하여 교회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의 한 지체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교회의 한 지체로 자리 잡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의 한 부분입니다.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그 나라를 사랑하듯이, 가족이 그 가정을 사랑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의 한 지체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할/
 
  ②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성전을 세우셨으며,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초대교회 신학자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를 한 마디로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 자라가도록 하기 위해 어머니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머니 없이 아이는 제대로 자라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교회를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할/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머니로서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⑴자녀를 생산하는 일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듯이 교회는 영적 새 생명을 낳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어머니인가? 교회가 어머니입니다. 교회가 누구입니까? 주님의 지체들인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생산해야 합니다. 영적 새 생명을 낳아야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가장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최상의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다가 가장 기쁜 소식이 있을 때 누구에게 먼저 전하시겠습니까? 아무에게나 전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먼저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Good News 즉 '복된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부활, 영생, 천국' 그 보다 더 신나고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은 부활의 삶이고 천국의 삶입니다. 이 영원히 죽지 않고 구원받는 소식이 있다면 그 소식보다 더 좋은 소식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습니까?
  ㈁영혼의 가치 때문에 전도가 귀합니다. 막8:36-37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무엇과 여러분의 생명과 바꾸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귀하든지 예수님께서 죽으실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명령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복종만 있을 뿐입니다. 거절해도 안 되고 연기해도 안 되고 변질시켜도 안 되고 깎아도 안 됩니다. 명령은 명령이기에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드렸더니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 복을 받았습니다. 의무를 행하지 아니하고 권리만 주장하면 이런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제자를 두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영적으로 종합비타민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하게 되면 기도하게 됩니다. 전도하게 되면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전도하게 되면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게 됩니다. 전도하게 되면 있는 것을 주게 됩니다. 전도하게 되면 진리를 설명해 주어야 하니까 성경을 공부하게 됩니다. 전도하게 되면 부지런하게 됩니다. 전도하게 되면 사람을 사귈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한다는 것은 종합비타민은 먹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종합 신앙생활입니다. 전도하게 되면 모든 신앙생활이 완성됩니다. /아멘!/
  ⑵자녀를 양육하는 일입니다.
  어머니가 젖을 먹이며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 아이를 양육하듯이 교회는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가도록 양육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고 또한 믿음이 자랍니다. 교회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할/
  ⑶자녀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보호하듯이 교회는 교인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보호합니다. 교인들은 교회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세상에 미혹되어 믿음이 흔들이 다가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영적 교제를 나누며 믿음을 다시 추스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을 지켜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없어서는 안 되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녀야 합니다. 교회가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고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할/

 

  ③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하나요? 주님이 임재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대하6:2절에 '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 안에만 계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만든 건물 안에 갇혀 계신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성전에 계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⑴지금도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에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 그 말씀을 새긴 돌비가 언약궤 안에 담겨 지성소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에서 선포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이것은 교회의 고유 영역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믿음을 키우게 됩니다. /할/
  ⑵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에는 제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정성스런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드리는 백성들의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십니다. /아멘!/
  이렇게 말씀이 선포되고 예배가 드려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교회에 임재하심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고 그 주님과의 만남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멘!/
  ▶'에밀 부르너'라는 신학자가 '교회의 오해'라는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네 가지라고 했습니다.
  ⑴교회를 학교로 오해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⑵교회를 친교하는 곳이라고 오해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⑶교회를 자선단체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⑷교회를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단체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에 항거하고 세상을 개혁하는데 앞장서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의미의 핵심입니다. /믿/

 

  ④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사랑해야 할까요?
  ⑴마음으로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시84: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인은 마음을 다하여 성전을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때 우선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늘 마음 속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멘!/
  ▶최근 전쟁터에서 두 다리를 잃은 미군 중위와 미모의 명문대 출신 전문 여성간의 진솔한 사랑이 미국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 나간 미 육군 '댄 버스친스키' 중위는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영화배우 '나탈리 포트먼'을 닮은 연인인 '레베카 테이버'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맥킨지 컨설팅에서 일하는 재원입니다. 레베카는 그 소식을 듣고 혼절할 정도로 놀랐지만 큰 절망에 빠져있을 애인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레베카는 매일 소소한 일상을 이메일로 적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바지를 입고 다니니까 괜찮아'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댄이 워싱턴 DC에 있는 '월터 리드' 육군 병원으로 후송되자 레베카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 때 댄이 '날 떠난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을게'라고 말하자, 레비카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다리를 보고 당신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다리를 잃었으면 어때 나를 얻었잖아!'
   그렇습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조건과 상황에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한 번 마음 준 대상을 끝까지 변치 않고 사랑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아멘!/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교회에 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 속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때론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고 떠날만한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변치 않고 사랑해야 합니다.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성도 여러분의 교회 사랑이 마음 가득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⑵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몸소 사랑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시84:10절에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성전을 사랑하되 성전 문지기로 섬기며 헌신할 지라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단지 마음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의 성전을 위해서라면 성전 문지기로 봉사하는 것까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때, 마음은 물론이고 몸으로 삶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문지기는 집안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자입니다(마24:45-46). 또한 문지기는 모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집주인과 권속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라고 한 것을 보아 이는 주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를 섬기며 봉사하는 직분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직분에 종사하든지 다 주님을 섬기는 청지기입니다. 엡4: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할/
  '성전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좋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성전을 자기의 거처, 집, 보금자리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성전이 거쳐가 되고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말은 성전이 그만큼 편하고 좋았다는 말입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제하고 위로 받고 섬기며 지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사랑입니다. /할/

 

  ⑤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교회에 가는 것을 기뻐합니다(1-2).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할/
  사람마다 기뻐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습니다.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하여 통장에 돈이 쌓여 가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기쁨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하는 발걸음이 기뻐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어떤 사람의 발걸음은 천근 만근 무겁게 옵니다. 그래도 온 것이 다행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 발걸음이 가벼운 발걸음, 기쁜 발걸음이 될 줄 믿습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할/

 

  ⑥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입니다(3).
  예루살렘에 들어온 거룩한 이 순례자는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여러분, 우리는 웅장한 건물 앞에 서면 탄성을 발합니다. 63빌딩이 처음 세워졌을 때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는 사람마다 감탄을 했습니다. 이제 잠실에 롯데에서 엄청난 빌딩을 지금 짓고 있습니다. 그 건물이 완성되면 감탄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북경의 자금성(紫金城)에 가면 그 규모 때문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잘 지어진 건축물 앞에 서면 감동을 받습니다. 건축은 예술 가운데서도 차원이 아주 높은 예술입니다.
  우리는 유서 깊은 고적 앞에 서면 감탄합니다. 서양인들을 '원더풀!' 소리를 연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발이 성전에 들어오면 그것보다 더 놀라운 마음으로 찬양해야합니다. 더 깊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시120-134편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우리도 '성전에 올 때 노래'를 부르며 와야합니다. /할/ 무엇보다도 크던지 작든지 우리에게 성전이 있다는 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를 주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아멘!/
 
  ⑦주님의 몸 된 성전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무슨 말씀인가? 이스라엘의 12지파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하려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와 허물이 많고 부족해서 하나님을 만날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날 장소가 주어진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합니다. /아멘!/
  오래간만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참 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남북이산가족 만나는 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근본적으로 변화 받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⑧왜 성전 예배가 중요합니까? 주님의 판단의 보좌가 있기 대문입니다(5).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먼저 예루살렘이 왕권의 중심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해야 하고 그 통치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멘!/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할/
  '거기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또 성전이 모든 것을 판결하는 곳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개인적인 일이나 국가적인 중대사도 성전에 와서 제사장에게 물어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했습니다.
  성도들은 중요한 문제의 판결을 성전에서 구해야 합니다.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가운데, 혹은 묵상하는 가운데, 혹은 주의 종의 권면과 신앙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서 구해야 합니다.
  국가의 최고 판결기관은 대법원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성전이 또 하나의 대법원이 되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 법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오!' 판결하면 그 시간부터 그 법은 효력을 잃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성전이 또 하나의 신앙 헌법재판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의 헌법인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라고 판결하면 자기에게 아무리 유익이 되는 일이라도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길이 열립니다. /아멘!/
 
  ⑨하나님 성전에 거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시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왜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 주의 집에 주님의 판단의 보좌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올라가게 되는 것을 한없는 영광과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찬양하는 곳입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존엄성을 듣는 곳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알아 영원한 생명 앞에 경건하게 임하는 자세를 배우는 곳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배우고 그 지혜를 얻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작은 새까지도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지만 하나님이 보살피고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곳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란, 죽음에 대비한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어리석은 부자가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죽음에 대비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영혼의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장막, 주의 집, 주님의 교회를 사모하며 내 아버지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른 교회 생활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믿/
  ▶어떤 사람이 교회를 '공동묘지 같은 교회, 박물관 같은 교회, 극장 같은 교회, 잔칫집 같은 교회' 네 종류의 교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⑴공동묘지 같은 교회는 믿음의 활동이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없고 의무감으로 오가는 교회를 말합니다.
  ⑵박물관 같은 교회는 골동품을 보며 기뻐하는 것처럼 '그때 우리 교회가 이런 모습이었다'라고 그리워하며 옛 추억을 먹고삽니다.
  ⑶극장 같은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몰려오지만 한 곳만 바라봅니다. 그곳에 있는 배우나 노래 잘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손뼉 치고 끝납니다.
  그런가 하면 ⑷잔칫집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잔치 집은 축제입니다. 참된 교회는 잔칫집 같아야 합니다.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말씀의 은혜가 있고 찬양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 흘리는 교회가 잔칫집 같은 교회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⑩하나님의 성전에서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게 됩니다.
  시84: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아멘!/ 
  '주께 힘을 얻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을 받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힘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을 섬기는 팔백 오십인과 싸워서 이겼습니다(왕상18장). 그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힘이 왔습니다. 모든 백성이 이를 보고서 하는 말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왕상18:39).
  히스기야도 하나님의 힘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앗수르의 산헤립을 물리쳤습니다(사38장). 우리도 하나님의 힘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우리가 무슨 힘으로 세상을 살아갑니까? 영력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체력, 육체의 힘도 필요합니다. 또한 지력도 필요합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력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힘이 없을 때는 여자 하인에게도 깜짝 놀라 주를 부인했지만 그가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담대한 자가 되었습니다. 환난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힘이 오면 담대할 뿐만 아니라 능력을 행하게 됩니다. /아멘!/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힘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⑴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시18:1절에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할/
  ⑵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사40:30-31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기 '앙망한다'는 말은 '바라보고 의지한다는 말이요 맡긴다는 말'입니다. /아멘!/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예루살렘 남동쪽에는 작은 산이 있는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이 산이 바로 시온 산입니다. 이 산은 '여호와의 산, 거룩한 산'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산이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만나 주기로 약속하신 산입니다.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 천국을 의미하는 산'입니다(히12:22).
  시온의 대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온의 대로는 성소로 향하는 길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주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히10:19-2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제물 되신 예수의 피가 우리를 흠 없고 점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 피를 믿는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갈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은 마음이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 그 마음에 천국을 찾고자 하는 사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믿음의 기도가 시온의 대로입니다. 히4: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할/
  시134:3절에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하나님의 성전인 예루살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에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영적인 축복과 물질적인 축복, 건강의 축복도 이루어집니다. /믿/
 
  ⑪이제 우리는 교회의 화목과 가정과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6-9).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의 평강을 위하여,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이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가정이 있고, 이 목적을 위하여 사업이 잘 되어야 함을 다윗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에 나아온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집, 예루살렘'이란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는 성도들의 영원한 신앙의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생각할 때 즐거워야 하며, 교회로 나아오는 걸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는 집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성도의 마음은 감사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 사명주심에 감사가 넘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⑫이제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⑴안식을 주십니다. 시127:2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할/ 여기서 잠을 주신다는 것은 평안함과 안식을 주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평안이기 때문입니다(요14:27). /할/
  ⑵천국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약2:5절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할/
  ⑶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시145:20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또 사43: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할/ 이런 축복을 우리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이스라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 보호의 깃발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기에는 정삼각형 두개가 엇갈려 진 여섯 개의 꼭지점이 있는 별 같은 문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문양을 흔히 '다윗의 별'이라 부르고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마겐 다윗'(Magen David) 즉 '다윗의 방패'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상징 문양을 이 '마겐 다윗'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윗의 방패가 되셔서 그를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할/
  ⑷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잠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열심히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⑸재물의 복도 주십니다. 잠8:21절에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할/ 하나님을 사랑한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도 떼 부자가 되었습니다. /할/
  오늘 우리에게도 이 복이 해당이 됩니다. 잠8:21절의 '나'란 지혜를 가리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부요하게 하십니다. 지혜의 눈만 뜨면 온 세상에 굴러다니는 것은 다 돈이라고 합니다. 이 재물의 복을 누구에게 주시느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할/
  ⑹자손 천대까지 복을 어어 받게 됩니다. 신5:10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할/
  여러분, 교회 사랑이 형통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 모두 더더욱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3년 9월 1일 대예배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