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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히 주사 꾸짖지 않으신 하나님께 구하라! (약 1:5-8)

후히 주사 꾸짖지 않으신 하나님께 구하라! (약 1:5-8)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람은 야고보 장로님이십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으로 뒤늦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 야고보가 별명이 하나 있었습니다. '낙타 무릎'입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던지 무릎에 굳은살이 배겨서 낙타무릎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그런 별명입니다. /할/
  이렇게 기도했던 야고보 장로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기도의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사실 기도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그만큼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찰스 하지'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기도의 중요성을 맥박(호홉)에 비유하여 강조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신자는 죽은 신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맥박이 뛰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죽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맥박이 뛰지 않는 사람을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이듯이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또는 그 사람의 건강을 체크 할 때 먼저 맥박을 잽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이 영적으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는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알아보려면 그의 기도의 맥박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했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웠는데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가르쳐주는 가장 강력한 교훈은 '기도의 힘'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전쟁터로 가지 않고 산 위로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그 시간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으로 두 손을 계속해서 들고 기도하여 결국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두 손이 높이 들여 기도할 때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메시지입니다. 기도의 손을 들면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기도의 손을 내리는 순간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자녀, 여러분의 사업은 아말렉에게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도의 손을 드는 순간 여러분의 자녀들이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손을 드는 순간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업은 아말렉을 물리치며 승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멘!/
  '타스커'라는 사람은 '기도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라도 기도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그 문제를 대처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했습니다.
  길에서 놀던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납니다. 이 아이가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울면서 약을 찾습니까? 의사를 찾습니까? 병원을 찾습니까? 아닙니다.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 엄마!' 왜 엄마를 찾을 까요? 엄마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약을 발라 주든지 병원으로 데려가든지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고난이나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 울면서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할/ 약5: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아멘!/
  ▶미국에 아주 유명했던 가수 중에 '케이트 스미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케이트 스미스는 'God Bless America'(하나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녀가 믿음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두 친구와 같이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배가 썰물에 밀려 나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날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어 보았지만 썰물이 너무 세차게 밀려 나가기 때문에 이 강한 조수를 거슬려 해변으로 도저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해변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들은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 쳤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케이트 스미스'는 두려워 떠는 가운데 '두 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성경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스미스는 친구들에게 '얘들아, 무서워할 것 없어. 성경에 두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고 하셨어. 우리 여기 세 사람이 있지 않니? 우리 셋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우리 함께 기도하자' 그래서 세 친구는 머리를 배 밑창에 조아리고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죽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우리를 살려 주세요. 우리를 도와주세요' 이 세 친구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보니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배로 인해서 조난 당했던 이 세 친구가 안전하게 해변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케이트 스미스'는 기도의 응답으로 고난 중에서 건짐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할/
  ▶기도는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만세운동을 하다가 잡혀 일제의 고문에 방광 파열로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에도 신앙을 지켰고 나라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그 어린 나이에 모진 고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유관순은 순국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들은 이 몸, 나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주를 따라 가리라! 주가 인도하는 대로 어느 지경이든지 주의 뒤를 따라 가리라!' /할/ 유관순은 기도로 고난을 이긴 어린 열시이었습니다. /할/
  ▶히스기야 왕은 남 왕국의 13대 왕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남북왕조 합쳐서 왕이 모두 42명입니다. 그 왕들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선정을 베푼 왕은 몇 명뿐입니다. 그중 히스기야가 포함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쓰고 애쓴 그런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29년 간을 통치했습니다. 29년 이상 통치한 왕이 42명중 12명뿐입니다. 나머지 왕들은 모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 모두 단명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기를 '하나님께서 당신은 이제 죽는다고 하셨소. 그러니 이제 유언이나 준비하시오' 그 순간 히스기야는 무슨 심정이었을까요?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더니 '당신 병은 암이요 3개월 밖에 살 수 없소'라는 통고를 받은 환자는 무슨 심정일까요? 히스기야가 그 심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힘쓰는 사람에게 왜 이런 시험이 오는가?'라는 의심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히스기야 왕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주신 말씀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이제 죽으리라 유언이나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죽을 것이면 그냥 죽게 하시면 되는데 굳이 이사야를 보내서 '죽으리라 유언이나 준비하라'고 하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부분이 시험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시험해 보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도 그런 시험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런 시험을 주셨습니다. 시험을 주시고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
  히스기야가 죽음의 통보를 받고 그가 행한 행동이 아주 멋집니다. 왕하20:2-3절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그렇습니다. 그 죽음을 이긴 비결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을 주십니다. 왕하20:5-6절에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할/  
  그렇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음의 통고를 받자마자 벽을 향하여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아주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아주 솔직한 행동입니다. 여기 히스기야 왕은 죽음 앞에서 체면도 자존심도 없습니다. 죽음을 통고 받자마자 벽을 향하여 얼굴을 대고 어린 아이처럼 통곡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이 대목이 히스기야 왕의 신앙생활에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풀 때 가장 좋은 자세는 솔직함입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고백하고 사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쉽게 풀리게 됩니다. 자꾸만 변명하거나 자존심을 내세우고 체면이나 내 세우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청문회 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터졌을 때 곧바로 시인하고 사과하면 쉽게 풀립니다. 그런데 보면 자꾸 변명하고 이유를 대면 오히려 문제가 악화됩니다. 진실은 사람들에게도 통하지만 이 방법은 하나님께도 통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도 솔직하게 아이와 같이 고백하고 시인하면 곧 바로 풀립니다. 다윗 왕에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당신이 그 사람이요'라고 말할 때 다윗 왕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윗의 그런 모습이 장점이었습니다. /할/ 시145:18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아멘!/

 

  ①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서 네 가지를 깨닫는 자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⑴자신의 부족을 아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누가 하나님께 구하여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은 은혜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하나님의 풍성한 응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그가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존귀하게 해주십니다.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낮추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매달림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도가 처음 나오는 곳이 창4:26절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이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불렀다는 말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셋이 왜 에노스를 낳고 기도했을까요? 에노스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병약한 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셋이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약한 것입니다. 아들이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아들이 약한데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셋이 그때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삼손이 힘이 장사일 때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힘으로 오히려 쾌락에 빠졌습니다. 삼손에 관한 내용이 사사기 13-16장에 나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삼손이 딱 두 번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두 번 다 자기의 무능함을 절감할 때였습니다.
  한 번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나니 목이 마르기 시작하는데 물이 없습니다. 아무리 장사여도 물이 없으면 죽게 됩니다. 삼손이 목말라 죽게 생기니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기도를 들으시고 엔학고레라(부르짖는 자의 샘)는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또 한 번은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되었을 때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삿16:28절에 보니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삼손이 자기의 부족함을 느낄 때 기도했습니다. /할/


  ⑵하나님의 풍성함을 아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의 속성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차별 없이 빼 놓지 않고 공평하게 주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시되 후히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후히'는 '풍성하게, 인색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풍성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그 안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가령 재물이 풍성한 사람에게 신령한 은혜가 부족한 자가 있고, 지식이 많으나 재물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부족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부한 나라라고 하지만 그 나라도 직업 없는 실업자가 굉장하답니다. 오직 풍성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여기 '주시되 후히 주신다'는 말씀은 '하나를 달라고 하면 열을 주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더 주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물으시기를 '솔로몬아,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그 때 솔로몬이 하나님께 대답하기를 '주여!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제가 출입할 줄을 모릅니다. 저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르게 잘 인도해야 할텐데 제게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만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장수, 부귀, 영화, 권세, 명예를 다 더불어 주셨습니다. 하나를 구하면 열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구하면 구하는 데로 풍성히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권능을 구하면 권능을 주십니다. 건강을 구하면 건강을 주십니다. 재물을 구하면 재물을 주십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소유 중에서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줄 때 크게 생색을 내면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받는 사람이 무한을 느낄 정도로 무시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관용을 가지시고 꾸짖지 않고 무안 주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마7:11절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어제 구한 기도를 오늘 또 구하고, 내일 또 졸라대도 하나님은 번거롭게 생각지 아니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우리가 만일 남의 아버지에게 가서 무엇을 구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아저씨 우리 전세 값 좀 대 주세요! 아저씨 제 학비 좀 대 주세요!  아저씨 제 결혼 비용 좀 대 주세요!' 그러면 뭐라고 할까요? '저 놈이 정신 나간 놈이 아닌가! 네가 왜 주냐?' 그런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에게 무엇을 구할 때 필요에 따라 다 들어주고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실 수 있는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기만 하면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거지도 하루아침에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재벌도 될 수가 있습니다. /믿/
  민11장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까 하늘의 창고를 여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셨는데 사방 하룻길에 2규빗이 쌓이게 하셨습니다. 냄새나도록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넘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후9: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엡3:20절에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주실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건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관리와 섭생도 건강을 좌우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없으면 건강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건강도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합니다.
  ▶물질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은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주실 수도 있고, 가져가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일찍이 깨달은 다윗 왕은 대상29:11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했고, 12절에서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라고 했고,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할/
  ▶믿음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꿈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고, 병을 고치고, 성공을 도출해냅니다. 믿음은 절망을 이기고, 희망을 줍니다. 믿음은 패배감을 벗어버리고, 비전과 소망을 갖게 해줍니다.
  믿음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영생을 누리게 해줍니다. 믿어야 죄 사함 받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믿음이고,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모든 분야 모든 삶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 믿음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아맨!/할/


  ⑶응답의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신앙은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 응답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시91:14-15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여기서 세 가지 기도의 약속이 있습니다.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그를 건지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가 건져 줘야 삽니다. 마찬가지로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시련과 어둠,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많은 논리들이 있습니다 만은 저는 만화와 영화로 소개되었던 '외인구단'의 주제가 첫 부분에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마 이 말은 청춘남녀 간에 흔히 있는 사랑고백쯤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어쩌면 이 고백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진실한 사랑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전 주님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이 진정 우리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이 어디에 처하든지 건지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고백으로 끝나서는 아니 됩니다. 고백과 행동이 일치할 때 올바른 사랑입니다.
  '건진다'는 것은 영화롭게 하고 높일 뿐 아니라 이제는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어디서 건지십니까? 죄에서, 사망에서, 질병에서, 실패에서, 가난에서, 악의 무리에서 건져주십니다. 사38:17절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 /아멘!/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여기 '안다'는 것은 단순하게 면식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어우러져서 대화를 나누고 교제하고 식사를 나누는 등 예수님의 표현대로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을 때' 비로소 안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여기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사랑)함으로 아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야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접촉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지위, 명예, 재력, 능력, 인격, 신앙 등 모든 분야에서 높아지기를 갈망합니다. 또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도 모색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삼상2:7절에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격상을 위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저가 나를 안즉'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실천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일은 성경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전하는 과정을 통해 광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그것은 곧 '내가 저를 높이리라'는 말씀을 성취하도록 만듭니다. /할/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여기 '간구'란 최선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한번도 간구해 본 일이 없다면 우리는 이 시간 문제를 놓고 간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응답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간구한다'는 말은 '일시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계속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기도의 생활화를 의미합니다. /할/


  ⑷의심하거나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6-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기도할 때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생명은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을 믿고 철저히 신뢰하는데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실 때 믿음으로 그도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바라보는 순간 무서워하며 빠져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건져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흔들리는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기도해도 불안합니다. '이것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자는 아예 기도응답이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할/
  ▶1871년 미국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습니다. 그 때 우리가 잘 아는 시카고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Moody가 섬기는 교회도 화재로 다 타버렸습니다. 무디의 집도 타버렸습니다. 재산이 불과 함께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기자가 짓궂게도 무디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몽땅 다 타버렸네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때 무디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은 타지 아니하셨습니다. 내게 희망도 남아있고요' 과연 그의 믿음대로 바로 그 자리에는 얼마가지 않아서 더 크고 더 아름다운 새로운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마음에 작정을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종된 우리들은 기쁨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 맡기고 따라야 합니다. /아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이 거대한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그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이 호통을 칩니다.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만든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던질 것이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말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왕이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우리를 집어던지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그 가운데서 구원하여 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이 만든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할/
  그들은 두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그들의  일편단심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님께 자기들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소피아'로 '인간의 사고나 지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노시스'로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인간의 지식'을 말합니다. 즉,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 스스로의 삶의 지혜입니다.
  잠2:5-6절에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여기서 '명철'은 '이해하다, 분별하다'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 즉 명철이란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하며,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주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명철은 '현자의 세상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확실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파스칼은 '지혜는 지식을 능가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속담에도 '많은 금과 보석보다 지혜가 월등히 더 귀한 것'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많이 가졌어도 지혜가 없으면 망하지만, 가진 것이 없어도 지혜로우면 훌륭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나이 30세까지 죄수로 있다가 대제국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귀족 출신이라서, 배경이 좋아서, 지식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뛰어난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남의 땅에서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되고 도지사들이 된 것은 배경이나 지식이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뛰어난 지혜가 있어서입니다. /할/  
  지혜로운 사람은 부부 생활도, 사업 경영도, 직장 생활도, 인간 관계도 잘 꾸려 나갑니다. 어차피 만나 더불어 살 사람들이기에 원수를 맺지 않고 골을 파지 않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인간 관계도 잘 컨트롤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렇게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야고보가 우리에게 가지라고 추천하는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사색하여 얻는 그런 값싼 지혜가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의논하여 만든 그 정도 수준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는 언제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주도 아래 나라의 그 두뇌들이, 장관, 국무위원들이 모여서 지혜를 짜내어 그 다음날 선포하고 공포해도 백성들의, 국민들의 여론에 부딪쳐 일주일도 못 가서 그것을 접는 일이 허다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노력해서 지혜를 모은 것이라도 여론에 부딪쳐서 비판을 받게 되고, 교수들이 그렇게 지혜를 짜내어 하나의 정책을 내놓아도 학생들이 그것을 반대해서 접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의 지혜는 아무리 짜내어 보아도 부족합니다. 왜입니까? 보는 눈이 부족하고 내다보는 경륜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할/
  ▶서울대학교를 같이 나와서 남편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부인은 예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집사님 부부가 있습니다. 두 분이 다 유명 대학의 교수인데 큰아들이 서울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안되어 서울대학 바로 밑에 있는 이 나라 두 번째 명문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합격증을 받아 온 날, 그 부모가 이구동성으로 '서울대학도 못 들어가는 게 사람이냐?'고 비꼬았습니다. 그 날 밤에 그 아들이 고민하다가 자살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라서 고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그 똑똑한 교수 부부가 또 말했습니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공부해라' 그때 둘째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걱정 마세요. 시험 쳐보고 안되면 형님 따라 갈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제야 정신이 든 부모가 '잘못했다. 서울대학 못 가도 좋고, 모든 대학에, 3류 대학에 못 가도 좋다. 제발 살아다오. 자살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작은아들이 말했습니다. '진작 그랬으면 내 형님이 안 죽었지요' 서울대학을 나오고 하버드, 예일대학에서 학위를 받아도 그 두 사람의 지혜는 아들을 죽이는 지혜였습니다.
  사람은 아는 것 같아도 모릅니다.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잠3:5-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높은 지혜를 얻어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③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⑴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시111: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할/
  ⑵지혜로운 사람은 죄와 악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죄와 악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반드시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다윗 왕은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으나, 세상사는 동안 그 죄로 인해 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악을 떠남이 명철이며(욥28:28), 지혜로운 자는 악을 두려워합니다(잠14:16).
  ⑶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든 일이 때가 있고, 기한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친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바울은 엡5장에서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⑷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냐'를 바로 알고 자기 나이를 아는 것은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시90:12절에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자기가 생애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⑸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도 미래를 내다보고 구입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인가는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고 내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죽음 이후의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세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할/
  ⑹한계와 분수를 알고 겸손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게 주어진 능력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남이 한다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소유, 내게 주어진 지식, 내게 주어진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롬12: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할/
  ⑺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마7:2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기생 라합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믿/
 
  ④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까요?
  약3:17-18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⑴성결한 삶을 삽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사람은 세상 사람과 구별됩니다. 가치관, 생각, 말, 행동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거룩하다, 성결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지식과 지혜가 구별된 것처럼 세속적인 사람과 성결한 사람은 구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악을 제거하십니다.
  여기 '성결'이란 말은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기적으로 지식을 남용하거나 거짓된 지혜로 인간을 기만하지 않는 착한 행실을 뜻합니다.
  세속적이고 거짓된 지혜는 '독한 시기' 즉 그릇된 열심과 '다툼'과 자기를 드러내는 '자랑'과 진리를 거슬려 '거짓'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약3:14).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악에서 떠나 회개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생명과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합니다(고전1:21).
  우리가 성결함을 유지하려면 지혜의 하나님과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새벽이나 아침의 기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아멘!/
  ⑵화평을 이루며 삽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올바른 관계로 이끌어 줍니다. 세상의 지식은 분쟁을 조장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사람들을 서로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의 아들로 부르셨습니다(마5:9).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여기에서 '화평'이란 말은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과는 물론이고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삽니다. /할/
  ⑶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관용을 널리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우리를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기 '관용'이라는 말은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서 '용서'와 '온유'와 '자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또한 '정당한', '공정한'이란 의미도 있는데, 이것은 '타인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남을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해줄 때 그들의 실수나 과오를 너그럽게 용서하게 됩니다. /아멘!/
  예수님처럼 지혜롭고 관용하는 사람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거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며, 토론이나 협상에 있어서 무조건 내 주장만 하지도 않습니다.
  ⑷양순한 마음으로 삽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여기 '양순'은 '좋게'란 말과 '순종하다'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잘 순종하는' 혹은 '유순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은 '굴종'과는 달리 정의롭고 올바른 일에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겸손히 낮춥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심으로 성부 하나님을 섬기시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낮추며 기꺼이 봉사하는 '서비스 정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아멘!/
  ⑸긍휼과 선한 열매를 맺고 삽니다. 여기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주는 마음입니다(약2:13). 선한 열매는 행함의 열매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3:13)고 했습니다. /할/
  ⑹편벽과 거짓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좌로 치우쳐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해서도 안되고, 우로 치우쳐서 너무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러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당을 짓고 편을 가르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인류는 하나'라는 구호가 있는 것처럼 서로 이해하고, 정직하게 경쟁하며,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혜는 어떻게 받습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면 지혜는 보너스로 따라옵니다. 잠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 적인 지혜가 많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그 언약을 붙잡고 기도해서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풍성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3년 9월 8일 대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