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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이사야 40:27-31)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

(이사야 40:27-31)

설교 : 문성욱 목사

지난해 12월 31일에 퇴임한, 그리고 퇴임하기 3일 전, 국내여론조사에서 지지율 87%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이런 영광스런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그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불우했습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고,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돈을 벌기 위해 구두닦이와 행상(땅콩, 오렌지)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15살 때, 금속공장의 근로자가 되었지만, 19살이 되던 해에는 이 공장에서 왼쪽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불우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 된 이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으로 자신의 과거를 승화시켰고, 임기 8년 동안 실시한 많은 정책들은 국민들의 지지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브라질을 세계 경제대국 8위로 끌어 올린 ‘룰라’라는 대통령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가진 자에게만 행운과 기회를 주는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원망과 불평으로 채워갑니다. 하지만 불우하다고 해서 아무리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룰라 대통령처럼 불공평한 현실을 인정하고, 큰 꿈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옳은 삶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면,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삽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까지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현재의 극심한 고난과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7절 중반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힘든 형편(길/고생의 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 원통(송사/자신들의 권리와 계획)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침묵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모습은 과거 조상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동안 이들은 틈만 나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먹을 물이 없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덥다고, 춥다고). 이런 모습은 마치 사춘기 자녀들이 매사 부모를 걸고넘어지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가령 자신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모의 머리를 닮았기 때문이며, 노래나 운동을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외모가 별로인 것도 원판 불변의 법칙에 의해 부모를 탓합니다. 어느 정도 동정은 갑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모습도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평보다 받은 은혜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복입니다. 원망으로 가득 찬 인생은 하나님이 결코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불평하는 인생에는 평안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더럽고 추한 원망과 불평의 찌꺼기들을 몰아낼 수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이 원망과 불평을 몰아내시는 것입니까?

첫 번째는 부드러운 사랑의 음성으로 몰아내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원망과 불평을 없애주기 위해서 사랑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이들을 부르십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호칭은 선조들을 부를 때에도 사용했던 호칭이며, 이 호칭에는 ‘아직도 여전히 너희와 나 사이에는 너희 조상들과 맺은 언약(약속),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인도하며, 함께 하리라.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가 살아(유효)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28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어떤 존재이신가? 를 말씀하심으로 몰아내십니다. 다시 말해 “얘들아! 난 너희들이 불평하는 것처럼 그렇게 너희들을 돌보지 않고, 외면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말로 몰아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할 때, 마치 100미터 선수를 지도하는 감독처럼 인생 페이스를 계획하지 않습니다. 한번 보고 다시 안 볼 사람처럼 대충대충 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세상 끝날 때까지 결코 피곤하지 않으며, 곤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그 어떠한 사람보다 지혜롭고, 그 지혜가 무한한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설령 그 사람이 피가 끓는 혈기 왕성한 소년이라 할지라도, 몸과 마음이 지쳐 고달프거나, 움직일 기력이 없을 만큼 몹시 지친 고단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청년이라 할지도,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거나 기운이 없어 쓸어 지는 인생이 된다고, 3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새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만끽할 수 있다. 라고 3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앙망(흔들림 없는 신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와’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기다린다.’ ‘바라본다.’ ‘신뢰한다.’ 라는 세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세 가지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앙망하라.’ 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감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 라는 하나님의 요청과 그 요청에 대한 우리의 신앙 결단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은 자의 모습은 첫 번째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과 같다. 라고 말씀합니다. 갈멜산에 있던 엘리야가 병거를 타고 앞서 달려가는 아합 왕보다 먼저 이스르엘 평원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새 힘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왕상 18:46).

두 번째는 아무리 달려도 기력이 바닥나지 않는 모습과 같다. 라고 말씀합니다. 120년을 살았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 새 힘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 번째는 아무리 많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모습과 같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21,600km)이 2만km 이상이나 되는 거리를, 요한 웨슬리(25만 마일)도 4만km 이상이나 되는 거리를 다니면서 전도하였지만, 이들이 결코 피곤함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도 이 새 힘을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 이 새 힘을 받는다면, 결코 피곤함이 없는 엣지(edge-의미 있는, 뚜렷한)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고통과 고난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새 힘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가령 혼비백산할 만큼 매를 맞고 철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도, 한 순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과 모든 자녀들을 다 잃고, 아내로부터 버림 받았을 때, 우스 땅 욥이 ‘하나님(여호와)의 이름만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라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북이스라엘 도단성이 사방에 적으로부터 우겨쌈을 당했을 때 이 성에 사는 엘리사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온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다 이들에게 이 새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신뢰감을 가졌을 때, 이 새 힘이 임했고, 이 새 힘으로 초대교회는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부흥성장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 새 힘이 성령님의 임재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의 임재가 있는 곳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가령, 죽은 자가 살아났고, 질병으로 고통 받던 자가 나음을 입었고, 귀신들이 떠나갔고, 깨진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지금도 성령의 임재가 있는 곳에 생각지 못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원망보다 받은 은혜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믿음의 선조들과 세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여러분이 피곤할 때, 능력을, 무능해질 때, 힘을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여러분! 일평생 하나님 앞에 흔들림 없는 신뢰감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새 힘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 힘으로 삶과 생각이 변화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이 세상을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