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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출애굽기 4:10-17)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출애굽기 4:10-17)

설교 : 문성욱 목사

사람들은 잘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잘한다고 다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쓰고자하는 분의 마음에 맞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 구별되어 축구 국가대표로 뽑힌다고 다 시합에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 그 때마다 감독의 의중에 맞아야 하고 마음에 맞아야 합니다.

세계인의 명마, 가장 가치 있고 이름 있는 말은 아라비아말로서 20억-30억이 간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멧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말 100마리를 사서 푸른 초장 언덕에 울타리를 치고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좋은 꼴은 주되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가 되자 말들이 목이 갈하여 울타리를 부서뜨릴 것만 같습니다. 이때 우리의 문을 열자 말들이 물 냄새가 나는 시냇가로 쏜살 같이 달려갑니다. 물이 코앞에 왔을 때 주인의 ‘멈추라’는 호각을 불었습니다. 대부분의 말들은 그냥 눈앞에 있는 물을 마셨지만 그 중에 3마리만 멈추어 섰습니다. 주인은 이 세 마리의 말을 골라서 훈련시켰는데 이 말이 바로 아라비아 명마입니다. 좋은 말은 잘 달리는 말이 아니라 순종을 잘하는 말입니다.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순종 잘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는 실력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는 기본기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모세는 처음 40년에 애굽에서 왕자로서 대단한 힘이 있었습니다. 40세가 되던 해에 히브리민족 해방 계획을 세우고 백성들 앞에 나갔지만, 애굽사람과 동족들에게 살인자라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실패입니다. 그의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에 실패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40년은 광야 사막에서 목자로서의 40년입니다. 애굽에서 가장 비천하고 손가락질받고 천대받는 목자였고 그의 삶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자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대단할 때에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이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경에 있는 그대로 보면 그는 좀 부족한 사람 같습니다. 10절을 보면, 말을 잘해야 될 지도자가, 선지자가 말더듬이요, 말 장애인입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보내라며 안 간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는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모세는 지도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부적합한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려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세가 대단한 자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된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너를 내 일꾼으로 쓰겠다.”

모세의 인생의 절정기는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쓰실 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순종하게 될 때 그 40년 동안,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키는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온유함입니다.(민12:3)

온유라는 말은 잘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힘 있는 야생마가 아니라 잘 길들여진 말을 타는 것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말씀으로 잘 길들여진 온유한 사람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구원받은 후에는 쓰임 받기에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온유한 자로 변화시키십니까? 하나님이 가장 많이 쓰시는 방법은 실패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실패하게 하셔서 온유하게 만드셨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실패의 연속입니까? 하는 것마다 안 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리할 때 쓴물이 단물이 되는, 빈그릇이 차고 넘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가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실패가 강팍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음이 굳어지고 오히려 독해지고, 반항적이 되고 완전히 망가집니다. 이것은 큰 재앙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재앙입니다. 인간이 질그릇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 안에 보배를 모시지 않을 때에 이것은 재앙입니다. 실패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내가 원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이때에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종하고 다듬어져서 온유한 자로 쓰임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이 축복입니까? 온유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가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는 나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원칙입니다. 기본입니다. 원칙의 반대는 변칙입니다. 변칙은 잠시는 잘 할 수 있어도 계속 잘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흔들리고 무너지고 맙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대가 어둡고 혼탁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대로 살아야 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영적으로 어두운 이유는 법대로,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요, 나의 삶을 복되게 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는 나의 감정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만 주시지 않고, 왜 성령까지 받으라 하십니까? 알면서도 행치 못하고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행할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송명희라는 시인은 전신을 쓰지 못하는 장애자입니다. 말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성령에 대해서 시를 썼습니다. 제목은 ‘성령은 아름다운 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아름답게 /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 우리를 대신하여 아름다운 기도하시며 /

은혜의 선물 채우시니 / 성령은 아름다운 분“

자기의 처지와 몸과 상황을 보면 원망불평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에게 깨우치심을 주십니다. ‘고난도 네게 유익이라’ 영이 맑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입니다.

깨달으면 감사요, 못 깨달으면 원망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동안 감사치 않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깨달음의 은혜 때문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상황으로 바꾸어지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지만, 변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주님의 섭리가 깨달아진다면 더 큰 은혜입니다. 즉시로 응답을 주심도 귀한 은혜이지만, 침묵과 더딘 응답 속에서도 깨닫는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더 없는 축복입니다. 가시를 뽑아 주심도 은혜이지만 박힌 가시 속에서 말씀하심으로 깨닫게 하신다면 그 가시는 오히려 갑절의 은혜가 됩니다.

깨달음의 깊이가 감사의 깊이이며, 감사의 깊이가 영성의 깊이입니다. 깨달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지만 못 깨달으면 그 어디나 지옥입니다. 깨달음은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이라고 굳이 말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를 써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성공과 실패 그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능력의 원천은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고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세는 지극히 평범하고 성격에도 결함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낙심합니까? 무엇 때문에 교만합니까?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의지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다듬어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감으로 주님 안에 존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