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15:1-13

로마서 15:1-13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의 우월성을 강조함에 이어, 이제 ‘사랑에 따라 행하라'(14:15)는 권면의 실례로, 로마 교회 안에 믿음이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의 관계로 화두를 꺼내며, 상호 용납할 것에 대해 권면합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담당하고(1-6절)
바울은 서로 판단하는 태도에 대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라는 바울의 언급과 그들에 대한 권면을 보면서 로마교회에는 서로에 대한 판단으로 인해 교회 안에는 분열이 있었음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열의 중심을 향해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권면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주님의 모범을 따르라는 권면이었습니다.
(1-3)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본문에서 강한 자는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곧 옛신앙에 얽매이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그들을 향해 바울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담당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단순히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담당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담당하라로 번역된 ‘바스타조’는 갈라디아서 6장 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에서도 사용되었는데, 해당 본문에서 바스타조는 '짐을 서로 지라'에 해당됩니다. 바울이 강한 자들에게 약한 자들이 스스로 질 수 없는 짐을 함께 지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결국 강한 자, 자기 스스로에게는 내키는 일은 아닐 수 있지만, 약한 자들과 동일시되어,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써 동질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랑으로 약한 자의 짐을 함께 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충해서 설명합니다. 강하고 강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셨던 것과 같이,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때로는 자신의 권리와 같은, 고기를 먹거나 포도주를 마시거나 유대인들의 성일을 무시할 권리를 오히려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기를 추구하는 신앙의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세우기 위한 신앙의 태도로 살아갈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강한 자들이 담당해야하는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을 ‘이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웃이라는 표현이 다소 갑작스럽지만, 이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를 통해 믿음이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담당하는 것이 주님의 명령과 같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염두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랑의 계명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자신이 갖은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는 주님의 입술의 표현으로 빗대어 설명합니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69:9)” 주는 하나님을, 나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향하였던 사람들의 비방을 감래하셨다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강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불쾌하게 했던 사람이나 행동들조차도 사랑으로 기꺼이 섬길 것을 당부하고 있는 간곡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그들의 차이에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전에 기록된 바는’ 구약성경을 의미하고,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교훈과 위로를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록된 시대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뿐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도 기록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말씀이었음을 강한 자들에게 설명합니다. 갑작스럽게 구약이 가진 의미를 강한 자들에게 설명한 것은 강한 자는 대략적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해당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략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바울과 같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지만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약이 가진 의의를 설명하며, 그 메시지 끝에는 소망이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로마의 강한 자들은 사실상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되었음을 상기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강한 자가 되어, 이 소망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소망의 근거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합과 건강성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을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의 정점에 이르는 촉매제로 ‘인내’와 ‘위로’를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다투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의 소원을 시작하며, 하나님을 수식하는 단어로 다시 한번 인내와 위로를 언급합니다.
(5-6)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 뜻이 같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간구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합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바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이 간구하는 연합,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연합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마음과 한 입으로 말하는 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도하는 간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합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싸우기를 멈추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그의 간구의 목표였고, 그 목표를 향한 과정에 연합이 수반되어야 함을 함께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연합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교회에게 연합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언쟁과 불신, 그리고 서로에 대한 거부가 연합으로 대체되기를 간구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 연합에 대한 편지를 숱하게 썼을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분쟁들로 찌들어 있고, 많은 기독단체들은 서로를 비판하며 극렬하게 경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 분쟁이 있다면, 우리는 중심에 본질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의 본질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셨을까를 염두하며, 때로는 인내를 때로는 위로를 더해가며, 일치를 위해 희생하는 것, 그것이 교회와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한 하나님의 권면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건강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그 공동체를 연합에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며, 그 일치를 보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도 서로 받으라(7-13절)
이어서 바울은 강한 자에게 약한자를 받으라고 권면했던 것과 같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음에도 서로 거부하는 것에 대해 약한 자와 강한 자를 모두 꾸짖었던 것처럼, 이제는 “서로 받으라”고 촉구합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서로 받으라는 바울의 권면은 다른 사람들을 관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서 같은 형제와 자매로 그들을 환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환영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를 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환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서로를 향한 환영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서로 환영하라는 메시지에 이어, 이 로마서에서 핵심적인 신학적 가르침 하나를 요약했습니다.
(8-9a)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은 각종 역본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의 해석이 더 적절한 해석으로 지지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개역개정은 다른 역본들과는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바울이 로마서에서 보존하고 있는 섬세한 균형인 유대인의 우선권을 잘 그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이 이방인에게'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본문을 해석한다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 유대인의 종이 되셨다고 나는 말하노니, 이는 먼저는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서요. 그 다음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언급에 대해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주장을 견고히 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약성경의 인용을 유대 성경의 세 항목(토라-느비임-케투빔)에서 각각 인용합니다. 먼저, 10절은 토라, 곧 율법서 중 신명기 32장 43절을 인용했고, 12절은 느비임, 곧 선지서 혹은 예언서 중 이사야 11장 10절을 인용했으며, 9b과 11절은 케투빔 곧 성문서 중 각각 시편 18편 49절과 시편 117편 1절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인용은 이방인들을 가리키는데, 그 중에 두 인용(10, 12절)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이방인이 있게 됨은 유대인에게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10절에 기록된 신명기 32장 43절의 인용은 유대인들의 중심에 이방인들도 함께 즐거워하라는 요청을 언급하고 12절에 기록된 이사야 11장 10절의 인용은 “이새의 뿌리”가 열방을 통치하고 이방인의 소망이 됨을 언급합니다.
또 다른 두 인용(9b, 11절)은 하나님에 대한 찬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9b절에 기록된 시편 18편 49절의 인용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찬송을 받게 된다는 것은 언급하며, 11절에 기록된 시편 117편 1절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이방인들이 합세할 것을 요청하고 있음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인용의 끝에 다시 한번 바울은 약한 자와 강한 자에 대한 그의 권면을 담은 기도의 소원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기도입니다. 넘치는 소망을 경험하기를 바라는데 그들 가운데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이는 14장 17절에 따르면, 강한 자들이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가치들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권면하며 강한 자들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져와 설명하는 바울의 의도는 로마의 강한 자와 약한 자, 곧 이방인과 유대인이 공통된 소망으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기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간의 상호 불신이 교회의 연합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바울은 각각의 그룹들에게 맞는 메시지를 통해 호소합니다.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그 메시지의 끝은 두 그룹의 일치였습니다.
이 시대는 계층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등, 교회 안에서 수많은 갈등으로 인해 교회가 일치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훗날에는 의미가 없어질 것일 수도 있고,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동체의 분열의 중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열에 우리의 에너지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을 통하여 소망, 곧 영원한 것에 더 많은 에너지와 인생을 헌신해야 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연합을 위해 기꺼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함으로 소망이 넘치는 가정과 직장, 교회와 사회로 빚어가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작게는 우리 교회의 일치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든 교우님들이 한마음과 한말로 말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그 안에 서로를 향한 충분한 인내와 진실한 위로가 있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교회를 넘어 한국교회의 연합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 연합의 끝에 참된 기쁨과 평강이 있음을 기억하며, 교회와 교회가, 교단과 교단이 서로 경쟁의 구도가 아니라,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묵상해봅시다.
2. 다른 사람들을 담당하는 신앙에 앞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일들을 묵상해봅시다.
3. 당신이 지금 담당해야 하는 약한 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통해 그의 믿음을 함께 세워갈 수 있는지를 묵상해봅시다.
4. 연합의 자리로 나아가며, 여호와 하나님을 당신의 힘으로 삼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새벽기도 > 로마서(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5:22-33  (0) 2022.09.02
로마서 15:14-21  (0) 2022.09.02
로마서 14:13-23  (0) 2022.09.02
로마서 14:1-12  (0) 2022.09.02
로마서 13:8-14  (0)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