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14:13-23

 로마서 14:13-23
찬송가 112장 ‘그 맑고 환한 밤중에’



사랑으로!(13-17절)
어제 말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 중에 겪게 되는 실제적인 문제인 음식 문제와 절기 문제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음식물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드렸던 고기를 먹지 못하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아야 하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성숙한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인의 잘잘못의 행실은 그 주인이 책임을 지는 것처럼,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든 연약한 사람이든 그들 모두가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또 모든 물건은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그 물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 밖에 있습니다.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의 손에 들려질 때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식도(食刀)’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손에 들려질 때, 가장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됩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지음받은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사람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지음받은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의식하며,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해야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생활에서 겪게 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3절은 ‘그런즉’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앞의 11-12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은 세상 마지막 날, 또는 개개인이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쉰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특히 ‘비판하다’의 문자적인 뜻은 ‘판결하다’, ‘정죄하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옳다 그르다고 판결하거나 정죄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그 사람을 모두 다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그 적은 앎으로 상대방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삼가야 할 일은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함께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다른 사람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딪칠 것’과 ‘거칠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장애물’과 ‘걸림돌’이라 번역했고,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넘어지게 하는 일’과 ‘죄를 짓게 하는 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장애물’이 아니라 ‘지지대’로, 또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존재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죄에서 떠나도록 돕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14-15)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속된(부정한) 것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속되다(부정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속되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대부분 신전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내어온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 로마서를 기록했는데, 고린도의 수호신은 ‘아르테미스 여신(비너스)’이었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그 신전에서 나왔을지라도,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어차피 우상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어 않았습니다. 또 바울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이방 신전에 드려진 것,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먹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믿음이 적다고, 바르지 않다고 정죄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당신들은 그런 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어도, 그것을 부정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입니다”라고 지지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절제하여 연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래서 16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믿음이 좋고 신실한 것은 굉장히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으로 삼으면 그 신실함은 비방을 받게 됩니다. 또한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바른 일이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는 것은 틀린 것이고 비방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믿음을 자랑의 도구로 사용하고, 자신의 의로운 삶을 정죄의 도구로 삼으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 중에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쫓겨난 ‘혼인 잔치의 비유(마 22장)’도 있고, 초대받은 사람이 밭을 샀다고, 소를 샀다고, 장가를 들었다고 오지 않은 ‘큰 잔치 비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먹을 것이 풍성한 잔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가 먹고 마시는 잔치가 아니라 성령님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바른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바른 삶을 살게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나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 공급받는 은총으로 인함입니다.
‘평강’은 ‘평화’로도 번역하지만, ‘조화’, ‘화목’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의미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있고,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정죄하거나 다투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희락’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난 후에 누리는 영원한 기쁨과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양을 되찾은 기쁨, 잃은 드라크마(은전)를 되찾은 기쁨,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 기쁨이 희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 평강, 희락’은 오직 ‘성령 안에서’ 시작되고, ‘성령 안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인삼각(18-23절)
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합니다. 만약 자신은 하나님의 의와 평강, 희락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든지 또 어디에서든지 사람과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비난이 이어진다면 그 삶은 바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순서가 중요한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지만,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단지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진정한 화평은 하나님을 목적 삼을 때만 가능합니다. 만약 사람과의 화평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그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한하고도 자주 변하는 인간은 목적의 대상이나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덕을 세우다’의 문자적인 ‘집을 세우다’입니다. 즉 덕을 세우는 것은 집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집은 혼자 살기 위해서 세우지 않고 더불어 살기 위해서 세웁니다. ‘1인 가구’는 있어도, ‘1인 가족’은 없습니다. 혼자서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것은 곧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약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의 삶이 세워지고 있다면 나는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 사람의 삶이 허물어지고 있다면 덕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모든 사람과 덕을 서로 세워가야 하지만, 특히 나보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과 먼저 해야 합니다.
또한 ‘힘쓰다(디오코)’는 ‘뒤쫓다’, ‘추격하다’의 뜻입니다. 특히 이 단어는 적군이나 적의를 가진 사람을 추격할 때 쓰는 말입니다. 전쟁에서의 추격은 자신의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사력(死力)_죽을 힘’을 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화평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것이 그와 같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새번역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룩해 놓으신 것을 음식 때문에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먹음으로써 남을 넘어지게 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롭습니다.”
만물이 정결하지만, 음식으로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망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인 제게 음주나 흡연이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만약 제가 음주와 흡연을 한다면, 그것은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특히 금주와 금연을 결단하고 더욱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할 것입니다.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다신교 국가인 로마 제국에서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대부분 신전에 제물로 바쳤다가 내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중에는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동일한 이유로 왕이 먹고 마시는 음식과 포도주를 10일간 먹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신앙은 ‘바르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바른 것을 행하는 것’으로 성숙해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이 있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복이 있는 사람은 자기 믿음을 스스로 잘 견지할 뿐만 아니라, 바른 삶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을 배려해서 상대의 수준에 맞추어 주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상대에게 맞추어서 상대의 수준으로 동화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기 믿음의 수준을 잘 견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려옵니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직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 드려,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가며, 믿음이 신실해지도록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한 므나를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기기 위해서 주어진 삶의 길을 신실하게 걷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한 므나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힘으로 삼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배려함으로 더욱 성숙의 길을 걷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과 믿음이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성숙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우리의 성장과 성숙이 다른 연약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지 않게 하시고, 섬기고 세워주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유도 연약한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절제함으로 우리의 삶과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게 하시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주신 한 므나로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기기 위하여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목적 삼고 걸어감으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도 바울은 부딪힐 것(장애물)이나 거칠 것(걸림돌)을 형제 앞에 두지 말라고 했는데, 당신의 삶이 누군가가 둔 장애물이나 걸림돌로 인해 넘어질 뻔한 적이 있습니까? 또한 당신이 알지 못하고 둔 장애물이나 걸림돌 때문에 누군가가 넘어질 뻔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교훈을 받으셨습니까?
2.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3. 바울은 고기와 포도주가 누군가를 넘어지게 한다면 절제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 절제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4. 다른 사람을 섬기고 세우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새벽기도 > 로마서(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5:14-21  (0) 2022.09.02
로마서 15:1-13  (0) 2022.09.02
로마서 14:1-12  (0) 2022.09.02
로마서 13:8-14  (0) 2022.09.02
로마서 13장 1-7절  (0)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