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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16:17-27

로마서 16:17-27
찬송가 120장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로마서의 마지막 장, 16장은 성도들에 대한 문안 인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문안 인사 중간에 거짓 교사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17-20절)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사도 바울이 마지막 인사말에 지금까지 배운 교훈을 잘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이 배운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도들을 포함한 주님의 제자들이 전한 복음, 즉 주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구원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분쟁’은 ‘불화’, ‘불일치’를 뜻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근거한 가르침에 벗어난 말로 교회 내에 불화를 일으키고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 당시 교회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있습니다. ‘거치게 하는 자들’이란 함정과 올가미를 놓는 사람, 또는 미끼나 유혹물을 놓는 사람을 뜻합니다. 교회 내 ‘거치게 하는 자들’은 사람을 파멸시키는 올가미나 미끼를 놓아 교우들을 죄에 빠지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근거한 가르침에서 벗어난 말로 교회 내에 불화를 일으키며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살피다’의 원어는 ‘보초’와 ‘정찰병’과 같은 군사용어로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대할 때 보초병이 보초를 서거나 정찰병이 정찰하듯이 경계하고 감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라면 자신만 주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지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교훈을 거스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감시 역시 해야 할 의무입니다. ‘떠나라’는 원어는 무엇으로부터 분리를 뜻하는 전치사와 ‘두다’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이 말은 교회에서 주님의 뜻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단호히 결별하라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 구절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의 특징으로 첫째는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섬기다’의 원형은 종을 뜻하는 ‘둘로스’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사람이어야 주님의 교훈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종이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고 자기 욕심이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의 특징으로 둘째는 자기 배만을 위합니다. 자기 배만을 섬긴다는 것은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살아가며 탐욕을 주인 삼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교회 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결국 자기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의 일을 맡고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교활한 말’의 원어적 의미는 ‘유창한 말’, ‘그럴듯한 말’, ‘따뜻한 말’입니다. 이런 말로 순진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거짓말을 섞어 유혹합니다. ‘아첨하는 말’은 ‘감언이설’을 뜻합니다. 교우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비위를 맞추는 말로 순진한 교우들을 미혹합니다. ‘순진한 자들’이란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천진난만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교회 내에 순진한 사람들이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에 의해 미혹되지 않도록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결별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들의 경계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 칭찬은 ‘순종함’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순종함이 사도를 기쁘게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그 순종함을 당연히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바울의 이어진 권면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는 것입니다.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은 선하신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실천하라는 것이며, 악한데 미련하라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에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는데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미련하다’의 원어적 의미는 ‘혼합되지 않다’입니다. 즉,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과 섞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함으로써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게 살아가면 교회 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임을 다음 구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가르침을 거슬러 교회 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배후 세력인 사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사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면서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평강이 임하길 원하십니다. 평강 또는 평화를 이루는 방법은 선과 악이 서로 타협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을 물리치심으로써 선이 승리하도록 하심입니다. ‘평강’은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결별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는 선을 파괴하는 악을 제거함으로써 교회에 평강을 주십니다. 이러한 평강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평강을 기원하며 한 축복의 말이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입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21-27절)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1절부터 23절까지는 사도 바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 지역 출신 디모데를 데리고 함께 사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디모데는 유럽의 발칸반도 전도에 실라와 함께 바울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바울은 디모데를 동역자라고 표현함으로써 디모데가 복음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었기에 더 큰 일을 맡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주님과 결산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문안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친척입니다. ‘친척’으로 번역된 단어는 가까운 가족이라기보다 동족 유대인을 뜻합니다.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작성할 때 함께 사역하는 주요(主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로마서를 사도 바울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실제 펜을 들고 글을 쓴 사람은 ‘더디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을 ‘더디오’가 받아 적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중에 유일하게 로마서가 대필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바울이 직접 펜을 들고 쓰지 않은 이유는 바울이 율법이나 복음에 조예가 없거나 영성과 지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특별한 사정 중에 유력한 것은 바울이 심각한 안질을 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대필 되었듯이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 역시 대부분 대필자가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가이오’는 바울과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돌보아 주다’의 원어는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을 뜻합니다. ‘가이오’는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나그네 대접의 필요성은 구약 성경에 나오며 주님께서도 가르쳐주신 그리스도인의 의무사항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손 대접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문안하는 사람은 ‘에라스도’인데 당시 고린도의 재무관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재무관으로 일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해 본다면, 사도 바울이 2,3차 전도 여행 당시 고린도 상류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주님을 믿은 후 주님을 위한 헌신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아도’라는 사람에게 형제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형제는 믿음의 형제를 뜻합니다.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나의 복음’이란 바울의 복음이라는 뜻이 아니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 즉 주님에 대한 복된 소식을 뜻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 복음이며, 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복된 소식, 복음이 창세 전부터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과 계획을 새삼 느끼게 하는 구절입니다. 감추어진 복음이, 때가 되어 나타났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감추어진 복음이 나타나기까지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비로운 계시인 복음의 수혜자는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입니다. 어느 누가 복음을 받아들일지는 전도자가 알 수 없으므로 주님의 증인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삶으로 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인의 삶은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우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시는 주님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영광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의 은혜가 임할 때 가능합니다. 로마서 15장 7절에서 예수님께서 죄인이었던 우리를,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대속하사 우리를 의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주신 복음을, 삶으로 전함으로 이 땅에 복음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십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축복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심으로 복음의 놀라운 신비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득의(得義)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은혜와 그분을 믿을 때 베푸시는 칭의(稱義)의 은혜로 가능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주님께서 주신 복음을 자신의 삶으로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삶의 이력서에 주님의 증인이라는 이력을 남기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2.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3.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4.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작성할 당시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로마 교회에 문안하였습니다. 100주년기념교회가 다른 교회에 서신을 보내거나 구역에서 다른 신앙공동체에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지 생각해 봅시다. 이름이 언급될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나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힘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견고하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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