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를 해결하 기 위해 구약에서는 속죄제가 드려졌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희생 제사를 예표합니다. 오늘 본문은 속죄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1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속죄일에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은 먼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속죄를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제사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살피고, 그 후에 가족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처럼 속죄,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다른 이의 허물을 바라보기 보다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죄악들을 살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기 보다 타인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거나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객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론은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렸는데, 이것은 레위기 4장에서 속죄제를 드릴 때 수송아지를 드려야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물을 드린 후에 다음 절차가 이어집니다.
(12-13)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대제사장은 향로를 가져다가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항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득채워 시야를 가렸습니다. 향로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 속죄소를 연기로 가린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냄’과 동시에 ‘가리는’ 가시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입니다. 둘째로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게 되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향로에서 피어 오른 연기가 지성소를 가득 채워 속죄소를 가리게 되면 다음 단계가 진행됩니다.
(14)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피를 뿌림으로 대제사장과 그가 속해 있던 집안의 죄로 인해 오염된 지성소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집안에 대한 죄에 대해 고백을 드리고 난 후 다음 공동체를 위한 속죄가 이어집니다.
(15)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수송아지를 드렸다면 백성을 위해서는 염소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앞서 했던 방식과 같이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가져가 이를 속죄소 위와 앞에 일곱번씩 뿌립니다. 동물들의 피를 뿌림으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할 뿐 아니라 성물을 다시 정결케 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를 보면 신앙 공동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 속죄일의 순서는 어떠합니까? 대제사장으로부터 그의 가족 그리고 공동체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속죄라는 행위가 개인에서 더 큰 공동체로의 이동이 있는 것입니다. 핵심은 개인, 공동체 모두의 죄를 속죄하고, 정결하게 하는 예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는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입니다. 나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공동체의 잘못이라면 그것을 함께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어 지성소를 위한 정결 예식이 계속됩니다.
(16-17)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대제사장이 동물들의 피를 뿌리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된 것을 피로써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죄를 짓고 부정한 백성들이 성막을 드나들다 보니 가장 거룩해야 하는 지성소도 오염이 되었기에 이러한 정결 예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소는 별개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그들이 드나들던 모든 곳도 개인의 죄로 인해 부정해 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회막 안에 그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제사장들도 성소에 드나들면서 사역했지만, 이날만큼은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정결하게 된 대제사장만 장막을 드나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제사장들은 장막 뜰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장막 안에서의 예식이 다 끝나면 대제사장은 뜰에 있는 제단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18-19)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제물로 드렸던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을 정결하게 합니다. 피를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그 위에 일곱 번 뿌려서 부정하게 된 제단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단에 피를 뿌리라고 기록된 부분은 이곳 뿐입니다. 또한 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은 오직 속죄일에만 진행되었습니다.
속죄제를 살펴보면 사람의 죄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그리고 성전을 더럽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은 피를 뿌림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죄를 속죄하고 정결하는 것입니다. 피뿌림에 대해서 조금 더 묵상해보길 원합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피 뿌림이 나타나는데,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피를 백성에게 뿌린 뒤 이와 같이 증거합니다.
(출애굽기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뿌림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 예수님은 유월절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신약으로 넘어와 새 언약을 체결함으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곧 성전이요 성전이 곧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전 오염에 대한 원리를 교회에도 적용합니다.
(고린도전서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성전이고, 성전인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를 짓게 된다면 개인의 죄를 넘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죄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성전 된 공동체를 더럽히는 결과를 낳습니다. 만일 이것을 인식한다면 죄인은 회개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함께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매 순간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성전이며 우리가 모여 교회가 되고, 각자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굴욕을 당하시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 앞에 진정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응답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으로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이라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구주 되시는 주님 안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시는 모든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죄로 인해 죽음으로 달려가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오늘도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죄제를 통해 자신들의 죄악 그리고 공동체의 죄악을 고백하며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죄와 공동체의 죄악들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 놓고 회개 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성전 된 삶을 올바로 살아가게 하시고, 날이 갈수록 정결하고, 거룩한 모습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속죄제는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2. 대제사장이 휘장 안에 들아갈 때 향연으로 가득채워 시야를 가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속죄일에는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죄도 사함받는 시간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4. 속죄일에는 회막에 대제사장 외에는 출입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이처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신앙의 모습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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