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83장 ‘나 속죄함을 받은 후’
레위기 1장에서 10장까지는 각종 제사법이, 11장에서 15장까지는 각종 정결법이 있습니다. 정결법 이후에 16장에서는 다시 제사에 관한 규례가 나옵니다. 그것은 속죄일 제사 규례입니다. 16장 중 오늘 본문은 속죄일 제사에 관한 총론이라면 16장 11절부터 28절까지는 세부 규례가 있는 각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장의 마지막 부분은 속죄일 규례 준수에 대한 명령이 있습니다. 16장에는 속죄일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내용상 속죄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23장을 보면, 성회로 지켜야 할 절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27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속죄일을 ‘대속죄일’이라고 부르지만, 이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는 않습니다. 속죄일은 1년에 한 번 제사장을 포함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속죄하는 날이며, 개인이 속죄함을 받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날과는 구별됩니다.
성경에는 7월 10일을 속죄일로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7월 10일 속죄일은 소위 히브리력 또는 종교력에 의한 날자입니다. 히브리력 7월 10일 속죄일은 ‘욤 키푸르’(Yom Kippur)라고 부르며, 오늘날 양력으로는 9월 중순에 해당합니다. 히브리력 7월 10일 속죄일 전후에 중요한 절기가 있습니다. 7월 1일은 나팔절이고 7월 15일은 초막절의 시작입니다.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지킵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이 세 날을 지킵니다. 히브리력 7월 1일 나팔절은 유대력으로 신년의 첫날에 해당합니다. 유대인들은 신년 첫날 나팔절부터 속죄일을 지키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나팔절에 나팔을 불어 회개를 촉구합니다. 회개하면서 속죄일을 준비합니다. 특히 속죄일은 오늘날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조차도 중요한 날로 여기며 지킵니다. 경찰, 구급대원 등 특수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유대인들은 하루 종일 예배와 기도를 하며 지킵니다. 그리고 9세 미만 어린이와 산모 등 특수한 경우에 처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속죄일에 금식까지 합니다. 오늘날까지 이런 전통을 지키는 것은 그만큼 이날을 중요한 날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죄일을 민족적 차원에서 지키는 이유는 이스라엘 전체가 정기적 속죄를 통해, 정결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속죄함을 받음으로 정결하게 될 때 거룩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제를 통해 속죄함을 받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신앙공동체의 속죄일이 필요한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속죄일 규례는, 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하여 속죄함을 받아야 한다는 ‘대속의 보편적 필연성’을 보여줍니다.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조차도 정기적으로 속죄함을 받아야 함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역시 예수님의 보혈로 법적 지위상 의인이 되었을지라도, 죄성을 가진 자로서 삶 가운데 지은 죄를 주님의 보혈로 지속적으로 속죄함을 받아야 함을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 개개인의 속죄도 필요하지만, 신앙공동체의 속죄와 정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오늘 본문은, 신앙공동체가 부정하거나 사회나 국가가 타락하게 되면, 개인의 정결과 경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들은 주님의 보혈을 통해 속죄함을 받아, 정결과 경건성을 유지할 때 교회다움을 잃지 않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죽은 후에(1-2)
1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16장은 각종 정결법을 기록한 11장에서 15장 이후에 배치되었지만, 내용상 10장에 기록된 아론의 아들, 나납과 아비후의 죽음과 연관성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납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사용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죄일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하여 정기적인 속죄를 통해,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날입니다. 비록 나납과 아비후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속죄일 규례를 통해 제사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셨다고 해서 아무때나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아감이 허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을 지목하여 말씀하신 것은, 성소 출입은 오직 대제사장만 허용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지성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역시 지성소 출입이 아무 때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때에만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해주신 때가 없다면, 통상적으로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들어가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정한 사람이 정한 때에 정결 절차를 밟고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남이라는 것도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눈으로 보면서 대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에 보이시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은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까딱 실수 한 번에 죽을 수 있으니, 긴장하며 철저히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경고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매우 무서운 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소 안 속죄소 위에 나타나신다고 하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속죄소는 법궤 위에 있습니다. 속죄소는 십계명이 들어가 있는 법궤의 덮개입니다. 속죄소의 원어는 ‘덮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속죄소는 일부 번역본에서는 ‘하나님의 용서가 일어나는 장소’라는 의미로 ‘긍휼의 자리’라고 번역했습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언약 관계에서 언약을 어긴 쪽은 죽어야 합니다. 십계명을 어긴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십계명을 지키지 못한 백성들에게조차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피를 받으심으로 그들을 용서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에 나타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긍휼히 여겨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지성소의 속죄소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서 사전 절차가 있습니다. 3절에서 5절까지는 제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제사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성소에 들어오려면(3-5)
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대제사장 아론을 위한 제물, 수송아지는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고 숫양은 번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먼저 대제사장이 속죄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상세한 절차는 11절부터 14절에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제사장 아론이 입는 옷입니다. 4절을 보면, 속옷, 속바지, 띠와 관은 모두 세마포 재질입니다. 이를 거룩한 옷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기 전, 아론은 먼저 몸을 씻고 입어야 했습니다. 마음의 정결뿐만 아니라 몸 역시 정결하게 해야 함 역시 중요한 준비 절차였음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특이한 점은 예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화려한 제사장 옷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옷은 금과 보석과 다양한 색상의 실로 만들어진 옷입니다. 속죄일에는 이 옷을 입지 않고, 거룩한 세마포 옷, 흰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는 속죄일은 철저히 겸손하게, 꾸밈없이, 정결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아론이 속죄일에 입은 옷은, 온전한 대제사장이시자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9장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영광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화려한 옷이 아닌 세마포 옷처럼 꾸밈없이 깨끗한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제사장의 속죄 절차 다음으로,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은 숫염소 두 마리, 번제물은 숫양 한 마리입니다. 6절부터 10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15절부터 22절까지 상세한 절차를 언급하시기 전, 전체적인 개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6-10)
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아론이 자기를 위해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제사장들을 대속하는 속죄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대제사장이 중보자 역할을 감당하지만, 대제사장은 인간으로서 역시 속죄 받아야 할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온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7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두 염소는 5절에 있듯이 속죄제물을 위해 바쳐질 제물입니다. 8절과 10절을 보면,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속죄제물이란 제사장이나 백성들의 죄를 속함받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인데, 염소 하나를 ‘여호와를 위하여’ 드린다는 표현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는 방향을 나타내는 의미의 ‘~로’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같은 논리로 ‘아사셀을 위하여’에서 ‘위하여’ 역시 방향을 의미하는 ‘~로’로 번역하는 것이 ‘아사셀’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사셀’이 무엇이겠습니까? 인명이겠습니까? 지명이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뜻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문맥상 가장 적절한 견해는 이렇습니다. 아사셀을 ‘바위가 많은 낭떠러지’를 가리키는 장소로 보는 견해입니다. 아사셀의 어근에는 ‘거친 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22절에 있는 ‘접근하기 어려운 땅’과 일맥상통합니다.
아사셀이 장소를 의미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사셀로 염소 한 마리를 보내라고 하셨겠습니까? 21절과 22절에 증거하고 있듯이,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염소 머리에 전가하여 광야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광야는 곧 접근하기 어려운 땅, 분리된 땅, 바위가 많은 낭떠러지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자 짐승조차 생존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보내진 염소는 제단에서 제물로 바쳐진 다른 염소처럼 죽습니다. 죽는 방식만 따를 뿐, 죽습니다. 제단에서 제물로 바쳐지지 않을 뿐이지, 이 염소 역시 분리된 땅, 광야에서 죽음으로 속죄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사셀로 염소를 보내는 속죄제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모든 불의와 모든 범죄를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와 분리, 구별됨입니다. 거룩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죄와의 분리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사셀로 보낼 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아사셀, 죽음의 땅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 속죄일에 아사셀로 보내어진 염소와는 달리 죽음의 땅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보혈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법적으로는 의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매일 삶 가운데 알게 모르게 짓는 죄를, 주님의 보혈로 사함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속죄함을 받은 자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안에 있는 죄를 아사셀로 보내어 죄와 분리된 삶,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거친 땅, 분리된 땅, 생존할 수 없는 곳으로 가셔서 죽으셨음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보혈,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빚진 자, 속죄함을 받은 자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에 나타나신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세마포 옷을 입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속죄일에 두 염소의 속죄제물 중 한 마리가 ‘아사셀를 위하여’ 바쳐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오늘 나에게 아사셀로 전가할 죄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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