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오늘 본문의 앞부분인 레위기 17장1-9절의 내용은 구약 시대 제의에서 핵심적인 제물이었던 소, 염소, 양을 잡아먹을 때 반드시 회막에서 잡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고는 제의를 집례하는 제사장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짐승을 잡을 때 장막 앞에서 잡고 여호와께 예물을 먼저 바친 후에 먹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인 10-16절은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이고 피를 먹으면 안되는 이유와 그 처리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먹더라도 피를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입니다.
식용 짐승을 잡는 규정 (1-9)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본문 1절은 레위기에서 새로운 규정을 제시할 때 사용하는 도입 표현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로 시작하며, 2절은 레위기 17장의 규정들의 대상이 아론을 비롯한 그의 후손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히 2절은 ‘말하여’, ‘말씀하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레위기 17장의 규정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강조하셨는지는 그 뒷부분에 나옵니다.
(3-4)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강조하고자 하셨던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위해 짐승을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본질적 의미를 뒤로하고, 후대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 본문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논쟁의 이유는 이 내용을 마치 모든 짐승을 반드시 성전 안에서만 잡아야 하는 것처럼 오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르고 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으나, 그 본질의 의미를 살려두고, 변화된 시대에 따라, 특별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상황에 맞게 이를 지혜롭게 적용한 필요가 있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가축의 사용이 많아지고 다양해지는 이 시대까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따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해석할 때, 성막과 광야 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아직 출애굽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강조법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뒤 가나안 정착과 함께 적용된 새 규정은 신명기 12장 15절에서 모세를 통해 다시 주어지게 됩니다.
(신명기 12:15a)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이러한 점을 놓고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과거 이집트 문화에 젖어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축을 잡을 때,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신앙의 유아기와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일종의 초등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자녀를 교육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교육 안에서 상대방을 향한 무조건적인 용인이나 무책임하게 자유를 주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최근 젊은 부모들의 경우 자녀들의 신앙을 개인의 자유나 선택의 영역으로 분류하여, 이들에게 직접적인 신앙 교육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인본주의적인 생각이며, 그러한 생각과 교육은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다 나쁜 것은 아니나, 성경의 기본 원리는 온 세상의 중심에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중심에 있으시다는 가치관입니다. 인간이 온 세상의 중심이 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내가 무엇인가가 필요할 때, 나를 위해 서비스를 해주셔야하는 분이됩니다. 이와 같은 태도로 자신을 온 세상 하나님 중심에 둔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중심에 있는 인간은 행복하거나,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중심에 계신다는 가치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그 인생은 그제서야 안식과 행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을 과거 이방 종교를 섬기며, 자신의 안위만을 중요시 여겼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놓는 교육을 직접 시켜셨던 것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와 삶의 질서들을 힘써 가르쳐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절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중심의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나에게서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동행하며, 하나님을 힘써 교육하는 일을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와 우리 자녀의 삶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것이 계속되면 하나님과 끊어지는 삶의 자리로 스스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과 끊어진 인본주의는 행복과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죄와 욕망의 노예가 되는 삶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5-6)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5절은 제물을 여호와께 가져오게 하고, 또 회막 문 앞으로 가져오게 하고,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져올 것을 강조하면서 이 제물을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리라고 합니다. 이어서 6절은 제물의 피를 회막문 여호와 제단에 뿌리고 기름을 제단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5절에서 말하는 화목제는 역대하 30장 22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기를 나누어 먹는 목적으로 드리는 화목제입니다.
(역대하 30:22)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능숙한 모든 레위 사람들을 위로하였더라
이와 같이 절기 칠 일 동안에 무리가 먹으며 화목제를 드리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였더라
화목제는 하나님께 기름을 드리고 제사장의 몫으로 우편 뒷다리를 준 후에 나머지 모두는 바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시만,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고자 하나, 그 자녀에게 부모 공경의 의미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의 바른 삶을 가르치기 위해 자녀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무언가를 드리는 훈련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에게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지, 자녀의 것을 빼앗아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누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분이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빼앗으려는 분이겠습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시는 분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참 부모 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어지는 7-9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7-9)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번제나 제물을 드리되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7절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숫염소에게 제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숫염소를 의미하는 표현일 수도 있으나, 당시의 이집트 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염소 악령을 섬기던 사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란하게 염소 악령을 섬기는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은 악령을 섬기는 의식 자체가 성적으로 음란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다른 존재를 심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보시는 음란이었습니다. 숫염소 우상 또는 염소 악령을 섬기는 전통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살았던 지역인 고센의 인근 도시인 멘데스에서 유행했습니다. 여기서는 염소를 이집트신화에 나오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 ‘오시리스’의 영혼으로 생각하기도 하여 이를 음란하게 숭배하였습니다. 이것에 관련된 자료는 람세스 2세가 멘데스 인근에 세운 기념 석주에 더 나타납니다. 여기서 람세스 2세는 스스로를 염소의 신의 대제사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염소의 신은 당시 이집트 문화권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특별히 언급하시며, 이것을 섬기는 행위를 멈추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을 섬기는 모습은 신약의 고린도전서 8장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타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우상의 집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견해로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거짓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린도전서 8장과 레위기 17장은 그 내용이 유사하지만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우상에게 직접 제물을 바치지 않았지만, 레위기 17장의 경우에는 우상에게 자신이 직접 제물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한 것입니다. 레위기 17장의 염소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배교의 문제이고, 고린도전서 8장의 우상의 제물은 음식 정결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하나님 중심적인 개념을 가르치시기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도, 하나님보다 더 강력할 수는 없습니다.
피를 먹지 말 것 (10-16)
(10-12)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여기서는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먼저 첫 번째는 동물의 피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그 피는 먹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을 향한 제단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제단에서 사용된 피가 죄를 대속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그 이유를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의미는 피를 생명 유지 수단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피를 흘리면 죽게 되는 것 때문에 피와 생명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피를 먹지 않는 것을 통해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피는 생명이고, 피를 담은 생명인 너희 인간들은 피를 먹지 말라’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너희는 피이고 피인 너희는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은 그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존중이며, 불법하게 피를 내어 그 피를 먹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든 생명의 창조자와 소유자이심을 고백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창세기 9장 4-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체를 식용으로 주시면서 생명을 존중할 것을 강조하시는 부분이 나타나있습니다.
(창세기 9:4-6)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이 말씀은 피 섭취 금지를 말하면서 이를 짐승의 생명을 넘어 사람에 대한 살인 금지까지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살인 금지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었기 때문이라면, 짐승의 생명 존중은 짐승이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먹어서는 안되는 둘째 이유는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려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11절은 피가 생명이라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이 피는 속죄를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고, 이 진노는 죄인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 흘린 제물의 피는 생명을 상징하고 이 피는 죄인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서 죄인을 죄에 대한 징벌로부터 구하게 만듭니다. 피가 생명의 대속물 기능을 하게 된 것은 피 자체에 틱별한 효능이 있기 때문이 아니며, 생명이 피에 있으며 그런 피를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속죄하는 용도로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피로 상징된 짐승의 생명을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대신 취하신 것입니다.
(13-14)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13, 14절은 피의 규정 중에서 사냥한 짐승의 피를 처리하는 규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가축을 넘어 사냥을 통해 포획한 야생 동물에게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야생 동물은 사냥의 성격상 성막에서 잡을 수 없지만 사냥한 짐승의 피를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대신에 사냥한 짐승의 피를 모두 땅에 쏟아 내고 그 피를 흙으로 덮도록 하고 있습니다. 피를 흙으로 덮는 이유는 사람들이 피에 접촉하지 않게 하는 것도 있지만, 생명을 그 기원인 흙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4절은 사실상 사냥한 야생 동물뿐만 아니라,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 그 의미를 확대합니다. 14절은 피가 생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두 번에 걸쳐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은 사냥한 짐승이나 새의 피를 먹는 자도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명하십니다. 15, 16절입니다.
(15-16) 또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모든 자는 본토인이거나 거류민이거나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는 정하려니와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
15, 16절은 자연사한 짐승이나 다른 들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은 가축의 경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짐승은 피를 모두 쏟아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피를 함께 먹은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부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피를 직접 먹는 것과는 구별이 되는 상황입니다. 피를 직접 먹은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되지만 스스로 죽은 것과 찢겨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사람은 저녁까지 부정하게 되는 것으로 한정합니다. 이렇게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 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몸을 물로 씻지 않으면, 부정한 상태에서 성전과 공동체를 더럽혔기 때문에 죄를 담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구약은 반복해서,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먹지 말라고 합니다. 과거 유월절은 일 년생 어린 숫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구워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날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 피는 죽음의 재앙을 피하여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 때 피를 내는 짐승은 어린 양으로 대표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의 이미지로 등장하십니다. 그런데 신약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에서는 놀라운 장면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둔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어린 양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진정한 유월절 어린 양이 바로 자신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구약의 전통을 잇는 장면은 피의 상징으로서 포도주를 마시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각각 양의 고기와 피를 의미하므로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이 유월절 양의 살과 피를 통째로 먹고 마시게 하신 셈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진정한 유월절 양으로서 죄의 심판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러 오신 메시아이심을 스스로 드러내신 행위였습니다. 새로워진 유월절 규례에 따라 그 피를 성전 제단에 뿌려 죄 사함을 받는 대신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써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언약의 피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교회라는 새로운 성전을 구성하기에 그 피는 곧 새로운 성전 곧 그 피를 마신 성도들의 교회에 뿌려진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만찬은 신약에서 영원히 기념할 예식으로 지켜집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하고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피로 하나 된 공동체는 예수님의 피의 능력으로 온갖 거짓과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과 다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속죄제의 경우에도 짐승의 피가 성전(성막)에 뿌려짐으로써 성전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 뿌림의 효과를 얻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십자가 위에서 뿌려진 예수님의 피 역시, 성전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직접 뿌려져 영원한 죄사함, 즉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허락하신 피뿌림의 은혜를 바라봅시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그 피의 능력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교우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 생명의 이유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뿌려 주신 은혜로 인해
우리가 죄사함을 얻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흐릿한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가장 확실한 하늘의 능력을 소유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세상의 여러 험난한 일들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 결과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 속에서 참되신 하나님과 함께
말씀의 삶, 능력의 삶을 살아가는 무리 모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어린아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2. 오늘 내 안에 신본주의적인 마음과 인본주의적인 마음 중 어떠한 마음이 크게 작용하고 있나요?
3. 예수님의 피에 생명의 능력이 있다면 그 피의 능력을 힘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 오늘 나의 삶과 주변 환경이 하나님의 피가 뿌려진 거룩한 성소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노력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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