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12-32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위임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복음이 사도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을 통해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이어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어떤 때에는 하루에 삼천 명, 어떤 때에는 오천 명 넘게 믿는 자가 생겨났습니다. 초대 교회에 성장 이외에도 내외적 시련과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내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하여 많은 사람이 믿게 되던 날, 제사장들과 그들의 동조 세력이 사도들을 붙잡아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고 위협한 후 놓아준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동료들에게 알렸고 교회는 이를 듣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외적인 시련 이외에도 내적인 시련도 발생하였습니다. 교회가 믿음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심지어 재산이 있는 자들은 밭과 집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나중에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던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그 판 돈을 교회에 바쳤습니다. 헌물과 헌금은 사도들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교회에 모인 무리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재산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습니다. 이들은 소유를 팔아 그 전부를 교회에 바치겠다고 하였으나 그 값의 일부를 사도들에게 가져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부부에게 재산을 바치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부부는 성령 하나님을 속인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는 어떤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며, 교회는 거짓이 없는 거룩함으로 순수성을 유지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일련의 교회의 내외적 시련 가운데 사도들의 변함없는 주님의 증인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12-16절)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사도들은 성령님의 임재로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사도들의 손을 통해 사람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 역시 힘이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면 하나님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된다고 해서 사도들처럼 오늘날에도 표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된 사람은 그 결과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들이 성전 내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를 할 때 믿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도구 삼아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어 그 수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때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성전 내에는 불신자들도 있었습니다. 13절에 ‘나머지’는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기에 믿는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권세를 두려워한 불신자들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했습니다.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예루살렘 부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바람으로 주님을 찾았듯이 사도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전 내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도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재확인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손이 되자 주님께서 행하셨던 능력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사도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온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복음의 능력을 이어받아 죄인들을 구원하는 주님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는 가운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옥에 가두었더니/옥문을 열고(17-26절)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당시 제사장 계급을 독점한 사두개인이 대제사장과의 결탁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세력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핍박할 것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복음을 듣는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사도들의 말씀 사역이 절실히 필요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감옥 밖으로 인도하셨습니다.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하나님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감옥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경비병들의 아무런 제제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방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감옥 밖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생명의 말씀’을 전부 다 백성에게 말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죄로 인해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어가는 한 생명이라도 살리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도구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위협 속에 놓이더라도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건져주십니다.
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에 의해 감옥 밖으로 나가 이른 아침 성전에 들어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전날에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이른 아침에 불러 심문하고자 했던 대제사장과 그의 세력들은 공회로 모였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전에 1차 경고를 했음에도 다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벼르고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였습니다.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공회에서 보낸 사람들이 확인한 것은 사도들이 감옥에서 사라졌으나 감옥은 든든히 잠겨 있었고 경비대는 감옥 문에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밖으로 인도하셨음을 공회의 사람들이 입증한 셈입니다.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인간의 이성으로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미스터리, 수수께끼로만 남을 뿐입니다. 수수께끼를 풀려고 끙끙거릴 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사도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감옥 관리 감독자였던 성전 맡은 자가 직접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사도들을 강제 구인하려고 했습니다. 26절에 ‘잡아왔으나’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의 뜻을 살리면 강제 구인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데려왔으나'입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동요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행악자들의 행태는 법과 정의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행하며 불의를 행하기 위해 민중을 기만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7-32절)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대제사장이 사도들을 공회에 세우고 심문하였습니다. 먼저, 왜 지난번 경고를 무시하고 성전에서 가르쳤냐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침이란 대제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너희 가르침’입니다. ‘너희 가르침’은 곧 예수님의 가르침이자 하나님 나라에 관한 복음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의 세력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대제사장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대제사장이 말하는 ‘이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대제사장과 그의 세력들은 예수님의 이름조차 입으로 언급하기를 거부한 악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그들이 빌라도에게 고발하여 내려진 판결이었음에도 자신들의 악행을 시인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자 그 가르침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니 대제사장과 그의 세력들은 불안했던 것입니다. 의인들은 비록 핍박을 받으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지만, 악인들은 의인을 핍박하나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고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은 대제사장의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의 세력들이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로 여겨 나무 십자가에 달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저주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바꾸셨습니다. 사도들은 이를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죄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사함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하나님 우편에 올리셨고 예수님이 왕이시고 구원자이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심문하려고 했던 대제사장들과 그의 세력들은 오히려 사도들의 입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권력자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32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위임 명령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모든 죄인들의 구원자로 삼으셨던 일이기도 하지만 ‘일’로 번역한 원어는 ‘말씀’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 일에 증인이요’라는 말은 ‘말씀의 증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든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 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만 증인이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함께 사도들의 증인이 되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내 증인이 되리라’는 위임 명령은 시공을 초월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 말씀으로 주신 위임 명령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보고 믿는다면 그 일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어 죄인들을 회개시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신실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의 임재로 권능을 받았던 초대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그 증인의 삶이 오늘날까지 성령님 안에 믿는 자들을 통해 이어져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는 시련에도 주님의 증인임을 잊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 저희 역시 어떤 시련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주님의 증인된 삶을 이어가게 하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는 영의 눈을 뜨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모인 두 부류의 사람은 각각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 믿는 사람과 상종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세상 사람이 나와 상종하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기 때문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3.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감옥 밖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에 내가 영적 감옥에 갇혀 있다면 어떻게 그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4. 사도들이 권력자들 앞에서 ‘이 일에 증인이요’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힘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증인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날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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