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19-28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인도의 한 개척교회 목사가 힌두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수년간 학대를 당해오다 잔인하게 살해됐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9월 24일 보도했습니다. 지난 7월 10일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고다라리 지구의 한 마을 숲에서 정체불명의 힌두 극단주의자들이 문시 타도(Munsi Thado) 목사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했다고 밝혔습니다. 문시 목사의 아내 라지니는 극단주의자들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은 이를 무시한 채 목사를 집에서 끌고 나왔다고 증언했습니다.
5년 전 문시 목사는 배드파리 마을 안이 아닌 인근 숲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문시 목사의 열성적인 전도에 분노한 마을 지도자들은 그에게 기독교 신앙을 버리라고 요구했고, 그가 이를 거부하자 그를 마을에서 쫓아냈다고 합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그는 핍박 속에서도 전도를 이어가며 그 마을에서만 20여 가정을 전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인도를 비롯한 기독교 박해 국가와 그곳의 전도자들을 위해 마음 모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을 향한 박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인도에 이와 같은 순교적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있기에 그 땅에 생명의 역사가 끊이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 일행 역시 이러한 순교적인 각오로 전도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 돌로 침을 당할 뻔 했고, 루스드라에서는 실제로 돌을 맞고 죽을 뻔 하게 됩니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계속 전파되었고, 이방인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이 지역마다 세워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찾아 왔습니다. 이 유대인 세력은 이후 바울의 2, 3차 전도 여행 중에도 계속해서 추격하여 공격하였으며, 결국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붙잡고 재판에 넘기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배에 오르기까지 유대인들의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행태를 19절에서 증언합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 쓰러지다(19-20)
(19절)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유대인들은 바울이 있는 도시와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을 계속해서 방문하여 어지럽히고 바울을 공격하며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안디옥에서도 오고, 이고니온 지역에서도 왔습니다. 바울을 잡고 죽이기 위한 연대입니다. 악한 일을 위해서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말로 무리를 충동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란한 말솜씨와 거짓말을 통해서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자기들 스스로는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 반하는 쪽에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무언가에 열심을 낼 때 이 일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역사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보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설령 내가 옳다고 여기며 강하게 주장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잘못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하게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선동을 당한 무리들이 돌을 들어 바울에게 던졌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 쓰러졌고, 기절했는지 혹은 거의 죽은 상태가 되었는지,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옮겼습니다. 이 사건을 바울은 이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여러 고난의 순간들과 함께 회고합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는 경험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주님 위해서 헌신했는데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 것일까? 하는 억울함도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바울은 돌에 맞아 죽어간 스데반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순교자기념관 건물 입구 오른쪽에 고 주기철 목사님의 고난의 명상 비석이 있습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끌려가기 전에 했던 그분의 마지막 설교에 포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혹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의 유산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 이렇다 할 고난이 없었다면 주님을 뵈올 때 드릴 말씀이 있도록 기꺼이 주님을 위한 고난을 달게 받는 신앙의 여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돌에 맞았던 바울은 성 밖으로 이끌린 이후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납니다.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동역자들이 바울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 바울은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납니다. 통증과 후유증이 있었을 텐데도 그는 다시 루스드라 도시로 향했고 하루 정도 머물렀다가 다음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발길을 향합니다.
1차 전도여행의 복귀(21-28)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더베에 도착하여 전도한 바울과 바나바는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제 더베를 반환점으로 삼아 그들은 복음을 전했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며 제자들을 권면합니다. 수리아 안디옥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이려했던 사람들이 있는 도시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한 영혼이 잘 자라도록 돌보기 위해 죽음의 위협까지도 불사하고 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복음을 처음 들은 사람, 신앙을 출발한 사람은 이제 성장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돌봄이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직접 양육을 담당한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양육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중에도 복음 전한 사람들을 다시 찾아 믿음을 권면하였고, 이후 그들을 다시 보고자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계시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양육의 책임을 함께 지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이 찾아온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살려 권면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혹시 신앙 때문에 겪는 인생의 환난,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이어서 바울은 교회의 리더들을 세우고 권면합니다.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약 2년여 기간 동안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 짧은 기간 동안 교회들이 개척되었고 리더들이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교회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지킬 수 있도록 금식 기도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그들을 위탁, 곧 맡겼다고 말씀합니다. 교역자는 섬기는 교우님들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기도를 올려드리고, 구역장님들은 구역원들을 주님께 위탁하는 기도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할 때 영적인 연결고리가 생기고 주님께서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 주십니다.
바울은 이처럼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굳건히 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깨어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되도록 스스로 더 힘써야겠습니다. 바울 일행은 이제 수리아 안디옥으로 복귀하는 여정에 오릅니다.
(24-26)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버가는 마가 요한이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곳이며, 바울 일행은 이전에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곧바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었습니다. 이제 복귀하는 여정 중에 버가에 들러 복음을 전합니다. 오직 복음 전도에만 집중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처음 출발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전에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며 그들의 전도 사역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 속에 그들은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그간 있었던 사역 내용을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27-28)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바울은 철저히 순종하여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 사람을 칭송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셨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는 다 맞는 말이지만, 오늘 바울의 고백과 같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바울의 표현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바울 일행과 동역하셨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마지막 16장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막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자들이 복음을 전했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전도 현장에 주님께서 표적으로 함께 해 주신 것입니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함께 행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복음 전도자가 주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전파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쩌면 우리 삶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가장 생생히 주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은 복음 전도 현장입니다.
바울은 전도 보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전도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과 세워진 교회들을 떠올리며 기도 부탁을 하고, 또한 계속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바울처럼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자라나며,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사도 바울을 본받아 우리가 있는 곳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고 드러내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로 인해 주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는 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복음의 통로로 드려지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쓰러졌지만,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영혼들을 향해 나아갔던 바울의 열정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일생을 복음 전도를 위해 살았던 사도바울을 보며, 우리도 삶에 현장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하며 말과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인생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믿음의 사람들을 권면하여 세워주며,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해 믿음의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날마다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며 동행하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바울은 복음을 위해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며 손해 보았던 모습이 있었는지 돌아봅시다.
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환난을 겪을 것도 각오하며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3. 바울은 전도한 사람들을 돌아보며 격려하였습니다. 오늘 나의 격려와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고 실천해 봅시다.
4.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동역을 위해 기도할 것과,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가 더욱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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