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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13:42-52

사도행전 13:42-52
찬송가 52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오늘 본문에는 사도행전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바울의 첫 번째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바울이 설교를 마치고 나가자 청중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전해달라고 합니다. 바울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혹은 설교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기에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전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평생 처음 듣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에 사로잡혔습니다.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회당 모임이 끝났음에도 많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이 흩어지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를 뒤쫓았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말하였고, 대화의 결론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임해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러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통해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이 말을 하고 난 후에 다음 안식일이 돌아옵니다.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바울은 그곳 사람들의 요청으로 그 다음 안식일에도 유대인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난 안식일에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회당을 가득 채운 무리를 보고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평소에 설교를 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시기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지난 안식일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설교할 때는 많은 인원이 오지 않았는데, 바울이 설교한 후에는 바울을 다시 초청한 것은 물론이고 온 시민이 다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회당에 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누군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고, 누군가는 시기하기 위해 모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설교를 반박하고 비방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비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을 비방합니다. 우리 역시 올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면 결국 성도가 성도를 비방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비방하고, 가족이 가족을 비방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안에 시기심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시기와 비방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46-47절이 증거합니다.

(46-47)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자신에게 반박과 비방을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바울은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한다’고 말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비방하였기에 그들 역시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되기를 자처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사야 49장 6절 말씀을 인용하며 이제부터 이방인에게로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자신이 사용 받게 됨을 알립니다. 바울이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이방인들은 기뻐합니다.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모여 있던 이방인들은 기존에 유대교에 입교하여 회당 모임에 참여하던 인원도 있었을 것이고, 바울의 소문을 듣고 처음으로 회당에 온 인원도 있었습니다. 모여 있던 이방인들은 이제 자신들에게도 구원이 약속됨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젖어 있었기에 이방인들에 대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말을 들은 이방인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방하는 유대인에게는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라고 표현한 것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구원이 허락된 것을 듣고 기쁨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기쁨에 가득 찬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결과로 비시디아 안디옥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루 퍼지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그들도 삶 속에서 말씀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라면 기쁨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통로의 삶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기쁨에 가득 차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할 때 유대인 지도자의 무리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유대인 지도자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냈습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을 쫓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로로 사용 받아야 하는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향하여 티끌을 털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유대인들은 종종 이방인 마을을 떠나 그들의 마을로 돌아갈 때, 신발에 붙은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러한 행동을 유대인들에게 하는 것은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들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6장 11절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신실하게 전한 이상 복음이 거절당했더라도 제자들은 여기에 대해 비난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이와 같이 자신을 쫓아낸 유대인들을 향해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며 오늘 본문은 마무리 됩니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쫓겨났지만 그곳에 남은 제자들 즉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다고 증거합니다. 헬라어 원문에 ‘충만하니라’가 미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순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이후 매일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 지도자들과 이방인들의 반응과 그에 대한 결과를 상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방한 유대인 지도자들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기쁨에 가득 차 사방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습니다.

바울이 설교하기 전에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인종차별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하나님께 마음껏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장벽을 바울을 보내주심으로 허물어주시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방인들은 기쁨에 가득 차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목적삼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여러 모양의 장벽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에 가득 차는 자들도 있고, 시기심에 가득 찬 자들도 있음을 바라봅니다.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살아가는지 나의 삶을 돌아보며 연약한 나의 모습을 용서하시고, 시기와 질투가 아닌 기쁨과 성령 충만함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각자의 삶에서 전하는 삶을 살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바울이 설교를 마치고 나갈 때 청중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다음 안식일에 온 무리가 모였는데 바울을 시기했던 무리는 누구이며 시기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이방인들이 기쁨에 가득 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쁨에 가득 차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바울과 바나바가 떠난 후에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기 위해 해야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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