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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16:1-15

사도행전 16:1-15
찬송가 :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바울 그리고 디모데, 루디아(1-15)
바나바와 마가와 갈라선 바울 일행은 더베와 루스드라란 지역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곳은 바울에게 있어 어떤 곳입니까? 1차 전도여행 당시(행14장), 바울이 앉은뱅이 병자를 고치고, 지역 사람들에게는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추앙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정도가 된 지역입니다. 바울에게는 이 지역을 떠올릴 때, 큰 아픔이 떠올려지고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있는 곳입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어떤 지역이나 장소를 얘기할 때, 좋은 추억이 떠올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기도 싫은 아픈 기억들이 담겨있는 곳이 있습니다. 왠지 피하고 싶고, 빨리 지나쳐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장소가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의 더베와 루스드라인 것입니다. 아마 바울은 그 지역을 다시 간다고 했을 때, 심리적 불안을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돌로 때린 사람들을 만나면 어쩌나? 그들이 다시 나를 공격하면 어쩌나? 그런데 그는 그 더베와 루스드라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시 찾아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1절을 보니, 그에게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디모데란 제자를 만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험난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사람은 순탄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적은 분명해야 합니다. 물론 그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고 옳아야 합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마가와의 갈등으로 인해서도 전도여행 초기부터 마음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 디모데를 보고 싶었고, 또 만남의 기쁨과 감격 때문에, 더베와 루스드라는 피하고 싶은 내면의 두려움이 있었을지라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디모데와의 만남을 통해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근심과 두려움이 싹 사라졌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떤 걱정과 근심이 있을 때, 좋은 소식이나 기쁜 일이 생기면, 그 순간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디모데를 만나서 힘을 얻고, 또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고 있는 디모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위안과 대견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디모데는 하나님이 바울에게 보내신 위로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디모데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더베와 루스드라의 아픈 기억을 넘어서거나, 감수하고라도, 그 사람을 만나면 내 힘겨움과 두려움이 기쁨과 평안으로 바뀌게 만드는 사람! 바울에게는 디모데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에겐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반대로 바울처럼 힘겨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디모데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사도행전에서 제자란 대체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잘 배움으로써 건전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입니다. 디모데가 그런 제자로 표현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울의 양육도 중요했지만, 그를 신앙적으로 잘 길러낸 것은 바로 디모데의 어머니 로이스와 외할머니인 유니게였습니다. 수험생이 인터넷 강의나 학원에서 명강의를 들어도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성적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평소 가정에서 지속적이고 유기적인 신앙교육이 없다면, 신앙적 성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 가정에서 신앙적 영향을 주는 길은, 우리가 부모로, 배우자로, 자녀로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라’고 권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님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행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전도여행에 참여시키고자 했는데, 그가 이방인뿐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사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혹 방문할 도시들에서 유대인들이 할례문제를 제기할 것을 예견했고,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되게 하지 않기 위해 3절,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 이후 바울과 일행들은 4-5절을 보면, 여러 성들 안에 세워진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작정한 규례 즉,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전달했는데, 그 결과 교회들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믿는 자의 수도 날마다 더해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6-10절에 보면, 이후 바울은 <성령>의 제지를 받아 아시아에서 사역을 못하고, 방향을 바꾸어 비두니아 지역(현 터키 북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되자 바울은 항구도시 드로아(현 터키)로 내려갔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사람(현 그리스 북부)의 환상을 통해 바울의 발길을 유럽 쪽으로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여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성령(6절), 예수의 영(7절), 하나님(10절)의 다양한 표현을 통하여, 이 복음전파 행로의 결정은 바울의 뜻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신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내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10절, 바울은 환상을 본 후, 곧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마게도냐로 떠나려고 힘썼다고 합니다. 아마 마게도냐로 가는 배를 알아보고 또 그 경비를 얻고자 이리저리로 노력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이라는 뜻의 원어적 의미는 ’결합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결합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결합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 순종을 할 때, 우린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1절,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란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직행하여’란 뜻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똑바로 갔다’는 말입니다. 당시 항해술의 한계와 날씨 등으로 순조로운 항해를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결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바울의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은 순풍을 보내어 그의 길을 순조롭고 형통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에서 네압볼리를 거쳐서 <빌립보>에 도착했다고 11-12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빌립보>란 곳은 어떤 곳입니까? 이에 본문은 ‘마게도냐의 첫 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게도냐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의미보다(가장 큰 도시는 데살로니가), 바울 일행이 마게도냐에서 첫째로 방문한 성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학설로는 당시 마게도냐가 4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는데, 순서상 제1지역에 속하는 도시가 마게도냐였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유하던 바울일행은 13절에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바울의 전도의 거점은 주로 안식일의 회당이 중심이 되었습니다.(행13:5)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쉬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회당이 아닌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도시에는 유대인 회당이 존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회당은 10명의 유대인 남자들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이곳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처를 찾기 위해 강가로 간 것입니다. 왜 강가로 갔는가? 유대인들은 회당이 없는 경우에 강가 또는 바닷가 근처에서 기도 장소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물이 있어야 기도하기 전에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강가에 나와서 모여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었습니다.

(14-15)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4절에 보면, 강가에 있던 사람들 중에 루디아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본문에는 그녀를 세 가지로 표현하는데, ‘두아디라 출신’, ‘자주색 옷감을 파는 사람’,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빌립보 출신이 아니라 두아디라 출신이라는 것은 이방인이며,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자주색 옷감을 파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녀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아디라시는 염색과 자주색옷감으로 유명했고, 자주색 옷감은 부유층이나 특권층들이 입는 고급 옷이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5절, 복음을 들은 그녀가, 바울 일행에게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강권한 것을 볼 때, 그녀의 재력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유대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14절에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볼 것은 ‘열어’의 원어적 의미는 단순히 ‘열다’가 아니라 ‘굳게 닫혀 있던 문을 활짝 열게 했다’라는 강한 의미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 마음이 근심과 걱정의 문으로 굳게 닫혀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디아 처럼 우리가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들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 굳건한 문제의 문을 활짝 여셔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 한번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코로나에 대한 여러 가지 대응은 그동안 많았습니다. 손을 자주 씻는 횟수가 기도하는 횟수보다 더 많지는 않았는지, 확진자들의 이동경로에 신속히 반응하면서, 내 영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응이 늦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루디아의 회심 후, 그녀의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으며, 자기 집을 바울 일행의 거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주었습니다. 결국 루디아의 집이 믿는 자들의 모임 장소가 되고, 이렇게 빌립보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의 계획을 바꾸시면서까지 빌립보에 오게 하셔서 만나게 하신 이 여인은 예비하신 영혼이었고, 빌립보 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바나바와의 갈등으로 혼선과 차질이 생겼고, 일정의 계획들이 바뀌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그런 문제들이 주님을 더 알아가게 되는 귀한 통로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가는 길은 동역자를 만나게 되고, 예비하신 영혼을 만나게 되고, 낯선 곳이라도 머물 곳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귀한 일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 도>
하나님. 저희는 삶 속에서 여러 갈등과 문제, 또 저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눈물도 나고 마음이 힘든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손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영적으로 민감하며, 내 삶의 굳게 닫혀 있는 문제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오늘 하루의 삶이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 인생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거나 피하고 싶은 더베와 루스드라와 같은 사람과 지역이 있나요?
2. 내가 힘겨울 때, 만나고 싶고 힘을 얻는 디모데와 같은 사람이 누군지 말해봅시다.
3. 하나님의 뜻에 내 의지를 결합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일까요?
4. 내 삶의 굳게 닫힌 문을 열어주기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경험하기 위한 신앙적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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