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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18:18-28

사도행전 18:18-28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안디옥으로 내려간 바울(18-22절)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부분과 3차 전도여행의 첫 부분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8-22절이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부분인데,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전해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올라갑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사도 바울은 지금 고린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전에 당시 최고의 지적 도시 가운데 하나인 ‘아덴(아테네)’에서 사역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복음을 열심히 전했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다른 곳에서보다 적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로 왔는데, 거기에서 자신과 ‘생업_천막 만드는 일’이 같았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부부를 만남은 하나님의 격려와도 같았습니다.
본문의 ‘여러(히카노스, hikanos)’의 문자적인 의미는 ‘충분한’ 또는 ‘충분하게 많은’입니다. 그래서 ‘여러 날’을 일주일 미만, 또는 일주일을 상회하는 정도의 기간이 아니라, ‘충분하게 긴 기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이 편안하고, 뭔가 누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는 당시 가장 타락했던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곳에 충분한 기간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고, 주님의 인도하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a)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1년 6개월, 충분한 기간이 지난 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도한 고린도 교인들과 작별하고 자신을 파송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도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 부부 중에서 ‘브리스길라’가 아내입니다. 보통은 남편의 이름을 먼저 쓰지만, 본문에는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성경에 이 부부의 이름이 5번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남편 아굴라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1번이고, 나머지 4번은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순서는 서열과도 같습니다. 또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유대 사회였음에도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브리스길라가 주님을 섬기는데 훨씬 더 헌신적이었고, 믿음이 깊었음을 의미합니다.

(18b)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과 그 일행은 안디옥의 수리아로 가기 위해서 고린도의 외항(外港)인 겐그레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 이전에 서원한 것이 있어서 머리를 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머리를 깎는 것은 결심의 표현입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그 시험 준비에 몰두하기 위하여 머리를 깎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결심을 푸는 행위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 ‘서원’은 ‘나실인 서약’을 가리킵니다. 이 서약은 남자든 여자든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을 구별하고, 그 기간 동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실인의 서약 기간은 일반적으로는 30일, 60일, 100일이 있었고, 길게는 7년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삼손, 사무엘, 세례자 요한처럼 평생을 드려 ‘종신 나실인’으로 살기도 했습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6장에는 나실인으로 서약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준수사항은 3가지가 있었는데, ①독주와 포도주를 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금주(禁酒)하라는 명령만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의 물은 대부분이 석회수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는 물의 대용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식탁에 빵과 함께 올려진 포도주는 우리나라의 반주(飯酒) 개념이 아니라, 물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실인으로 서약한 사람이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②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실인으로 사는 기간에는 가족을 비롯한 그 어떤 시체와도 접촉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③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머리로 대표되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실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남자든 여자든 머리가 장발이 될 수밖에 없었고, 서약 기간이 끝난 다음에야 칼로 머리를 자를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아 바울은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로부터와 이방인들로부터, 그리고 강과 바다에서, 광야에서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을 나실인으로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고린도에 체류하면서 ‘나실인’으로 1년 6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는 사역자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 중에서 1-2년을 선교지에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 달 중에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시설이나 기관에서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 중에서 일정한 부분을 일정한 기간 동안 나누는 일에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그 기간을 나실인으로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한 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일정한 기간을 구별하여 주님께 온전히 드린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유익하여 자신의 영적 수준을 성숙하게 만들어줍니다.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겐그레아에서 오늘날 터키의 동남쪽에 위치한 수리아의 안디옥까지는 1,000km가 넘습니다. 고대에는 아교를 발라 나무를 붙여서 배를 건조했기 때문에, 그 먼 거리를 직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바닷물과 습한 기후로 인해 아교가 풀어져 배가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시내버스만 갈아타면서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처럼, 구간 구간을 운행하는 배를 갈아타면서 항해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겐그레아에서 동쪽으로 출항하는 배 가운데 가장 먼저 승선할 수 있었던 배는 에베소로 향하는 배였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제국의 행정구역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 크기가 로마제국에서 수도 로마, 알렉산드리아, 수리아 안디옥과 함께 4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에베소의 수호신이 아르테미스 여신인데, 그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2,000년 전에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도시들 중에도 대도시였습니다. 바울인 이 도시 회당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20-21)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 에베소에 좀 더 오래도록 머물면서 계속하여 복음을 전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귀환하기로 한 바울은 “만약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당신들에게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서, 그들과 작별하였습니다. 바울의 그 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다시는 에베소에 들리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다시 에베소를 방문하게 해주실 것입니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본래의 계획대로 수리아의 안디옥을 향해 떠나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로 하여금 에베소에 그대로 남아 있게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되돌아올 때까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로부터 받은 복음을 에베소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 교회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21b-22)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마침내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입니다. 그리고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라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 사도들과 교인들에게 자신의 2차 전도여행에 대해 보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파송한 안디옥으로 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도 교우들과 2차 전도여행에서 확인했던 하나님의 역사와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아볼로의 전도(23-28절)

23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얼마 있다가 떠나

이것이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출발입니다.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이 모두 안디옥에서 출발했지만, 이 이후로 사도 바울은 다시는 안디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끝낸 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로마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3차 전도여행을 출발하는 사도 바울에게 잘 다녀오시라고, 또 돌아오시면 다시 반갑게 뵙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도,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마지막으로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가끔 교회에서 주일에 마지막으로 뵙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저 역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품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갈라디아와 부르기아는 우리나라의 강원도, 경기도와 같은 ‘도(道)’의 개념입니다. 이곳에 1-2차 전도여행에서 방문했던 지역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돌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의 삶과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었습니다.

(24-25)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에베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던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70인역성경’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간되었습니다.
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는 성경(구약)에 능통하였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성경이 한 권으로 묶여 있지 않았고, 엄청난 양의 양피지 두루마리 파피루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1권 분량의 양피지와 파피루스만으로도 박물관을 만들고도 남았습니다. 아볼로는 그 방대한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가 세례자 요한의 세례 이상은 몰랐습니다. 즉 오실 예수님은 알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알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을 열정적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회당에서 가르치는 아볼로의 증언을 유심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로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도(말씀)를 더 정확하게 풀어주었습니다. 만약 회당에서 알려주려고 했다면, 아볼로가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참 지혜롭게 행한 것이고, 그 가르침을 받은 아볼로도 참 성숙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는 아가야로 가려고 했는데, 그곳은 고린도입니다. 아볼로가 전하는 말씀을 고린도에서 온 사람들이 듣고, 아볼로를 초청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볼로는 아가야, 고린도에서 힘있게 말씀을 전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고, 그다음 순번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이 아볼로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끝자락과 3차 전도여행의 첫 자락인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터닝 포인트로 가득합니다.
고린도는 사도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신 터닝 포인트였고, 그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함으로 거기에서 아볼로를 만나서 말씀을 더 정확하게 가르치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였고, 아볼로가 고린도로 가게 된 것도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목적 삼음으로, 우리의 24시간이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은 다메섹 이후에 자신의 삶을 드린 사도로 살았지만, 고린도에서는 특별한 헌신을 위해서 나실인의 서약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나실인이어야 함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했는데, 거기에서 아볼로를 만나는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또 그 아볼로는 고린도를 위한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매 순간이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득한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도 특별한 헌신을 위해서 ‘나실인 서약’을 하고, 그것이 끝났을 때, 머리를 잘랐습니다. 당신이 신앙생활 가운데 ‘나실인 서약’과 같은 특별한 헌신을 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영적인 유익이 있었습니까?
2. 사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 부부는 아볼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어떤 행동이 다음을 위한 준비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요한의 세례만 아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주었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풀어주신 적이 있습니까? 또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풀어준 사람이 있습니까?
4.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아감으로 매 순간이 하나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게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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