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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25:1-12

사도행전 25:1-12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새 총독 베스도(1-5절)
벨릭스가 물러나고 베스도가 신임 총독이 되었습니다.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인들과 시리아인들 사이에 그들의 시민권의 문제로 싸움이 있었을 때, 벨릭스가 그것을 잔인하게 진압한 것 때문에 로마로 소환을 당했으며, 그의 형제 팔라스(Pallas)가 네로 황제에게 간청하지 않았다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해 줍니다.
벨릭스는 자신의 후임자 베스도 총독에게 업무인계를 준비하다가, 단지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울을 2년 동안이나 구금상태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지만 벨릭스는 바울에게 즉각 무죄를 선고하여,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바울에 대한 판결을 바르게 매듭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유대인들이 로마 정부에 민원을 내었을 것이고 그러면 자신의 출셋길에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임하기 전에 도리어 유대인들에게 마지막 선심을 쓰기 위해, 바울을 다시 결박하여 투옥해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신임 총독 베스도는 전임 총독 벨릭스보다 판단력과 지도력 등에서 훨씬 뛰어났었다고 합니다. 그는 부임하고서 가장 먼저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삼 일 후’는 ‘삼 일째’를 가리키는 유대적 어법입니다. 즉 신임 총독이 부임한 날이 첫째 날이고, 이튿날이 둘째 날이며, 그다음 날이 삼 일째가 됩니다. 즉 가이사랴에 도착한 신임 총독 베스도는 이튿날 하루만 쉬고 예루살렘 현지 시찰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베스도는 벨릭스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에 총독관청은 가이사랴에 있었지만 예루살렘이 유대의 수도이자 종교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를 더 잘 감당하기 위해서 그곳을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취임하자 올라갔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2,240km나 되었습니다. 당시에 비행기나 기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인데, 지금과 같은 조선술도 없었기에, 배를 타고서 한 번 만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범선은 나무를 요철 형태로 만들고, 그 사이에 아교를 발라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장거리를 갈 수 없었고, 계속 배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그래서 범선을 타고 로마에서 가이사랴까지 가려면, 최소한 열흘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로마에서 황제의 명을 받은 신임 총독 베스도는 최소한 열흘 이상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서 가이사랴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 여행길은 고단함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스도 총독은 그다음 날 단 하루만 쉬고, 곧바로 가이사랴에서 약 60마일, 약 100km나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그 정도로 참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일단(一團)의 유대인들이 찾아왔습니다.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 총독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유는 예루살렘의 유력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이후의 자신의 통치 행위에 유력한 사람들이 걸림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루살렘의 유력한 사람들도 신임 총독과 친분을 두텁게 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임 총독을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높은 사람들(70명의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이 신임 총독 베스도를 만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울을 고소하는 것이었습니다.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 의원들은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시켜 예루살렘에서 재판해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요구했던 것은 그들이 말한 대로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가이사랴와 예루살렘 사이에 자객들을 매복시켜 두었다가, 길에서 바울을 죽여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 의원들은 유대 사회의 최상층의 사람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과 개신교 각 교단의 총회장들 합한 것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베스도 총독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바울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사회 원로로서의 품격도 없었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서의 신앙 인격도 없었습니다.

(4-5)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베스도 신임 총독은 상당히 신중하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과 유력한 사람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히 감금되어 있고, 자신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가이사랴로 복귀할 것이기 때문에, 혹 바울을 고발하기를 원한다면 자신과 함께 가이사랴로 가서, 그곳의 법정에서 바울을 정식으로 고발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바울의 변론(6-12절)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베스도 총독은 예루살렘에서 여드레에서 열흘 정도 머문 뒤에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오가는 시간까지 다 합해서 열흘 정도 소요된 것으로 보입니다. 총독이 새로운 임지에 부임해서 그 지역의 유지(有志)들에게 성대한 잔치를 벌이라고 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 사람인지를 과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 총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100km나 되는 먼 거리를 가서 열흘 동안 시찰하고 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배스도 총독이 가이사랴로 돌아갈 때 대제사장들과 유력한 사람들도 그 먼 거리를 동행했습니다. 가이사랴 법정에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이사랴로 돌아간 베스도 총독은 다음날 재판석에 앉아 바울을 호출하였습니다.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한 목록은 ‘전염병’,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성전을 더럽게 하려는 자’ 등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24장과 25장 사이에는 2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2년 동안 바울을 고발할 목록을 얼마나 열심히 찾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바울을 궁지에 몰아넣고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수없이 계략을 꾸미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고발 내용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동안 로마제국의 실정법이나 유대인의 종교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고발은 거짓 모함이었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본문에 ‘아니하였다’가 한 번만 나오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세 번이나 나옵니다. 즉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았고, 성전에 대해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로마 황제 카이사르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도무지’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답변을 아주 간단하게 했지만, 이것이 바울의 네 번째 재판입니다. ①성전에서 결례를 행하고 있을 때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붙잡혀서 천부장과 군중들 앞에서와 ②유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③벨릭스 총독 앞에서 그리고 ④지금 베스도 총독 앞에서입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온 후에 2년 이상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이 참 지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택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갇혀 있기만 합니다.
우리의 생도 참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문득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에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울이 여기에 갇혀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통해서 최장편 성경인 누가-행전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 기간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기간에 누가는 이 지방, 가이사랴에 살던 빌립 집사를 찾아가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사도행전 1-12장을 기록하였을 것이고, 바울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로마까지 동행함으로 사도행전의 13장에서 마지막 장까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또 여러 사람의 기록과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긴 복음서인 누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생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와 바울의 변호를 통해서, 베스도 총독도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를 석방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었습니다.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자신의 입회하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받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전임 총독 벨릭스처럼 비열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자리에 연연해하는 관리였습니다.

베스도 총독의 어이없는 제의에 바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베스도 총독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10-12)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바울은 베스도 총독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대신 카이사르 황제에게 상소한다고 말했습니다. 황제에게 직접 상소하는 것은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신문고 제도’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만 요청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였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처지가 석방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막다른 골목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남은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종교재판을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로마로 가서 황제의 재판을 받든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사실 황제에게 호소한다고 해서 풀려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때의 황제가 네로(Nero)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치세 초기 5년간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의 도움으로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폭정과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할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로마행을 택한 것은 2년 전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들었던 주님의 말씀,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바울이 로마행을 택한 것은 석방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과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의 높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날까요?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총을 잊고 종교적인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사도로 삼아주신 주님의 은총을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주님께 이름을 불린 사람답게, 주님을 자신의 힘으로 여기며 사시는 한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의 사람들은 자신들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총을 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을 위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아무런 기약도 없이, 2년 동안의 옥살이를 묵묵히 감당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총을 잊지 않으며, 주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우리에게 진면교사(眞面敎師)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때,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일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누가를 통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게 하셨듯이, 코로나19로 인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보이는 것 같은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신비한 손길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그 은총 속에 살아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베스도 총독은 부임한 지 3일 후에 자신의 직무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역할과 맡은 일에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보다 좀 더 신실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신임 총독 베스도에게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2년 전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앙생활에서 바뀌어야 함에도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황제에게 상소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4.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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