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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25:13-27

사도행전 25:13-27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사도행전 23장 11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의 전 총독인 벨릭스가 사도 바울에 대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기에 바울은 감금상태로 2년이라는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사도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앞으로의 결과를 전혀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일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분노한 대적들 앞에서 자신을 향한 그들의 거짓된 고소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은 그동안 수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던 일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특별한 것도 없었고, 입증할 수도 없는 비난들만 늘 똑같이 되풀이할 뿐입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당시 황제에게 상소를 했다고 해서 황제가 직접 재판을 하는 것은 아니고 황제 직속의 최고 법정에서 상소를 다루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의 요구에 따라 베스도 총독은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기로 결정 했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서 재판을 받게 할 바울의 죄가 뚜렷하지 않기에 황제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쓰기가 참 애매한 겁니다. 고민하고 있던 베스도는 며칠 후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 베니게의 방문을 받고 명분을 찾기 위해 일종의 청문회를 소집하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의 방문 (13-22절)

(13-15)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팔레스타인의 북동쪽 지역을 다스리는 서른세 살의 젊은 왕인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벨릭스의 뒤를 이어 새로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를 공식적으로 문안하기 위해 방문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를 가리킵니다. 그는 헤롯 대왕의 후손으로 주전 40년부터 주후 100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 왕조의 마지막 왕입니다.

아그립바 2세의 증조부인 헤롯 대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며, 아그립바 2세의 큰아버지인 헤롯 안티파스는 실제로 예수님의 재판을 맡아 예수님을 직접 만났지만, 그분이 진짜 누구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증조할아버지에 그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에 그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것처럼, 아그립바 왕은 문제가 있는 성격들을 지닌 권력자들의 후손으로 유약하고 실수투성이인 왕입니다. 함께온 버니게는 아그립바 2세의 누이입니다. 버니게는 서른 살 때 그녀의 삼촌인 헤롯 칼키스와 결혼하였다가 나중에 칼키스가 죽었고 여러 남자들과 결혼을 하고 염문을 뿌렸습니다. 지금은 버니게가 그의 동생인 아그립바 2세와 함께 지내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헤롯 가문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가문의 조상들은 다음 세대의 후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고 악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며 노력해야겠습니다.

헤롯 왕조와 로마 총독은 각자의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대개 총독은 군사력에 대한 권세, 헤롯 왕조는 성전과 제사장 제도에 대한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헤롯왕조는 성전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성전의 보물들도 좌지우지했고, 황제에게 권한을 받아 대제사장의 임명과 해임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로마의 권세 아래 있었지만, 총독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직접 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에 더 직접적으로 복종해야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헤롯 왕조와 로마 총독의 관계는 끈끈하게 서로 잘 협력하는 관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헤롯 안티파스와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서로 주고 받았던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의 방문은 가이사랴에서 여러 날 머물게 되었으며, 베스도에게는 바울의 일을 의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후손인 아그립바는 그들의 종교적인 정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바울의 소송을 해결하는 일에 도움을 줄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그 소송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베스도는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바울을 고소하였다는 사실, 그들이 바울을 처벌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베스도는 그 소송의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아그립바에게 모두 말합니다.

(18-20)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베스도가 처음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바울에 대해 뭔가 대단히 악한 죄에 대한 고소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자기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들,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것만 있었다고 합니다. 베스도는 별다른 죄에 대한 혐의가 바울에게 없기에 벨릭스 총독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문제를 끌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될지 참 난감해 합니다.

베스도는 그 재판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열고자 했던 이유도 꼭 영향력 있는 유대 지도자들의 압력 보다는 예수라 하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그 사건이 갖는 종교적인 특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1-22)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기 때문에 로마로 보낼 수속과 절차를 밟는 동안 감옥에 그대로 갇혀 있다고 바울에 관한 이야기의 결론을 맺습니다. 바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베스도는 바라던 결과를 얻었습니다. 아그립바가 직접 바울의 말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바울과 아그립바는 다음 날 접견하기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아그립바가 유대인의 법과 관습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기억한 베스도는 가이사 황제에게 보내야 되는 일종의 법적인 서류를 준비해야 했기에 이제는 바울에 대한 특별 청문회를 개최하게 된 겁니다.

청문회의 개최 (23-27절)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그 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신임총독 베스도와 공식적인 방문을 한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왕의 신하들, 천부장들, 그 도시의 유지들과 바울입니다. 가이사랴에는 5개의 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천부장은 1,000명의 보병들을 지휘하는 로마의 보병 사령관입니다. 당시 가이사랴에서 힘이 있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거의 다 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들어왔다고 묘사하는 부분은 참 역설적 입니다. ‘위엄’이라는 말은 원어로 ‘판타시아스’인데 ‘외형적인 과시’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의 ‘판타지-fantasy(공상, 환상)’라는 단어가 유래한 것으로 볼 때, 이런 ‘외형적인 과시’가 환상적이고 참으로 덧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고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그 곳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진짜 왕족은 사도 바울뿐입니다. 바울이야말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화려한 옷을 입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크게 위엄을 갖추는’ 삶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2년 동안 갖혀 있는 삶을 살아 겉으로는 초췌하고 볼품없지만, 마음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겠습니까?

(24-25)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가이사랴의 법정을 책임지고 있던 로마 총독 베스도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베스도는 예루살렘과 여기에 있는 유대의 모든 무리가 바울의 죽음을 요구했지만, 본인이 판단하기에 바울을 죽일만한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포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추적하고 투옥시키며 기소하는 무리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황제에게 상소한 상태였기 때문에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26-27)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베스도는 황제에게 보낼 자신의 보고서에 아뢸 것이 없으므로 몹시 당황스럽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그는 고소내용들을 상세히 적은 보고서를 준비해서 네로황제에게 상소할 때 함께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인 사람들에게 그런 이유를 설명한 뒤 베스도는 바울을 심문해 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 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잘 아는 전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스도가 바울의 죄목을 보고서로 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전임자인 벨릭스처럼 바울을 면밀하게 조사했으나 그의 삶에서 잘못한 일들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제국의 시민으로서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법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범한 적이 없었기에 숨거나 두려움에 떨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의 바울을 보면 원수들로부터 정밀조사를 받았지만, 도무지 죄를 찾을 수 없었던 다니엘 6장의 다니엘이 생각납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을 누군가가 청문회를 통해 다 털어서 본다면,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습니까? 우리들의 삶 속에서 다양한 실수들과 불법적인 행위들, 일관성 없는 모습들을 찾아내어 목록을 만든다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의 정신을 생각하며 어디서든지 더욱 정직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 쳐야겠습니다.

우리가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를 통해 삶 속에서 전해야만 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흠잡히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에 흠잡힐 만한 일들이 없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깨끗한 양심과 정결한 삶 가운데 잘 간직되어 있다가 ‘인격’이라는 통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먼저 불러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도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답답한 상황 속에 처해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 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바르게 순종하며,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으로, 흠 없는 성도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과 같은 복음 전도자들을 통하여 지금의 우리에게도 복음이 들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복음이 우리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의 이웃들과 가족들에게도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속에서 크게 ‘위엄’을 갖추기 위해 참 분주히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심을 바르게 보게 하시고, ‘헛된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매일 매일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의 지도자들처럼 어려운 일들도 참 많습니다. 날마다 우리를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에 힘을 내고 순종하여 믿음의 삶을 오늘 하루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헤롯 가문을 보며 당신은 당신의 후손들에게 지금부터 무엇을 물려주기 위해 애써야겠습니까?
2. 베스도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아그립바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당신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구합니까?
3. 세상 속에서 크게 ‘위엄’을 갖추는 삶을 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것은 환상 속에 사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봅시다.
4. 지금 당신의 삶 속에서 흠 잡힐 만한 부분은 무엇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지금부터 삶 속에서 무엇을 결단하고 실천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가정, 직장, 교회, 인간관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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