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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14-24

창세기 3:14-24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사탄에 대한 심판과 원시복음 (14-19절)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의 제목은 따로 있지 않고, 그 찬송가 1절 첫 소절이 제목입니다. 79장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이고, 304장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본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도 제목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그 권의 앞부분 단어가 제목이었습니다. 창세기는 ‘태초에’가 제목이고, 출애굽기는 ‘이것이 이름들이다’입니다. 출애굽기가 야곱이 아들 요셉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온 집안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B.C. 250년경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이 당시 초강대국의 언어였던 헬라어로 번역되었는데, 그 성경을 ‘칠십인역성경’이라고 합니다. 칠십인역성경은 성경 각 권에 제목을 붙일 때, 그 권의 처음 나오는 단어나 어구로 하지 않고, 그 전체 내용을 따라서 붙였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는 ‘엑소더스’라고 했는데, ‘길 밖으로’ 또는 ‘길 밖의 길’입니다. 이 제목보다 출애굽을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출애굽은 애굽의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길을 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발생’, ‘기원’, ‘시작’이라는 의미로 ‘게네시스(영. Genesis)’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여러 시작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창세기 1장은 ‘우주와 천지만물의 시작’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장은 ‘사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그리고 3장은 ‘죄의 시작’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것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이 부분은 어제 함께 나누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두려워서 숨었고, 자신이 저지를 일에 대해서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사탄)에게 원인을 전가했습니다. 오늘은 그 후의 일입니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내가 먹지 말라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라고 물어보셨고, 하와에게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나 뱀(사탄)에게는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_네가 이렇게 하였기 때문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질문을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과 같고, 뱀은 바로 정죄하신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뱀은 다리가 아닌 배로 기어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_네 생명의 모든 날들 동안’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글이나 그림, 영상 아래에 댓글을 답니다. 댓글을 선하게 다는 것을 ‘선플’, 악하게 다는 것을 ‘악플’이라고 합니다. 악플은 무서운 흉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나 그림, 영상을 올린 사람이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플_아무런 댓글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올린 게시물이 완전히 외면당했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저주하다’에는 ‘내버리다, 포기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뱀(사탄)을 저주하셨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는 ‘외면의 대상’, ‘무플의 대상’이 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외면의 대상, 무플의 대상이 아닌 것이 얼마나 소망이 되고 용기가 되는지 모릅니다.

뱀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의 심판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남자를 통하지 않고, 성령님에 의해서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에는 ‘00가 00를 낳고’가 반복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사실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라고 하지 않고,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라고 증거합니다. 즉 예수님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가 낳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여자의 후손인 셈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뱀(사탄)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상하게 하다’는 ‘타박상을 입히다’의 뜻도 있지만, ‘분쇄하다, 박살내다’의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마귀를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원시복음(元始福音, Original Gospel)’ 또는 ‘최초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후에 여자가 겪어야 할 고통은 이러했습니다.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으로 보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기 전에는 출산할 때 고통이 없었거나 아주 적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출산 산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손가락 두 개를 보여주며, “몇 개냐?”라고 물었더니, 딸이 “두 개!”라고 답하니, 어머니가 “아직 멀었다”라고 말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가 산통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난 후에 여인은 출산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죄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몸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물론, 출산 자체가 죄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산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오셨습니다.
또한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를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또 공동번역성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아담과 하와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은 ‘살’이라는 단어가 유쾌하게 들리지 않지만, 이 말의 의미는 “너는 나다”입니다. 굉장히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 나니, 서로 지배하려는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처음에는 우리가 짓는 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후에는 우리가 범한 그 죄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후에 남자가 겪어야 할 고통은 이러했습니다.
(17-18)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에, 하와가 느껴야 할 고통은 단기간(임신과 출산을 다 해도 9개월)이었지만, 아담은 평생의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
처음에는 번성하고 땅을 다스리는 것이 기쁨이었다면, 후에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출산 후와 노동 후에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얼굴에 땀을 흘려야’에서 ‘얼굴’의 문자적인 뜻은 ‘코’입니다.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거나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땀이 처음에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다가 어느 순간에 뺨을 타고 흘러내려 가기도 하고, 눈썹을 타고 내려와 눈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코허리를 타고 내립니다. 그 모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죽음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었지만, 범죄 이후에는 죽음에 이르지 않는 존재는 없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과 동산 폐쇄 (20-24절)
20-24절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나가게 된 일과 그 동산이 닫힌 일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지금까지 하와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다만 ‘여자’라고 불렸습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하와 앞에 작은 숫자로 1)이라고 되어 있고, 아래를 보면 ‘생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와의 뜻이 생명_being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이후로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왔지만, 여인을 통해서 생명이 이어질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는 아담의 아내를 ‘하와’라고 부르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이브(Eve)’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성경을 그대로 읽으면 ‘하와’가 옳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은 헬라어(칠십인역성경)로 번역되었고, 라틴어(불가타 또는 벌게이트)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어 성경을 비롯한 서구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라틴어로, ‘Heva(헤바)’라고 했는데, ‘H’는 묵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Eve(이브)’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와 ‘이브’, 둘 다 옳습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후, 자신들이 벗은 상태라는 것을 확인하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죄를 짓게 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수치심입니다. 만약 죄를 짓고도 수치심이 찾아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면, 자신이 그 죄에 먹힌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은 것과 단지 재질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입은 것은 ‘치마’였습니다. 이 단어는 ‘허리띠’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지금의 표현으로 하면 미니스커트 정도의 크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가죽옷은 어깨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옷입니다. 지금의 표현으로 하면 원피스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짐승을 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한 첫 번째 희생이었고, 구약 속죄 제사의 원형과 같습니다. 그리고 장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예표하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21절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성경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지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입히셨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듯이 가죽옷을 지으셨고, 그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22-24)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문도 닫혔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복낙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라고 증거합니다. 마치 계시록과 창세기가 서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전체 내용은 ‘실낙원에서 복낙원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명 나무 열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선택하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오래전 광고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TV 광고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순간의 낙원을 좌우했고, 영원한 생명을 좌우했습니다. 바른 분별력과 바른 선택의 중요성은 우리 믿음 생활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하여 죽음이 왕 노릇을 하는 권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생명이 왕 노릇을 하는 권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을 십자가에서 찢으셔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슴 깊이 새긴다면 우리의 삶에는 감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요, 우리의 삶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 은총이 오늘 하루도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간의 대표인 아담과 하와가 뱀(사탄)의 유혹에 넘어지고 말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릴 것을 약속해 주시고, 아담과 하와를 위해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는 오판을 하고, 그로 인해 실낙원하고 말았지만, 우리에게 주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복낙원_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게 해 주심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가죽옷을 입혀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주신 주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는 한 날이 되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가정생활에서 당연히 연합하고, 섬겨야 함에도 연합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본래의 자리, 서로 섬기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2.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주셨다고 인정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아담과 하와는 생명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는 오판을 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바르지 못한 판단과 선택을 했다가 낭패를 당한 일은 없습니까? 그때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4.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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