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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4:16-26

창세기 4:16-26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가 4장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이 자신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며 죄가 확산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가인의 자손 이야기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의 지배가 가인에게 이르러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 그 가정 안에 어떠한 형태로 가시화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가 사회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라멕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또 다른 아들인 셋이 출생하며 소망의 씨앗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의 자손(16-22절)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가인의 삶을 요약적으로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서 살았습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라는 말은 그가 여호와 앞에서 단순히 나갔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는 여호와와 분리된 삶을 보여주는 말일 수 있습니다. 가인은 스스로 여호와에게서 분리되어 나갔습니다. 여호와 앞을 떠난 그는 부모가 추방된 에덴 동쪽의 ‘놋 땅에’ 살았습니다. ‘놋’은 ‘떠돎’, ‘유리함’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가인은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7-18)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가인은 ‘에녹’을 낳고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칭했습니다. 유랑민으로 살아야 했던 가인은 도시를 건설하여 자신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도시 건설은 문명의 발전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가인부터 라멕까지 6대의 계보가 소개되며 시간의 경과를 보여줍니다.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하나님은 처음에 ‘아담을 위해’ 아내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7대손인 라멕은 두 아내인 아다와 씰라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일부다처체가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만남을 보면, 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한 여자와 부부가 되어 강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보여준 부부의 원리도 이제는 무너졌음을 말합니다.

(20-22)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의 두 아내가 출산한 자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일이 소개됩니다. 야다가 낳은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목축업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발의 아우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음악가의 조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씰라가 낳은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였습니다.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인데, 나아마에 대해서는 다른 내용들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선악과 사건 이후에 사람들의 죄악은 계속해서 가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타락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가인의 자손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악기, 무기, 농기구 등의 문화를 발전시키며 문명을 세워 나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주 아래에서의 삶을 보상 받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우리들도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우리들의 안전과 명예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애쓰지 않으며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정말 무엇을 위해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항상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라멕의 노래(23-24절)

(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여기에 기록된 라멕의 노래를 통해서 라멕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노래의 소재는 살인입니다. 라멕은 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는데, 이는 가인이 저지른 형제 살인의 죄악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라멕도 가인처럼 형벌을 선고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가인보다 더 포악한 살인을 저질렀음을 마치 자랑처럼 노래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겼으나, 그의 후손인 라멕은 아내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노래합니다. 그는 자신이 받을 벌에 대해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중대함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추거나 숨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인하게 그 일을 떠벌리는 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경우는 가정 안에서 일어난 비극적 폭력의 예를 보여준다면, 라멕의 경우는 폭력이 사회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가인은 형벌을 두려워했지만(13-14), 라멕은 형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끔찍한 죄에 대해서도 둔감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인의 자손에 의해 문명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죄의 세력 안에 거했습니다. 그 결과가 라멕의 일부다처제와 그의 복수에 대한 노래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일처제를 깨뜨린 최초의 중혼자였으며, 상처에 살인으로 대응하는 잔혹한 자였습니다. 이는 가인이 시작한 사회가 라멕 시대에 이르러 더욱 폭력적으로 악하게 변질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문화와 문명이 발전해도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는 죄의 세력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두발 가인이 만든 금속 기구는 무기가 되어 대량 살상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정당화하며 유발에 의해 시작된 음악으로 승리를 만끽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베푸신 긍휼의 약속을 만홀히 여겼습니다. 가인의 살인이 라멕의 살인으로 이어진 것처럼 사람의 죄는 계속해서 자라고 확장됩니다. 그 무엇으로도 죄의 확장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칠해진 여러 가지 죄악을 벗겨 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늘 엎드려야만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의 끔찍한 저주를 끊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의 자손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25-26절)

(25-26)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4장에서 24절까지 말씀은 가인의 살인으로 시작해 라멕의 살인으로 끝납니다. 그들이 보여 준 시기와 미움, 폭력과 살인, 불만과 분노, 불안과 근심 등을 고려하면 세상에는 이제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아담의 또 다른 아들 셋과 그의 아들 에노스가 등장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고백하며 셋이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라는 사실과 ‘다른 씨’로 불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른 씨’를 통해 가인과 아벨로 인해 시작된 죄에 대한 문제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셋의 출생은 새로운 빛과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연약함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노스라고 부릅니다. 그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예배’를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임하는 구원은 예배자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에노스는 가인의 자손과는 다른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며,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인간의 추악한 타락이 뒤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시며 새 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찾으시는 사람은 정말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문명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보다, 겸손히 그분을 찾아 예배하는 연약한 자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부패한 이 세상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가인의 자손이 세워 가는 나라는 발전되어 가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셋 계열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그 나라를 꿈꾸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의 발걸음을 말씀에 굳게 세울 수 있는 은혜를 늘 구하며, 어떠한 죄악도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말씀의 빛이 비치도록 은혜의 통로로서의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인과 라멕처럼 하나님을 떠나 참 어리석고 악하게 살아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심을 믿습니다. 셋의 자손들처럼 늘 겸손히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예배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말씀에 굳게 세울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들의 삶 가운데 말씀의 빛이 비치도록 은혜의 통로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이 땅 가운데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창세기 3장과 4장에 나타난 죄에 대해 다시 한 번 묵상해봅시다.
2. 여호와 앞을 떠나서 스스로의 성을 쌓으려고만 하는 삶의 영역은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3.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고 더욱더 악해진 라멕처럼 당신 안에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진 부분들은 없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하나님께 고백합시다.
4. 당신은 셋과 에노스처럼 세상 속에서 소망이 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부터 무엇을 결단하고 실천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가정, 직장, 교회, 인간관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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