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9-22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창세기 6장 이전에는 아담의 아들 가인의 계보와 아담의 아들 셋의 계보가 있습니다.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이 섞이면서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기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부터 9장에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노아에 대한 구원의 이유와 계획과 과정이 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던 노아의 행적도 있습니다. 노아는 셋의 후손이지만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대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인류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창세기 10장부터는 대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아들들의 계보가 나옵니다. 창세기 6장에서 9장은 대홍수 심판 이전 인류의 계보와 대홍수 심판 이후 구원받은 자의 계보 사이에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따랐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9-12절)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노아가 의인이었다는 것은 죄가 전혀 없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의인이라는 것은 스스로 의로운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자로서 의롭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 안에 거하였기에 그들과 달랐고 당대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했던 노아의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했던 삶입니다. 9절에서 말하는 ‘족보’는 세대를 뜻합니다. 노아의 족보는 노아의 2세대 자녀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노아의 아들 3명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이 앞으로 인류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조상임을 암시하는 구절입니다. 이 세 사람의 계보가 대홍수 심판 이후 1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와는 달리,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포악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면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하늘을 보좌 삼으시고 땅을 발등상 삼으시는 분이기에,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면전에서 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1절에서 주목할 점은 부패하고 포악함의 주어가 ‘온 땅’이라는 것입니다. ‘온 땅’이란 땅 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지만, 또한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포함합니다. 이는 온 땅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물조차 심판의 대상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12절은, 온 땅이 땅 자체를 의미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땅이 부패하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혈육 있는 자’는 사람을 대신하여 사용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사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겠습니까? ‘혈육 있는 자’에 해당하는 원어를 직역하면, ‘살’ 또는 ‘고기’입니다. 그렇다면 ‘혈육 있는 자’란 하나님 밖에 거하며 부패하고 포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사람이 아니라 ‘고기 덩어리’에 불과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하여 살아가면 영혼이 없는 고기 덩어리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영혼이 없고 육체만 있다면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의 영이 거하시므로 ‘혈육 있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육체가 죽어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혈육 있는 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13-17절)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혈육 있는 자’는 그들의 포악함으로 인해 멸망합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인류 대종말의 심판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목적은 악인들의 심판에만 있지 않으시고 악인들로부터 노아와 같은 의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포악한 세상에서 겪는 의의 고난에도 최후 심판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대홍수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구원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4절부터 16절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홍수에서 살아남을 방주의 재질과 방수법과 크기와 구조를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방주의 재질은 고페르 나무입니다. 역청을 칠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오랫동안 방주가 폭우와 폭풍과 거센 파도를 맞아도 견딜 수 있는 방수를 위함입니다. 그리고 배는 3층 구조인데, 그 크기는 오늘날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길이가 136.8m, 너비가 22.8m, 높이가 13.6m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배의 배수량은 약 32,800톤이라고 합니다. 약 43,000톤의 배수량을 가진 페리(ferry)에 1,500명의 승객과 500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이 페리의 약 75% 배수량의 방주가 수용할 수 있는 생물들의 수를 대략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방주에 가축 ‘양’을 실었을 때 약 12만 마리를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주목할 점은 방주로 번역한 단어가 히브리어 ‘테바’인데, 이는 무동력 배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방주에 동력장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람을 이용할 돛도 없고 바닷물을 밀어낼 노도 없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조절할 키나 조향장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배였습니다. 이처럼 구원 방주 역할을 하는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움직이는 테바가 되어야 하고, 교회의 지체인 우리 역시 각자 인생을 자신이 설계하여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움직이는 테바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배의 키를 자신이 쥐고 있다면, 그 사람은 테바에 탑승한 사람이 아닌 셈입니다.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구체적인 심판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육체’는 12절에서 나온 ‘모든 혈육 있는 자’와 같은 히브리어입니다. 땅에 있는 것들은 혈육 있는 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생물종’입니다. 다만 노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음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내 언약을 세우리니(18-22절)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신다는 것은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언약이 무엇인지를,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는 천하에서 멸절되지만, 노아와 노아의 가족은 구원 방주에 들어가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대홍수 심판 이후 인류의 새 역사를 위해 인류와 함께 공존할 ‘생물종’들의 보존과 번식을 위해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모든 생물’은 보존과 번식을 위해 암수가 짝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암수 한 쌍씩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요점은 ‘생물’마다 암수가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모든 생물을 일일이 찾아 방주로 데리고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9절의 ‘이끌어들여’와 20절의 ‘나아오리니’는 같은 히브리어입니다. 노아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찾아서 방주에 실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방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더라도 그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20절의 ‘나아오리니’는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이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방주로 나아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19절의 ‘이끌어들여’는 모든 생물이 방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라는 의미입니다.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먹어야 생존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에, 대홍수 심판 기간에 방주에서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에 노아가 준행했다는 말로 맺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노아의 행함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아가 거대한 방주를 제작하고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당대 사람들의 조롱을 이겼어야 했습니다. 본문의 첫 구절에서 노아가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이고 하나님과 동행했음의 확증이 바로 노아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8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임을 입증한 행동은,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_말씀에 굳게 서서 세상의 혈육 있는 자처럼 포악하게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홍수 심판은 인류 역사 시작과 인류의 대종말 사이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대홍수 심판은 인류 대종말 심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해 주신 노아의 방주는 인류의 대홍수 심판에서 구원의 방편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은 인류 대종말의 최후 심판에서 구원의 방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신앙 공동체이자 신약시대 방주와 같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노아 방주에 들어간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신약시대에 구원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방주를 탄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말씀에 굳게 서서 세상의 포악함에 빠지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방주 교회로 인도하는 은혜의 통로로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저희가 예수님으로 인해 의롭게 될 수 없었고 주님과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구원 방주를 만들듯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사역을 하게 하시옵고, 노아가 구원 방주에 모든 생물을 이끌어 들였듯이 구원 방주인 교회에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자들을 인도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노아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3명의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기 전,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족보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소개되겠습니까?
2. 포악함이 땅에 가득할 때, 그들이 어떤 존재로 불렸습니까?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우신 언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4. 노아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준행하였던 것처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지금 시점에서 준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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