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1-24
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승선 명령과 순종(1-5절)
오늘 본문 창세기 7장의 소제목이 ‘홍수’입니다. 그 중에서 1-5절은 방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에 따른 노아 가족의 순종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 너비는 50규빗, 높이는 30규빗이었습니다. ‘1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약 45.6cm’ 정도입니다. 그래서 방주의 크기를 미터법으로 표현하면, 길이가 길이 136.8m, 너비 22.8m, 높이 13.6m입니다. 방주는 길이로만 하면, 105m의 축구장 길이보다도 더 깁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시고, 아무 자재(資材)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렇게 큰 배는 노아 가족들만으로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인부를 사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전 재산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날’, 방주로 들어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노아가 만든 배는 단순한 배가 아니라 구원의 배였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노아가 그날을 의식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하나님 앞에서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걷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삶은 악한 길을 걷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날’이 있습니다. 그날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과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삶의 내용이 다르고 목표가 다릅니다. 그날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그 날은 우리의 오늘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가장 잘 준비하는 삶은 오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2-3)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정결한 짐승과 새는 암수 일곱씩, 정결하지 않은 짐승은 암수 둘씩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6:19에는 모든 생물의 종류대로 둘씩 나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본문 14-15절에 보면 동물들이 둘씩 방주로 들어갔다고 증거합니다.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주에 들어갈 동물들이 방주까지 나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노아가 그 큰 방주에 땅에 있는 모든 동물을 암수 한 쌍씩 넣겠다고 잡으러 다니면 몇 쌍이나 넣을 수 있었겠습니까? 혹 작은 동물들은 몇 쌍 잡아넣었을지라도,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나 코뿔소나 코끼리 같은 거대한 동물을 잡아넣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수리나 올빼미와 같은 맹금류도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평생 잡으러 다녀도 반의반도 채우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이었듯이, 거기에 채울 동물을 데려오실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이었습니다.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고서, 비는 일주일 후에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주일은 방주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노아와 같은 마을이나 주변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 방주를 만드는 일에 인부로 일했던 사람들은 방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았을 것입니다.
흔히 노아의 방주는 120년 동안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성경은 기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방주가 몇 년 동안 만들어졌든 그 시간이 모두 기회였고, 이제 기회는 딱 일주일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 일주일동안에도 사람들은 노아를 조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받아들였더라면 그렇게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을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22에도 ‘다 준행하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아는 길이 136.8m, 너비 22.8m, 높이 13.6m의 3층짜리 방주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방주 안에서 자기 가족과 온갖 짐승과 새들이 다 먹을 양식을 비축하는 일을 다 준행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다 준행하기 위해서 노아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겠습니까?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실 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6:14)”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내 생각을 따르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홍수 심판의 시작(6-12절)
6-12절은 홍수 심판이 시작됨에 대해 증거합니다.
(6-7)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성경에서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 그 사건의 주역이 되는 사람의 나이를 밝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날 때의 나이가 75살이었다고 밝히고 있고, 모세가 출애굽을 위해 부르심을 받을 때가 80살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30세쯤 되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홍수가 시작될 때 노아의 나이를 밝힘으로 그 사건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며, 아담과 하와 이후에 형편없이 살았던 사람들의 죄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노아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노아의 순종으로 출발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통로, 은혜의 채널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 삶을 무너뜨리는 걸림돌이나 웅덩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8-9)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정결한 짐승과 정결하지 않은 짐승, 새를 비롯한 기어 다니는 것들이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동물을 방주 앞까지 나아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할이었고, 그 동물들을 방주 안으로 들이는 것은 노아의 역할이었습니다. 방주가 3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아는 어떤 동물을 방주 안 어느 공간에 넣을 것인지를 미리 구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을 바르게 구분하고, 사람의 역할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10-11)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날은 600년 2월 10일이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은 600년 2월 17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둘째 날에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는데, 그 궁창 위의 물이 쏟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600년 2월 17일에 시작된 비는 밤낮으로 40일 동안이나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1년 평균 강수량이 약 1,200mm 정도 됩니다. 만약 비가 시간당 20mm 정도 내리면, 우산이나 우비를 써도 소용이 없는 정도입니다. 만약 시간당 40mm 이상이 되면, 물통으로 퍼붓는 느낌이고, 자동차의 와이퍼를 아무리 빨리 작동시켜도 앞을 잘 볼 수 없는 정도입니다. 서울 시내에 시간당 100mm로 6-7시간 비가 퍼부으면 서울 시내는 거의 물바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양의 비가 40일 동안 밤낮으로 쏟아졌습니다.
심판의 과정(13-24절)
13-24절은 홍수 심판의 과정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3-15)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노아의 가족과 각종 동물은 이미 방주로 들어갔음에도 또 ‘들어갔다’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들어가 있는 상태를 강조하는 표현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방주의 문을 닫은 것은 노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열어주실 때까지 사람이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방주(테바)에는 돛이 없습니다. 닻도 없습니다. 이 방주의 운행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비가 퍼붓고, 땅에 물이 점점 차올랐을 때, 방주가 있던 마을 사람들과 방주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방주로 달려가 문을 좀 열어달라고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두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도 기름이 모자랐던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문이 닫혔습니다. 기름을 다시 채워온 처녀들은 간절하게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문을 여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닫으시는 분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 그 속에서 사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큰 복입니다.
(17-19)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땅에 물이 많아질수록 방주는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17절, 18절, 19절이 마치 원급, 비교급, 최상급 문장 같습니다.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방주는 떠다녔으며’, ‘물이 더욱 넘치매 산들이 잠겼다’라고 증거합니다.
물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집의 높은 곳으로 올랐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언덕 위로 올라갔을 것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아예 산으로 올라간 사람도 있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산처럼 보이는 물질, 명예, 권력, 세속적 가치관 등은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기 시작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20-24)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비는 40일 동안 퍼부었고, 그 물은 150일 동안 땅에 넘쳤습니다. 그래서 모든 산까지 잠겼습니다. 그런데 방주는 가장 높은 산보다 불과 15규빗(6.84m) 위에 있습니다. 그 정도 높이면 아파트 3층 정도입니다. 그 15규빗은 생명과 죽음의 차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방주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인류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므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은혜가 펼쳐지게 하십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만들 때,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노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므로, 생명을 살리는 통로, 하나님의 은혜의 연결고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노아는 방주를 짓는 일과 그 안에서 살게 된 동물들의 먹이를 준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준행했던 일은 무엇이었었습니까? 그때 어떤 유익이나 성숙이 있었습니까?
2.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그의 가족이 모두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구원이나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3. 방주에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이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서 그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놓으셨을 때, 당신이 들어간 일과 그 안에서 누린 은혜는 무엇이었습니까?
4.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구원에 통로가 되었듯이, 당신이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며, 은혜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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