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23:1-20

 창세기 23:1-20 


찬송가 481장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죽어서도 메시지를 남기는 인생(1-2)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사라가 127세를 향유하고 죽습니다.

(1-2)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여인들 중, 사라를 제외하고는 몇 살에 사망했는지 기록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창세기 기자가 열국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라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쏟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라가 죽은 곳은 가나안 땅 헤브론, 기럇아르바라 이름하는 성읍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 부분을 “사라가 기럇아르바에서, 곧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다”입니다. 창세기 기자가 사라가 죽은 곳을 두 번이나 기록하여 강조하는 까닭은 당시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타지 생활을 하더라도 죽을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니 죽게 되면 그 장례를 위해 원래 떠나왔던 고향, 조상들이 머물렀던 땅으로 돌아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라가 어떤 원인으로 사망했는지 모릅니다. 급사였는지,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꺼져갔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라면 사라의 장례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떠나왔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동작이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기자는 사라가 고향도, 애굽도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 가나안, 그것도 헤브론에서 죽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헤브론이 어떤 곳입니까? 일찍이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돌아온 후, 소돔을 택하여 동쪽으로 옮겨갔던 롯과 헤어지면서 터를 잡았던 곳이 헤브론이었습니다(창13:18). 나그네로 오신 하나님을 부지 중에 대접하다가 이삭의 탄생 예고를 들었던 곳도 헤브론이었습니다(창18:10).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진하게 경험했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고향에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헤브론에 마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신앙 행위입니다. 그랄에서도 살았고, 브엘세바에서도 오랜 기간 머물렀던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을 때 헤브론에 머물렀던 것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의 실현을 가시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습니다.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를 확보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노력이 기록된 창세기 23장이 중요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평소에 매장지를 구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현대 사회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었던 씨족 중심, 부족 중심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던 고대에서는 외지인이 그 지역의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고대에는 경작지가 매우 중요해서, 일반적으로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경작지를 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매장지로 쓰려고 한다고 그 지역의 유력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외쳐봐야 팔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아브라함만 헛물을 켜게 되고 그 지역에서 실없는 사람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사라의 죽음을 계기로, 누가 보아도 아브라함에게 한 뼘에 지나지 않는 땅이지만 매장지가 필요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나에게 매장지가 필요하니 팔아달라고 간절하게 요구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입니다. 사라의 죽음과 이어지는 매장지의 매입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라의 죽음은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라는 이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 약속을 한 걸음 앞으로 진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살아서 이삭을 낳았고, 죽어서 매장지를 구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 것이 정해진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 땅 가운데서 어떻게 하루를 살고, 그 마지막 숨을 내어쉬면서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는 저마다의 선택에 달린 일입니다. 우리가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귀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소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헷 족속과 매장지를 거래하다(3-20)

(3-4)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은“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입니다. 쉽게 풀면 “외국인이요 일시적 체류자”, “거주지는 일정하지만 개인 소유의 땅은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낮춰 겸양의 표현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 말대로 땅 한 뼘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을 걸었던 헷 족속은 히타이트 제국을 건립한 헷 족속과는 다른 민족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남부 산지에 거주하면서 셈 족 계열의 이름을 쓰고, 셈 족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으며 헤브론 지역의 토착민들로서 이 일대에 상당한 땅을 소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셈 족이었던 아브라함과도 통역 없이 대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6절은 매장지를 팔라는 아브라함의 요청에 대한 헷 족속 전체의 답입니다.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내 주”라고 부릅니다. 상대를 높여 예의를 갖추어 표현할 때 이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대체로 유력자나 왕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호칭이었습니다. 헷 족속이 이 호칭을 아브라함에게 사용했던 것만 보아도, 이어지는 말대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받는 것만 보아도, 아브라함이 헤브론 지역에서 살면서 그들에게 끼쳤던 영향력이 꽤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보았던 아브라함의 일상이 매우 존경받을 만한 견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헷 족속 전체가 개인 자격의 아브라함을 상대해줄 리 만무합니다.
성도는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회 안에서 건강한 소통 능력과 실력을 가지고 이 시민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며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외식해서도 안되겠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개를 젓게 만드는 언행으로 점철된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삶을 살아서도 안되겠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자신들이 가진 묘실 중에 좋은 곳을 골라 사라를 장사하라고 권합니다. 말이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매장할 소유지를 달라고, 곧 팔라고 요청했는데 헷 족속은 아브라함의 요청을 살짝 비틀어 매장지를 파는 대신 어떤 묘실의 일부를 내어줄 테니 사라를 장사하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요구조건을 제시합니다.

(7-9)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아브라함이 헷 족속을 향해 몸을 굽히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앞선 담화에서 아브라함의 말을 듣는 대상이 헷 족속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땅 주민 헷 족속”입니다. 이는 헤브론에 살고 있는 헷 족속 가운데서도 유력한 사람들, 곧 토지를 소유하여 그 지역의 정치적 결정을 유연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이들에게 다가가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충분한 대가를 주고 사겠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방인을 소개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소할이라는 사람이 헤브론 일대에서 꽤 영향력을 가졌던 대단했던 인물이며, 그 아들 에브론 또한 그에 버금가는 아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에브론을 먼저 찾아간 것이 아니라 헷 족속 모두에게, 이어서 그 지역을 좌우할 수 있는 유력한 사람들에게 거듭 요청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막벨라 굴을 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때 에브론이 등장합니다.

(10-11)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에브론은 헷 족속의 지도자들의 중재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서 답변하기 시작합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나서서 직접 말할 만큼 유력한 사람이었음이 잘 드러납니다. 에브론이 밭과 굴을 드린다는 표현이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선물로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팔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은 400세겔이라는 구체적인 액수를 에브론이 뒤에 먼저 선언한 것에서 팔기 위한 제스처였다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15-18)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은 400세겔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성경에 기록된 토지 매매 기록과 비교해보아도 상당히 비싼 값을 치르고 매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무려 성전을 짓기 위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50세겔에 매입한 기록이 있고(삼하24:24), 예레미야도 예루살렘 밖 한 필지의 땅을 17세겔에 매입했습니다(렘32:9). 예레미야 때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상황이라 평소 거래가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으로 거래되었겠지만 사라의 죽음으로 매장지가 꼭 필요했기도 하고, 나그네요 거류민에 불과했던 아브라함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매장지를 사야 했던 것입니다.

(19-20)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꼭 사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 소유를 많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소망하며, 끝까지 가지고 가야할 것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막벨라굴이 그러했고, 마태복음 13장의 진주 장사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진주가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이 무척이나 소중한 신앙인은 어떤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삶을 경주하기 마련입니다. 눈을 들어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사람, 자신을 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어야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 없이, 그저 이 땅에서의 안위만을 위해 내 소유의 많음을 위해 살아간다면 스스로의 신앙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마10:38)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막벨라 굴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새롭게 마련해야 할 땅과 결별해야 할 조상의 땅은 어디입니까? 또 죽음 앞에서 우리가 후손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소망의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는 오늘의 본문을 깊이 묵상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더욱더 가까워지시는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 주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우리의 하루하루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실현해나가기를 원합니다. 아내의 매장지를 구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첫걸음으로 막벨라굴을 구입했던 아브라함의 노정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나로부터 시작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성취를 위해 온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는 오늘이 되게 해주시고,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존재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그 이전에 헤브론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2. 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례를 가나안 땅에서 치르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했을까요?
3.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과 인근 토지를 400세겔을 주고 매입합니다. 몇가지 사례와 비교해서 아브라함이 치른 값이 비싼지 싼지 판단해보세요.
4.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산 것의 함의를 정의해보고, 이를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써보세요.

'새벽기도 > 창세기(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24:28-49  (0) 2022.10.05
창세기 24:1-27  (0) 2022.10.05
창세기 22:1-24  (0) 2022.10.05
창세기 21:22-34  (0) 2022.10.05
창세기 21장 8-21절  (0)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