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4:28-49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종이 있었지만, 특별히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맡긴 한 늙은 종이 있었습니다. 이 종은 아브라함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그의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한 긴 여행 떠나 나홀의 성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던 중, 그곳의 한 여인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 종이 어떻게 리브가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는지와 종이 그녀의 가족에게 자신이 어떤 이유와 어떤 과정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24장에서는 아브라함도 등장하고, 이삭도 등장하며, 리브가와 그의 가족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의 인물은 바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종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생각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라고도 추측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종의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삼는 과정에서 이 종은 결코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러하듯이, 24장의 주인공은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먹지 이니하겠나이다(28-33절)
28~33절은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의 집에 찾아가는 과정을 증거합니다.
(28)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여기서 소녀는 분명 리브가를 가리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과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여기서 ‘달려가다’의 동일한 단어가 앞에 등장했었습니다. 바로 리브가가 늙은 종의 모든 낙타를 위해 물을 길으려고 우물로 내려갈 때입니다. 이 발걸음은 모두 동일한 마음에서 나온 달려감이었습니다. 종이 리브가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했을 때, 리브가는 먼 타지에서 오느라 지치고 곤한 나그네와 그의 낙타들에게 물을 대접하기 위해 우물로 달려갔고, 이 나그네가 '너의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라고 물어봤을 때, 지친 나그네를 집으로 모시기 위해 리브가는 어머니의 집에 달려갔습니다.
이 종은 분명 리브가에게 '아버지의 집에 유숙할 곳이 있느냐'라고 물어봤는데 리브가가 '어머니의 집'에 알렸다는 것으로 보아, 리브가의 아버지가 병상에 있거나 아니면 은퇴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말을 들은 그의 오라버니 라반이 그 집안의 가장으로서 우물가에 있는 아브라함의 종을 만나기 위해 달려갑니다.
(29-31)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그 때에 그가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더라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리브가가 어머니의 집에 달려갔던 것처럼, 그녀의 오라버니 라반은 우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라반이 달려가는 이유는 리브가가 달려간 이유와는 달랐습니다. 라반은 리브가가 나그네에게 받은 코걸이와 손목고리에 주목했습니다. 앞절에서 증거하기를 이것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가 우물에 내려가 나그네와 나그네의 낙타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수고는 했지만, 그 수고에 비해 너무나 과한 선물이었습니다. 상당히 부유한 나그네가 자신의 집에 머물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라반은 우물에 있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라반의 물질에 대한 욕심이 추후 리브가의 아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7년이 아닌 14년을 머물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빵의 논리'에 빠져들어가고,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게 된다(딤후 3:1-2)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는지 돌아보십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목적 삼아 연약한 이웃,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섬기는 일에 달려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32-33)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의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리브가의 집에 도착한 아브라함의 종은 큰 환대를 받습니다. 그의 앞에는 그동안 긴 여행으로 인해 쌓인 발의 먼지를 씻을 물과 지친 몸을 보충할 맛있는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을 말하기 전에는 이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 행위는 결코 작은 결단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고, 그 후에 말해도 됩니다. 하루 밤 푹 자고 다음날 말해도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이 받는 환대를 누리는 것보다, 긴 여행으로 인해 지친 몸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과 했던 맹세였으며,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우선해야 할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지켜주시고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것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34-41절)
34~49절까지는 아브라함의 종이 라반에게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을 증거합니다.
(34)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먼저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을 아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자신을 높여 소개할 많은 미사여구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신뢰를 받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소개할 모든 미사여구는 생략합니다. 그것이 종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의 서두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사이에 '나는 전도여행을 몇 번 했으며, 그 여행의 길이는 어느 정도였고, 얼마나 많은 교회를 개척했다'라는 등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소개 앞에 미사여구를 생략함으로 주인의 뜻을 이루는 '종'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35~36)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이 창성하게 된 것이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종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는지 그 옆에서 지켜본 산 증인 이기도 합니다. 결코 아브라함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노년에 낳은 아들이 있는데 그가 유일한 상속자임을 소개합니다.
종은 자연스럽게 이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노년에 낳은 아들이기에 이삭이 아직 젊다는 것과 유일한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즉, 이런 사람 세상 어디 내놓아도 1등 신랑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이삭이 결혼을 못했으며, 아내를 구하러 먼 타지까지 온 것입니까? 그 이유를 37~38절에 설명합니다.
(37~38) 나의 주인이 나에게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내가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은 주인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닌,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했고 이삭의 아내를 택하기 위해 주변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가나안 족속의 딸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족속을 찾아 먼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종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가진 불안함을 말했을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확신을 주었는지를 설명합니다.
(39~40) 내가 내 주인에게 여쭈되 혹 여자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어찌하리이까 한즉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종은 이삭의 아내를 아브라함의 족속에서 택하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종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평안한 길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였기에 발걸음을 뗄 수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될 것이며,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편탄하게 인도하시며, 일하실 것을 아브라함은 신뢰했고, 그 종도 신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종을 보낸 아브라함, 그리고 앞길을 인도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길을 떠난 종 모두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사(42-49절)
42~49절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어떻게 리브가를 만났는지를 설명하며, 리브가의 가족의 선택을 요청합니다.
(42-44) 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이 어떻게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소개합니다. 눈에 보기에는 먼 여행을 한 늙은 나그네와 그 나그네에게 선한 마음으로 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그네의 낙타를 위해서 물을 준 한 처녀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이었고 하나님의 일하심 이었음을 눈을 들어 바라볼 것을 요청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자신과 낙타들에게 우물의 물을 제공한 리브가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의 족속, 즉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의 손녀딸이었음을 확인하게 된 순간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47-48)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쉽게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성실하게 이루어 가시는데, 그것을 종에 불과한 자신을 통해 이루어가고 계심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하셨음을 고백합니다. '바른 길'은 문자적으로 '신실한 길, 진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신실한 길' 위에 서 있을 때 우리의 머리는 숙여지고, 주님을 향한 경배와 찬송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함께 이 길 위에 설 것을 권면합니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인자함과 진실함'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때 함께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종은 우리에게 인자와 진실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길에 함께 걸어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세속적인 가치관을 향해 눈을 들어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바른길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들어 지금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신실하신 길 위에 서 있음을 날마다 확인하십시다. 그럴 때 우리도 주님의 신실한 종, 세상 사람들을 살리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생명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는 것을 목도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눈을 들어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하기 위해 달려간 리브가처럼,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을 말하지 않고서는 결코 먹지 않겠다고 결연한 충성된 종처럼, 주님의 일하심에 통로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신실한 길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하며 주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리브가의 ‘달려감’ 라반의 ‘달려감’의 차이는 무엇이며, 나는 오늘 어떤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나요?
2. 늙은 종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했으며, 그러나 나는 어떤 미사여구로 나를 포장하고 있나요?
3. 늙은 종이 설명하는 내용이 앞서 모두 소개된 내용임에도 성경에서 왜 반복해서 소개하고 있는지 묵상해 보세요.
4. 하나님의 ‘신실한 길’위에 서 있음을 묵도하기 위해 오늘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지 묵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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