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21-38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수세(收洗)(21-22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과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1-22절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부터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예수님과 요한이 직접 만나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이후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질문하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요한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실에 대해서는 4복음서가 모두 증거합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공관복음, 즉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른 두 복음서(마태, 마가)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본문에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지만, 누가복음에는 요한의 이름이 없습니다.
누가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번갈아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1-2장에서는 요한의 출생 예고와 예수님의 탄생 예고, 요한의 출생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3장 1-20절까지는 요한의 사역을 21절부터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더 이상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을 번갈아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기록한 것은 얼마나 요한이 대단한 인물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예수님의 길을 잘 준비했는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그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19-20절에서 요한이 옥에 갇혔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투옥되고, 순교한 것은 훨씬 후의 이야기지만, 그것을 먼저 기록한 것은 그의 사역이 여기까지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부터는 이 복음서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오직 그분만이 드러나야 하고, 우리의 시선을 그분에게만 집중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 누가 드러나고 있는지를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드러나는지, 예수 그리스도, 주님께서 드러나시는지 말입니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을 공관복음이 구체적으로 전하지만, 누가복음이 다른 두 복음과 다른 점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표현이 없는 것과 더불어 다른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늘이 열렸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셨음은 누가복음만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이 기도와 성령의 복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무슨 내용의 기도를 드리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예수님의 기도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설교하고,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 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은 비록 돌에 맞아 죽을지라도, 주님께서 자신을 받아 주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늘이 열리는 경험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 수 없는 평안으로 하늘을 열어주시기도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는 듯한 확신을 주시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꿈을 통해서, 주위 사람을 통해서 열어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을 열어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며 기도하실 때에 성령님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 즉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응답받는 체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하심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그에게 약속하신 것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b)”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며 기도하실 때에 성령님의 강림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증명해 주셨습니다.
왕조시대에 아무리 높은 관직에 오른다고 할지라도, 왕의 아들로, 왕의 딸로 태어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부가 완전히 대물림된다면, 재벌 회사에 입사해서 많은 봉급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부에 관한 한, 재벌의 자녀가 되는 것만 못합니다.
(마 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아들’입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수가 없고,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는 언제나 좋은 것을 줍니다. 그러나 이웃집에 사는 아이는 안됩니다. 그 아이가 아무리 잘 생겨도 안 되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그것이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족보(族譜)(23-38절)
23-38절은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도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는 모두 예수님에 관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좀 다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게까지 내려오지만, 본문의 족보는 예수님에게서부터 아담에게까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있는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빌론에 포로가 될 때까지 14대, 바빌론 포로에서부터 예수님까지 14대씩 나뉘어 있습니다. 그 14대씩 맞추기 위해서 중간에 뺀 사람들도 있고, 마지막 14대는 13대밖에 되지 않음에도 14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10대씩도 아니고, 15대씩도 아닌, 왜 하필이면 14대씩 나누었겠습니까?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전하기 위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이 우리말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하여 아브라함의 이름이 먼저 나오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다윗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원래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이 22개의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다윗이 D.A.V.I.D.입니다. 여기에서 모음을 빼면 DVD가 됩니다. 히브리어로는 ‘달렛(ד, Daleth), 와우(ו, Waw), 또 달렛(ד, Daleth)’이 됩니다. ‘달렛’은 히브리어 음가가 4이고, ‘와우’는 6입니다. 그래서 4+6+4=14가 되어서 다윗 이름의 음가가 14입니다. 그래서 14대씩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왕의 계보를 타고 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족보가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마태복음의 내용과 너무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사람의 수는 제외하고서라도 다윗의 아들이 마태복음에는 솔로몬으로 나와 있는데-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본문에는 나단(Nathan)으로 나와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할아버지(즉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Jacob)인 반면에 본문은 헬리(Heli)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두 족보가 한 사람의 족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아주 다릅니다. 이 두 족보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 성경의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그중에서 그래도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설명은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를,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요셉이 무남독녀인 마리아와 결혼하여 헬리의 데릴사위가 됨으로써 헬리의 법정 상속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윗의 후손인 야곱이 아들이 없자, 남동생 헬리가 낳은 아들을, 야곱이 자기 아들로 입양했다는 것입니다.
(23a)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이었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유월절을 지키신 것이 1번 밖에 없지만, 요한복음에는 최소한 3번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이 이바지한 가장 큰 공로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의 나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복음서를 근거로 예수님께서 30세부터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결혼하는 나이가 늦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는 것이 좀 이른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레위인들이 30세가 되면 정식 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 25세부터 5년 동안 다른 제사장 아래에서 수습 생활을 하다가 30세가 되면 정식 제사장이 되어 50세가 될 때까지 임무를 감당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에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다가 헤브론에서 왕이 된 것도 30세였습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은 당시에 가장 적절한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30세는 지금의 40대 정도가 될 것입니다. 혹시 이 나이 때 전후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때는 인생에서 일터에서와 가정에서 가장 바쁜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삶이 피곤할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이유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또 아직 젊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더욱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 하고, 주님께 엎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바쁘고 피곤할 때에 주님 앞에 나와서 엎드릴 수 있어야지 만이 나중에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복된 기간입니다.
(23b)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당시 사람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알았습니다. 또 목수의 아들이자 목수로만 알았습니다. 그것이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앎은 지극히 부분적이었고,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누구신지를 바르게 아는데 방했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내가 그 사람을 잘 아는데...”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 사람을 실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아담에서 끝나지 않고,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에게까지 소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탄생하셨을 때,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 살피게 될, 마귀가 예수님께 시비를 걸 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눅 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눅 4:9)”
마귀는 인간 예수에게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인간 아담을 넘어지게 함으로써 모든 인류에게 죄를 안겨주었던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마저 무너뜨리면 온 인류를 영원히 죄로 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지금 우리에게까지 내려오게 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구세주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기에 걸맞게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부인을 통해서 섬김의 길을 걷는 복된 삶을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셔야 하는 분이 아니라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시지만, 기도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라옵나니 나사렛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인생의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목수로만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자행했습니다.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평생 주님을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알아가는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19 퇴치와 경제와 삶, 관계의 회복에도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이 임하시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당신의 믿음 생활 중이 이런 은총을 체험한 것은 언제이었습니까?
2. 예수님은 공생에를 30세쯤에 시작하셨습니다. 당신이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할 때는 언제이었습니까?
3.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만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과거에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지금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4.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무릎을 꿇는 믿음 생활과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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