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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11:27-36

 누가복음 11:27-36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



복이 있는 자(27-28절)
오늘 본문은 3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와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에 대해서, 몸의 등불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7-28절이 진정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을 하실 때에’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14-26절의 ‘바알세불 논쟁’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귀신이 들려서 말을 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건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힘입어 그 일을 하는 것이냐고 되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정문일침을 가하는 말씀에 감격한 한 여인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이 여인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대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까지 보았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어머니를 축복하는 것을 통해서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 자녀들은 그 어머니의 돌봄과 헌신이 없이는 바르게 자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메시아를 낳고 기른, 복이 있는 사람, 복의 사람의 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철저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간 결과로 그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통해서 남편을 통하지 않고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서 사는 동안 내내 사람들로부터 “글쎄, 남편도 없이 아기를 낳았데?”라는 말을 들어야 했을 것이고, 경멸의 눈초리, 곱지 않은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성령님을 통한 잉태를 수용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평생 고난의 터널과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갈 것에 대한 결단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헤롯대왕의 ‘아기들을 찾아 죽이라’는 명령을 피하여,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거기서 헤롯대왕이 죽을 때까지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었을 때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성전으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다시 성전으로 되돌아가 아들을 찾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말씀을 간직하고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또 예수님의 공생애 중 첫 표적이었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도, 마리아는 철저하게 아들이자, 주님인 예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잔치에서 흥을 돋게 하는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그 곁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에서, 아들 예수님의 제자, 아니 구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까지 고통을 깊이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 그 말씀에 자신의 온 생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복을 받은 사람, 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여인의 감격스러운 고백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도 마리아처럼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 복의 사람의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악한 세력과 세속적 가치관이 염탐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의 믿음을 채울 때, 우리는 날이 갈수록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악한 세대가 구한 표적(29-32절)
29-32절은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시던 때를 ‘악한 세대’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21세기를 살고 계신다면, 이 시대를 무엇이라고 정의하시겠습니까?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쾌락이 최상의 가치관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대한민국 한복판에 서신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그뿐만 아니라 신문의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 교육면, 문화면 등을 보시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무엇보다도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보시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이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시대’라고 규정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시를 ‘악한 세대’라고 규정하셨던 것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가창력이 좋은 가수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당신 노래 한번 해보시오.”라고 하면, 그 가수는 노래는커녕 몹시 언짢아할 것입니다. 그 가수가 백번 양보해서 노래했고, 아주 잘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한 곡 더 해보시오.”라고 말한다면, 더 나아가 잘 못 부르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요구하거나,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부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수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그 가수는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표적을 요구했던 것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요나 선지자가 3일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과 같이 당신께서도 3일 동안 무덤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30-32)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했고, 남방의 여왕은 솔로몬의 말을 듣고 그 지혜에 머리를 숙이고 돌아갔는데, 요나 선지자를 거기로 보내고, 솔로몬에게 지혜를 준 성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 선지자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3일의 물고기 배 속과 3일의 무덤 속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요나 선지자에게는 소명, 즉 니느웨 사람들에게 들려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3일 만에 나온 것이 표적이 아니라, 바로 요나 자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아무리 잔혹한 사람들도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단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신 사건 자체만 표적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 표적이 되셨는데,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 세속적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습니다. 또 표적을 구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고, 하나님의 지혜보다 자신의 지혜를 더 의존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33-36절)
33-36절은 눈을 등불에 비유하여 진리인 복음을 밝히 볼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고대에는 불을 켜는 도구가 아주 귀했습니다. 부싯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나무를 서로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켠 불을 유지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고, 불을 꺼뜨리는 것을 수치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도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씨를 최소한으로 하여 밀실 안이나, 됫박 속에 두곤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불을 켜서 어쩔 수 없을 때 밀실이나 됫박 속에 두기도 하지만, 그것이 불을 켜는 목적이 아니라 켠 불은 등잔대 위에 두어서 집을 들어오는 사람이 그 불빛의 도움을 받아서 생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우리 신체 중에서 ‘눈’을 강조합니다. 우리 속담에 눈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눈’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진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르면 인생이 밝을 것이고, 나쁘면 인생이 어두움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히 ‘성하다’는 ‘좋은’, ‘분명한’, ‘순전한’ 등의 뜻이 있는데, 본래 항해할 때 쓰던 용어였습니다. ‘한 목적지’, ‘한 방향’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향해 ‘한 목적지’, ‘한 방향’을 가지면, 날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35-36)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평생 말씀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실재이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애써 부인하고,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초점을 맞추며 보기를 원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실상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전통과 자신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며 살겠다고 고백하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혹시 우리의 삶은 어둡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주님의 빛으로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한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복되도다”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진정한 복의 사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표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의 삶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표적, 하나님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빛이 되게 하셔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인정함으로, 우리의 삶이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 누리게 된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2. 사람들의 본성은 주님께 늘 표적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표적이 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졌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로 어떤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십니까?
3. 예수님께서는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가장 밝은 곳은 어디입니까? 반대로 가장 어두운 곳은 어디입니까? 그 어두운 곳을 어떻게 밝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4. 삶 속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므로, 자신의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꾸어 가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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