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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12:13-34

누가복음 12:13-34
찬송가 478장 '참 아름다워라'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서만 기록된 짧은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이 본문은 짧지만 현재의 우리 삶과 밀착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수많은 무리 가운데 계속해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께 나와 요청을 하였습니다.

탐심을 물리치라(13~15)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 사람은 무리 중에 한 사람으로, 신분이 특정되지 않은 수많은 무리 중에 보통의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히브리어로 ‘랍비’, 선샌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이 사람이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자기 형과의 재산 분쟁을 중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형’이라고 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형제를 의미하는 단어가 쓰이고 있으므로, 동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형제 중 한 사람이 독차지 하려고 했고, 그 나머지 사람이 율법에 따라 공정하게 나누길 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재산의 상속과 같은 부의 분배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하며 재산 분쟁을 해결해 주시길 요청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 간에 재산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합니다. 그 중에서도 상속의 문제는 사회의 고유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18세기의 가장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상속에 대해 규정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상속은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상속을 통해 노력 없이 누군가는 사회에서 기득권을 얻고, 누군가는 소외되기 때문입니다. 소위 금수저, 어둠의 자식 등의 신조어들로 대표되는 ‘신계급사회’도 이러한 상속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무리 중 한 사람의 한마디 말로 표현됩니다.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이 사람의 이 말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누군가는 처음부터 많이 가지고, 누군가는 없이 시작해야 합니까.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만큼 우리도 공평하게 가지기 원합니다.’

이렇듯 이 사건이 내포한 문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우리의 문제입니다. 예수님 또한 이 사건을 특정한 한 사람의 문제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질적인 영역으로 이 문제를 끌고 들어가십니다.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율법에 따라 공정하게 유산을 분배하게 하므로 이 사건을 해결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탐심’을 지목하여 고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탐심에 대하여 34절까지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특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재산을 더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며, 더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을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마땅한 자신의 몫을 주장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노동법과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못 받은 임금을 받게 해주고, 복직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근무환경을 개선해 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불편함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권리와 재산은 지켜낼수 있었어도, 그 사람의 삶은 이해타산으로 내몰린 관계와 정의감으로 정당화된 분노와 적개심, 용서하지 못함으로 척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권리, 이익, 이해관계에 민감해져 있습니다. 어느 만큼을 어떻게 누가 갖느냐,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 저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의 문제는, 사회와 정치권에서 늘 골몰하는 것들입니다. 만약 그러한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간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예수께서는 재판장과 물건 나누는 자의 직업을 비판할 의도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개인의 재산과 이익과 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 이면에서 도사리고 있는 탐심을 지목하여 고발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당시 문제되고 있던 이혼에 대해 물었을 때도, 예수님은 그 이면에 있는 ‘마음의 완악함’을 지목하여 고발하신 것과 같습니다(마19:8).

예수님은 계속해서 한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을 풀어나가십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라(16~21)

(16-17)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이 부자는 많은 재산을 미래를 위해서 축적하려고 큰 곳간을 지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작은 곳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탐심을 가지진 않습니다. 탐심은 늘 그 이면에서 기회를 노리고 도사리고 있습니다.

소출이 많아 지는 과정에서도 그는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밭에서 소출이 많았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 곡식의 소출이 많아졌을 때 발생했습니다. 우리 내면에서 탐심은 늘 기회를 틈타기 위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얻었을 때,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때, 원하는 무엇을 이루었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 보일 때, 탐심은 그 기회를 포착해서 우리의 마음을 집어 삼킵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도 서로 경쟁하며,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야 하는 불확실한 환경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재산으로 도태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며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부요해 지기 위해 무언가를 소유하고, 인정받고, 성취하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하여 빈곤에 빠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삼가 물리치라고 하신 탐심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탐심은 자신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의존하는 것입니다. 재산, 인정,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 탐심의 문제는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22-30)

(22-23)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가진 것이 적은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말씀과 같이 가진 것이 적음으로 인해 생존을 불안해한다면, 이것도 탐심입니다. 그가 생명을 소유에 의존하고 있음이, 불안과 염려를 통해 실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생명, 목숨, 영혼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들은 원어는 다르지만, 모두 영적인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영적인 생명은 소유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들은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부요하게도 빈곤하게도 하지 못합니다.

다만, 탐심은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빈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안에 늘 내재하고 있는 탐심은, 생활의 염려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실천적인 물질주의자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며,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29-30)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생명을 소유와 재산에 의지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것을 얻는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이렇듯 탐심은 하나님과 관계를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킵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될 때, 이 관계는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라, 우상숭배적 관계가 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탐심이며, 에베소서(엡5:5)와 골로세서(골3:5)에서는 탐심을 곧 우상숭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탐심을 지목하여 고발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고 쫓아야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31-34)

(31-32)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께서는 탐심을 물리치기 위해, ‘내려놓음’ ‘비움’과 같은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을 제시하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바라고 구하는 대상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소유를 구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으로 그 대상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내려놓거나 비운다고 탐심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갈망하지도 않는 ‘무념무상’의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나 무념무상 혹은 금욕주의로 탐심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방법은 자기에게 더 집중하게 하고, 자기가 무엇이 됨을 마음의 주요 관심사로 등극하게 만들어 버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탐심은 마음 비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물리쳐 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언가를 사랑하고 갈망하고 기뻐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사랑하고 갈망하며 기뻐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소유나 재물은 자기를 높이는 탐심을 이룹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할 때는 소유와 재물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마6:33).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삶의 현실적인 필요가 어떠한 원리로 더해지는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33-3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가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서로를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현실적인 필요가 더해지는 원리입니다. 타인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의 문맥적인 의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줄 때, 가난한 자들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4:33-35). 가난한 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율법이 완전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법이므로, 율법이 완전해 지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누가복음 18장 29에서 30절에서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으로 그 형제의 재산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셨지만, 다른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복음의 방법입니다. 복음은 율법을 완전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자기와 자기 소유를 사용할 때, 우리는 모두 다 같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생존에 대한 불안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그것을 위해 사는 자는 현세에 있어서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요행이 아니라, 이웃과 교회의 형제자매를 통해 사랑의 실천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심으로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삶이 불안할 때 하나님 보다는 물질을 더 의지하며, 하나님을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의 재물과 권리가 나의 생명과 영혼을 지켜주지도 못하는데, 그것들을 위해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도 합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죄인이다는 사실과 탐심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실을 잊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나의 재산과 권리를 나 자신만의 전유물로 사용하지 않고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사랑의 실천임을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로 자녀가 받는 사랑과 안위와 풍성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때닫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사는 부요한 자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께서 무리중 한 사람의 요청을 들어주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묵상합시다.

2. 예수께서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묵상해봅시다.

3. 탐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빈곤하게 할 뿐만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우상숭배의 관계로 전락시킬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묵상합시다.

4. 탐심을 물리치는 것은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그렇다면 탐심을 물리치는 것이 무엇인지 대답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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