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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12:35-48

 누가복음 12:35-48
찬송: 328장 “너 주의 사람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35~40)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잠자며 보내고, 그 다음은 기다리며 보낸다고 합니다. 실로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고, 약속 시간에는 친구를 기다리고, 출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기다립니다. 원하던 학교나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하나님이 자녀를 허락하시기를 기다리고, 병상의 자리에서 속히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 기다림 들 중에서 주님을 기다림이 가장 버거운 것은 만날 시간을 알지 못하는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기약이 없이 찾아오는 만남일수록 반갑고 기쁘지만, 때를 알지 못하는 기다림이기에 어떻게 준비할지 몰라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우리의 기다림이 의미 없지 않음을 일깨워주며,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게 합니다.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켠다는 것은 준비됨과 깨어있음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유대인들의 옷은 길고 통이 넓어 활발한 활동을 할 때에는 허리에 띠를 매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신속한 자세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하는 각오이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제자 된 우리는 혼인잔치로부터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하인입니다. 본문의 동사 ‘띠고, 켜고, 서있으라’는 모두 현재형으로, 즉각적인 형태이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말합니다.

당시 혼인잔치는 밤에 열렸기에, 혼인잔치를 마친 후 늦은 밤이 되어, 주인이 집에 도착할 때 문을 열어주는 종이 된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주인의 음성과 문 두드림을 듣고 즉각 일어나 허리를 동여매고 등불을 준비하여 주인을 맞이한 종의 자세와 태도를 보면, 그 종이 주인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인을 기다린 종과 같은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렇게 깨어있는 종에게 주인의 칭찬이 들립니다.
(37-38)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주인이 보기에 자신을 기다리느라 잠을 이겨가며 기다린 종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대견하겠습니까? 그래서 주인은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일들을 합니다. 그것은 주인이 기다린 종을 위해 수종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것은 주종 관계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충격적인 행동입니다. 주인이 이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사명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임을 알고 모든 삶과 생각을 집중한 종에게 최고의 보상을 주기 위함입니다. 주인은 단순히 종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종의 존재 자체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주인입니까?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이처럼 세상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분이시며,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요13:13-15)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주인을 기다리는 종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을 두드리는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스러움과 동시에, 우리의 재산을 탐하는 도둑을 방지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인과 도둑은 찾아오는 시간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주인도, 도둑도 집안사람이 가장 느슨해지기 쉬운 밤 2경 혹은 3경에 올 것입니다. 깊은 수면의 시간, 모두가 캄캄한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순간, 가장 깨어있기 힘든 고됨의 시간에 주인도, 도둑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과 도둑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은 출입문을 두드리는 사람이지만, 도둑은 뚫고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39-40)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도둑은 훔치는 자이며, 불시에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당시 집의 흙 벽에 구멍을 뚫고 침입했습니다. 주인의 안일함은 도둑에게 활동하기에 최적의 상황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사람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출입문을 주인이 두드리진 않는지, 벽을 뚫고 도둑이 침입하진 않는지 늘 겸비하고 돌아보며, 동이 터올 때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의무를 늘 인지하고 자각하며, 지속적으로 자기의 사명에 대한 성찰을 하는 사람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41~48)
본문 41절부터는 베드로의 질문으로 지도자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41-42)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님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청지기 ‘오이코노모스’는 주인을 대신하여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는 직무의 종을 의미합니다. 주인의 모든 소유를 총괄하여 맡는 종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지혜’와 ‘진실(충성)’입니다. 지혜는 주인이 원하는 목적과 뜻을 잘 분별하는 것이고, 진실(충성)은 주인의 목적과 뜻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지혜와 진실이 있는 종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양식은 때를 따라 주인의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소속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나눠줄 수 있는 공의로운 능력이 청지기, ‘오이코노모스’에게 필요합니다. 그에게 반드시 합당한 보상이 있습니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얼마나 어려운지 주님께서는 그런 청지기가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며 청지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없는 동안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주인의 사람들을 챙기고 다스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인의 부재중에 주인 의 권세를 이어받기에, 여러 크고 작은 유혹이 있고 다른 종들에게 시기와 질투도 받을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게 오해도 받을 것이며,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행세한다고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주인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 그는 철저한 고독 속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주인의 뜻을 받들어 섬김으로 양식을 나누는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청지기의 가장 큰 적은 ‘착각’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힘을 사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용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무거운 책임감보다 권력의 맛에 물들기 쉽습니다. 청지기가 착각에 빠지면, 주인을 대신한다는 생각이 변질되어 자신이 주인이 되어버립니다. 주인의 재산이 어느덧 나의 재산이 되어버립니다. 주인이 준 권한이건만, 나의 권력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처음부터 주인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가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귀한 것으로 여기며 다른 하인들을 단속하면서 청렴하고 결백하게 일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덧 타인에게는 강하고 엄격하게 대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으로 변질되고 타락하게 되버린 것입니다. 때리며 다스릴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실 사람으로 주인의 사람들을 나눠버렸습니다. 섬기고 나누며 사랑하라는 주인의 뜻과는 달리 자신의 직분으로 다른 이에게는 폭력을, 스스로에게는 무절제함과 방탕스러움을 허용하게 됩니다.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상황일수록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섬기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청지기 된 우리가 지혜 있고 진실하게 때에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망각한 청지기에게는 주인의 매질만 기다릴 뿐입니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우리 주님의 뜻은 십자가로 귀결됩니다. 스스로 져주고, 포기하며, 기쁨으로 약해지고, 낮아져,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는 십자가가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교역자로, 구역장, 권찰로, 교사로, 각종 봉사의 모습에서 우리가 드러내야 할 것은 십자가 정신입니다. 특히 이곳 양화진 언덕에 세워진 100주년기념교회와 우리 모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 200년을 향한 밑거름이 되기 위해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사랑하고 섬기며 희생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합니다. 맡겨주신 생명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포기와 내려놓음이 있음으로, 주어진 힘과 권세를 오직 우리의 스폿인 십자가 정신에 투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누렸던 은혜의 수준에 따른 벌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 되신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 ‘오이코노모스’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꼭 찾아올 것이며, 모두가 셈 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많은 것을 맡기신 이유는 많은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맡은 것에 두려워하며 겸손하게 행함으로, 주님의 뜻을 흐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목적 삼아야 할 스폿입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께서 맡기신 청지기의 무게감을 기억하며 다시 허리에 띠를 맵니다. 손에 등불을 켭니다. 공의가 사라지고 진리가 퇴색되는 현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먹고 마시는 것에 몰두하진 않았는지요? 주님의 사람들에게 매질을 하면서도 그것이 공의로운 것인 양 착각하지는 않았는지요? 혹 목적이 흐려졌다면 다시금 깨어 기도하게 하옵시고, 우리의 심령을 흔드는 도둑을 경계하며 오직 주님의 문 두드리심에 우리 모든 삶이 집중하며 조명되도록 힘 주옵소서. 맡겨주신 것이 많아 두려울 뿐입니다. 그러나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청렴하게 나아갑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목적과 주신 스폿이 흔들리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본문의 청지기는 주인을 기다리며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들고 서 있습니다. 왜 그런 자세와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2. 늦은 밤 도착한 주인이 자신을 기다린 종에게 주는 상은 무엇입니까?(37절)
3.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어떤 사람이며, 그가 하는 행동은 무엇입니까?42절)
4. 사명을 망각한 청지기에게 주인의 책망이 있음을 기억하며, 혹 내 삶에 사명을 잃어버리거나 느슨한 상태로 남은 것이 있다면 다시금 각성하는 고백과 기도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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