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41-47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누가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여러 가지 논쟁을 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논쟁을 했던 사람들의 침묵으로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 서 논쟁하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41-44절)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 11장 1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말씀이 성취되어 누가복음 1장 69절에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라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했던 맹인 역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은 종교지도자들과 또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다윗 자손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다윗과 같은 그리스도,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누린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게 해줄 통치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일 뿐 정치적인 그리스도가 아니었기에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정체성을 올바로 잡기 위해 시편을 인용하십니다.
(42-44)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시편 110:1에서 다윗은 ‘주’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합니다. 첫 번째 ‘주’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야훼입니다. 두 번째 ‘주’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헬라어: 퀴리오스)이며, 다윗이 오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지칭하며 분명하게 자신보다 우월하신 존재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원수를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라는 표현은 죄와 악에 대한 최후 심판을 묘사하는 것이고,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 후에 부활 승천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영광을 얻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바울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로마서 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범주에만 그리스도를 제한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아랫사람이 아니며, 단순한 인간 해방자와 왕을 뛰어 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모여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고자 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기다리고 계십니까?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다윗의 자손으로만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무엇입니까? 혹시 종교지도자들처럼 문자적인 다윗의 자손으로만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정치적인 그리스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실 분으로만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기관들을 삼가라(45-47절)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시선을 돌려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5-46)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예수님은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실 때 함께 있던 서기관들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서기관들은 직무를 행할 때 긴 옷을 입었는데, 이들은 직무중이 아닐 때도 이목을 끌고, 문안을 받기 위해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긴 옷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서기관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였습니다. 회당에서 상석은 두루마리 성경이 있는 상자 앞에 있는 자리로 일반 회중들과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잔치에서 상석은 일반적으로 주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말합니다.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기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끝자리로 가야 함을 말씀하셨고, 본문에서도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힘쓰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는 표현은 그들이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지위를 악용하는 모습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봉사에 대한 급여를 받지 않았기에 경건한 유대인들의 호의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유대인들 역시 서기관들을 돕는 것이 경건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서기관들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에 대한 관리를 맡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서기관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물질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취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과부들은 특별히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취약한 사람들인데, 오히려 그들의 재산을 노렸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서기관이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되었으나 본래 서기관은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율법을 공부하고, 후에 율법을 필사하거나 연구하여 가르치는 전문 율법학자입니다. 본문의 평행구절인 마태복음 23장 3절에서도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증거하며 서기관들이 말하는 바, 율법은 모두 지키고 행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누구보다도 말씀을 많이 읽고, 쓰고, 묵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았기에 많은 권력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서기관들은 서로 높은 자리를 탐하였고, 과부의 가산까지도 탐내는 ‘홀로’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누구보다 말씀을 많이 읽고 연구했지만 하나님이 강조하신 ‘더불어’의 삶은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긴 기도를 한다고 해도 결국 삶에서 더불어 살지 않고 있다면 더불어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외식으로 기도함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의 긴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특별히 거룩한 존재라고 믿게 하려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외식적인 행동일 뿐입니다. 이러한 행동을 한 서기관들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더불어 지내지 못하였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긴 기도를 했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결국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삶을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예배를 많이 드리고, 긴 기도를 하는 홀로만의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도 원하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일상의 삶에서 홀로 말씀을 묵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내기를 원하십니다. 홀로의 삶을 넘어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고, 이웃들과도 더불어 살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을 기뻐 받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성도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데, 혹 우리 마음속에도 종교지도자들처럼 정치적인 그리스도,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만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또한 서기관들처럼 홀로의 삶은 살아가지만 더불어의 삶은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금 홀로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던 이유는 묵상해 봅시다.
2.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누구의 자손이며 영으로는 누구의 자손이십니까?
3. 서기관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탐하고, 물질을 탐했습니다. 나의 모습 속에 서기관과 같은 모습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4. 서기관은 긴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진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오늘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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