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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21:29-38

 누가복음 21:29-38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본문은 고난주간 중 화요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신 말씀(눅21:5-38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앞서 기록된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 종말에 있을 일들과 그 내용이 긴밀히 연결되며, 특별히 여기서는 종말의 때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말씀하십니다.

비유로 이어진 말씀(29-33)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큰 틀에서 본문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두 개의 중요한 용어로 시작됩니다. ‘이에’와 ‘비유’입니다. 전자는 접속 부사로 이어질 내용이 이전의 내용과 긴밀히 연결됨을 밝힙니다. 후자는 수사법 중의 하나로, 비슷한 사물에 빗대어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진리)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종종 사물에 비유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서 가르친 말씀의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를 소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마태와 마가는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막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두 명의 기자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신 내용을 동일하게 기록합니다. 반면, 누가는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모든 나무를 사용하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이는 당시 이방인이었던 누가복음의 1차 수신자(1:3)와 더불어 무화과나무가 익숙지 않은 오늘의 저희를 향한 섬세한 배려로 보입니다. 공관복음의 세 명의 기자가 이 비유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30-31)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자연의 변화는 곧 계절의 변화를 말 그대도 자연스레 전합니다. 한걸음에 다다를 수 있는 양화진 언덕에 목련과 철쭉, 그윽했던 라일락 향기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서늘한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뜨거운 햇볕만이 푸른 언덕을 거듭 덧칠합니다. 여름이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자연의 변화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듯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런 일’(7절, 28절)은 본문 직전에 기록된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 종말에 있을 일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근접했음을 알리는 징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모든 일들이 성취될 것을 선언(32)하시고는 비유로 인해 피조 세계에 머문 시선을 옮기셨습니다.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지막 날에 심판의 대상이 되어 없어질 천지와 영원한 말씀을 비교하십니다. 사람의 시선에서 천지의 없어짐은 상상조차 쉽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평생이라고 해봐야 땅 위에서 잠시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에게, 하늘과 땅의 없어짐은 그의 지식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시선에서 천지의 소멸은 그리 대단한 일도,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천지의 시작을 기억해 보면, 우리는 금세 그 끝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천지입니다.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에 언제든 끝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이 세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결같이 신뢰해야 합니다. 결코 말씀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말씀에 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혹 말씀을 세상에 종속시키며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함께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주의를 당부하시며, 구체적 행동 지침을 가르치십니다.

(34-35)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스스로 조심하라’로 번역된 원어(προσέχω프로세코)는 단순한 경계의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점검하여, 사전에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조심하지 못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세 가지 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
먼저 방탕함은 머리가 이리저리 뒤흔들린다는 뜻으로 포도주를 지나치게 마심으로 일어나는 현기증과 두통을 의미합니다. 이어 술취함은 술에 만취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은 세상(쾌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생활의 염려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린다는 의미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나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야기되는 마음이 둔해짐 입니다. ‘둔하여지고’로 번역 된 원어 βαρύνω바뤼노는 무거운 것으로 내리 누르다는 뜻으로,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를 ‘짓눌림’으로 번역합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많은 이들이 주님께 신속히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으로 들어난 현상에 짓눌려 있기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눅5:32)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한 걸음 다가온 주님의 시선을 피한 채, 부끄러운 제 모습을 숨기는데 급급합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그 날이 피할 수 없는 덫과 같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시며, 결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종말의 날이 멸망의 날이 아닌, 인자 앞에 서는 날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히 교제하며 교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어 있음은 세상의 미혹(현상)들로 부터 마음에 짓눌림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이를 ‘항상’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장차 있을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까닭입니다. 끝으로 기자는 예수님이 고난주간 중, 처음 3일 동안 예루살렘에서 보여주신 모습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모습(37-38)
(37-38)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십자가 죽음을 며칠 앞둔 예수님께서는 매일같이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며 허락된 하루하루에 충실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성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밤에는 기도의 동산으로 알려진 감람원(겟세마네: 감람산 서편 기슭에 위치함)에서 보내셨습니다.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은 예수님께서 감람원에서 ‘쉬셨다’고 번역하는데, 영어성경(NASB, NIV)은 이를 ‘Spend’로, 새번역과 공동번역 역시 ‘지내셨다’로 번역합니다. 22장(39-46절)에는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을 찾으셨고,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거듭 기도할 것을 교훈하시면서 직접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신 내용을 기록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어떻게 쉬셨을지 함께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기자는 지난 3일간 예루살렘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진술을, 앞서 기록된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 종말에 있을 일들에 대한 말씀의 마침표로 삼습니다. 누가는 이로서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셨음을 증명합니다.
과연 우리의 마침표는 어떤 모습일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하루만큼은 가까워졌음을 기억하며,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기를 소망하십시다.
오늘 하루 ‘홀로와 더불어’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내기를 결단하는 우리에게 그 날은, 필시 또 한 번의 ‘Anno Domini’, 주님의 날(때)이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매일 새벽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 주시고, 말씀으로 깨어있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말씀에 속해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음과 그 날이 반드시 도래함을 기억하게 해주시고, 혹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기도 가운데 깨닫게 해주십시오. 오늘 하루 ‘홀로와 더불어’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냄으로 역사의 ‘Anno Domini’를 아울러 각각의 삶에 주님의 날을 속히 맞이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나라가 멀리 있지 않다고 느끼지는 때는 언제입니까?
2. 때때로 말씀보다 더욱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4.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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