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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24:1-12

누가복음 24:1-12
찬송가 161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후부터 해지기 전까지 사람들이 장사를 치르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하루’(날)의 개념은 일몰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일몰까지입니다. 그러므로 해가 지기 전까지 약 3시간 동안에 예수님을 장사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시신은 방치될 상황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용기와 민첩함으로 장사가 신속히 진행되었습니다. 그가 바위에 판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에 싸서 안장(安葬)을 하였지만 촉박한 시간에 장사하느라 시신에 향품과 향유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여인들이 예수님의 안장된 무덤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1-3절)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안식 후 첫날’은 오늘날 시간 개념으로 주일입니다. 여인들은 이날 새벽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통해서 주님의 무덤을 준비하고 장사를 치르게 하셨다면, 이 여자들을 통해 남자가 챙기지 못했던 부족함을 보게 하시고, 장사를 위한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장사를 위해 향품과 향유의 필요성을 보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향품과 향유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재능을 통해 특별한 것을 보거나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그것을 통해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여인들은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굴려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에는 인봉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인들에게는 인봉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보다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기느냐가 더 큰 난제였을 것입니다. 여인들의 행동은 무모할 정도로 성급했습니다.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여 못다 한 예수님의 장사를 치르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거운 돌 문을 옮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이미 그 돌을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여인들이 비록 해결책을 가지고 무덤에 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의 죽음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을 승화시켜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여인들은 들어가서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시신이 없는 것만으로 부활을 온전히 입증할 수 없지만, 여인들은 제일 먼저 무덤이 비어있음을 봄으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모습을 드러내심으로 부활이 확증되었습니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본 시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갔던 목적은 미처 못다 한 장사를 치르기 위함이었습니다.

기억하라, 기억하고(4-8절)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인들은 무덤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서 근심할 때에 누군가 나타났습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른 복음서의 증거에 따르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천사를 가리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나타난 이유는 주님의 부활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인들은 많이 놀랐으며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무덤에 왔을 때에 무거운 돌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고, 무덤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고, 천사를 보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왜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셨음에도 그것을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읽고 듣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상에서 여인들처럼 당황스러운 일을 만날 때에 주님의 말씀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근심할 때가 더 많이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근심하지 않아도 될 일로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음을 알려주며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고난과 죽음과 부활입니다. 여인들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지만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천사는 그 말씀을 기억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동을 받으면 기억력과 상관없이 그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일반지식을 공부하듯이 주님의 말씀을 암기하려고 한다고 해서 오래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받아 큰 감동을 받으면 주님의 말씀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라고 요구하였지만, 여인들은 기억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알려줍니다.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서야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잊지 마십시다.

알리니, 믿지 아니하나(9-12절)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여인들은 천사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모든 것을 알렸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알리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우리 역시 이 시대에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보고 들은 것을 알려야 할 대상은 누구이겠습니까? 여인들에게는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었지만 우리는 각자에게 관계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야 할 주님의 말씀을 입으로, 그리고 삶으로 전하는 증인이 되십시다.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우리가 주로 읽는 개역개정 성경에는 10절의 내용이 괄호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어 있는데, ‘시내 사본’을 포함한 권위 있는 사본에는 존재하는 내용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도 여인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당시 여자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문화에서 복음서 기자인 누가는 부활의 증인, 여인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주님의 부활이 명백한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고 들은 바가 명백한 사실임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허탄이라는 원어는 어리석은 말, 쓸데없는 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용어는 과대 망상증을 나타내는 의학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을 정신이상자의 말로 여겼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죽은 자를 살리셨던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더라도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것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믿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증언을 과대 망상이라고 말해서 되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사도들보다 더 나은 믿음의 사람이겠습니까? 고난이 없이 평안할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고난을 당하고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를 경험할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본문의 사도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열한 사도들 중에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는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감싸고 있었던 세마포를 보았습니다. 누군가 시신을 가져갔더라도 세마포를 풀고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그때에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을 믿었어야 함에도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겼다고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활을 믿었다고 보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주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와 다름이 없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울고 통곡했는데 이번에는 여인들의 전해 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무덤이 비어있음을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베드로처럼 얼마나 자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후회했으면 또다시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함에도 너무 자주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도시의 화려함과 도시의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화려함과 편리함보다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주님의 길을 걸어가며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도록 힘쓰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저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후 3일째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자의 소망, 부활을 성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열정으로 주님을 섬겼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도시의 편안함과 화려함에 빠져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옵고 다시 오실 주님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주님의 말씀을 입술과 삶으로 전하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근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인들의 근심처럼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 근심했던 때를 생각해 봅시다.
3. 근심하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했던 말은 무엇입니까? 최근 근심할 때 읽거나 들었던 말씀 중 기억나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4. 천사로부터 들었던 말씀에 대한 여인들의 반응은 무엇이며, 여인들로부터 천사의 말을 들었던 사도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그 둘의 차이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5. 도시의 편안함과 화려함에 빠져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힘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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