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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갈라디아서(새벽)

갈라디아서 6:11-18

갈라디아서 6:11-18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으니 (11-16절)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쓸 때 여러 어려움으로 인하여, 대필자에게 편지의 내용을 전하여 이를 대신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기록 방식과는 다르게 갈라디아서의 마지막은 사도 바울이 대필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펜을 들어 기록하면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1-12)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여기서 사도바울이 설명하는 참된 신앙이란 ‘율법’이라는 단어로 정리되는 ‘나 자신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12절에서 말하는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것이 ‘율법’, 즉 ‘표면적인 행동’이라면, ‘복음’은 ‘내면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거짓 교사들이 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강요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인한 본질적인 변화는 피하고, 표면적인 행위와 이익만을 따랐기에 십자가로부터 오는 책임과 자기부인을 감당할 힘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따름으로 선언되는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할례라는 표면적인 의식에 기대어 자신의 신앙을 확인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이러한 모습과는 다르게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인한 박해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1장 27-32절에서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면서 복음으로 인한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담대하게 감당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포기해야 하는 세상의 이익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항속에서도 복음의 참된 능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으로 인한 어려움이나 세상의 이익 앞에서 담대히 자신의 신앙을 지켜냅니다.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복음으로부터 오는 하늘에 속한 것들이 세상이 주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하나님으로부터 확인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육체로부터 오는 것을 자랑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십자가 복음을 자랑합니다.
물질과 힘을 우상시하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만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유일한 능력이며, 길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복음의 담대한 선언을 세상의 사람들은 불쾌하게 여기거나 어리석을 것으로 치부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인간은 결국 인간 스스로를 구원하기에 한없이 나약하고, 악한 존재라는 점을 복음이 꼬집어 고발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 중 어느 쪽이 어리석은 존재이겠습니까, 스스로의 능력을 의존하는 인간은 결국 허망한 결론에 도달할 뿐이며,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절은 복음에 대한 세상의 비난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실제로 긴 시간 율법적인 경건을 추구해본 사람이라면, 외적 경건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본문 13절의 거짓 교사들도 율법을 강조하였지만, 정작 이들은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율법 앞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거짓 교사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정작 자신들에게는 생명의 능력이 없고, 다른 영혼을 이끌기는커녕 자신의 인생도 감당할만한 버팀목이 없으니, 결국 거짓 복음으로 할례 의식을 강조하여 그 결과를 자랑삼아 자신의 사역의 열매로 위안 삼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는 율법은 이처럼 사람을 처량하고, 허망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복음으로부터 오는 충만함과 만족이 아니고서는 결국 이 허망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와 다르게 사도 바울의 자랑은 거짓 교사들의 허망한 자랑과는 달랐습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사도 바울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게 되었기에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죄와 거짓된 속박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십계명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박하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단순히 율법적인 도구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를 속박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기며 복음 안에서 하나씩 내 삶에 적용해보면, 십계명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하신 말씀은 사실 인간이 나약하여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존하고, 우상시하는 존재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붙잡아 종과 같이 묶어줄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한 분만을 붙잡고, 신뢰함으로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담대하고, 자유롭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도, 세상의 모든 죄악과 거짓을 피하라는 계명도 사실은 인간의 악하고 거짓된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힘으로는 인간 본연의 죄악 된 본성을 끊어내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참된 자유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가 그 인생에서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5-16)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는 사도 바울은 참된 복음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유의 사람이었고, 이 복음의 자유를 자신의 편지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 할례인가, 무할례인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로 지음받은 존재가 되었는가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 규례는 지금까지 설명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맹금류와 같이 자기 자신을 의지하여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본질상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구원의 규례를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참새와 제비같이 겸손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여 주의 말씀의 제단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긍휼이 그 인생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복음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내가 진정으로 신뢰하며 의지하는 대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내 삶의 참된 능력으로 붙들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내 삶의 참된 원동력이며, 무엇을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그 모든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입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끝인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거룩한 흔적과 그 은혜가 영원히 함께한다는 점을 선언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끝인사 (17-18절)

(17-18)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의 이 말씀을 함께 듣는 우리 100주년 기념교회의 교우님들 모두의 심령 가운데에도 우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참된 자유의 은혜가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은 우리가 나의 힘이 아닌 예수님과 동행하는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고발하는 복음의 선언을 세상의 사람들은 불편해 하고 꺼리지만, 우리는 나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자랑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충만한 능력을 부어주시고, 세상의 모든 거짓된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사순절을 맞아 다시금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합니다. 나의 죄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오늘 만나게 되는 나의 이웃들을 향하여, 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 모두의 삶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자랑은 무엇인가요?
2. 평소 율법적으로 따르던 표면적인 행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십계명을 통해 나를 돌아보면 나는 무엇에 묶여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4.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내게 찾아온 자유는 어떠한 것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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