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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 민경설 목사님 설교

 
2008/7/29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빌3:5-11)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어 쓰시는 옹기장이십니다. 좋은 그릇 같은 옹기도 깨뜨리시기도 하고 또 쓸모없는 먼지 같은 흙을 빚어서 빛나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쓰시기도 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18:6)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쓰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실 때도 그 기준이 사람들과 같지 아니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세상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을 봅니다. 사람들에 의하여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하나님이 쓰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울왕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잘생기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버리면 인간은 정말 이 세상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사람, 바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얼마나 은혜를 주었는지 그는 신약의 27권 중에 무려 13권을 쓴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 번째, 하나님 앞에 자신이 무익하며 무력한 자임을 깨달은 자입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
인간적으로 볼 때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도 있고, 열심을 낸 것도 있지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일꾼으로 쓰임을 받으면서 영적으로 눈을 떠보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 무익하고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일부러 가장한 겸손이 아닙니다. 진실로 그는 영적인 눈을 뜨고 깨달은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7-8)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그릇이 좋고 재질이 좋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이 우리 속에 계시지 않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절망을 극복하고 믿음을 가진 자를 쓰십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9)
주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자기가 무력함과 무익함을 정말 원하던 원치 않던 환경, 실패, 환란, 고난 속에서 깨달았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났구나 하는 좌절과 실망, 절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절망을 극복하고 주님을 보고 주님께 나와서 적극적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자를 하나님은 쓰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의 실존의 절망과 좌절을 인생의 도피나 쾌락으로 죄악과 어둠에 빠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쓰실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부활의 능력에 눈이 열리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정말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은 이 세상에 보이는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승리의 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힘을 덧입을 때 가능합니다.
이 세상의 철학은 모두 자신의 힘을 강하게 하고 자신감을 키우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된다는 것을 강조 하는데 그것은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진정한 힘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을 체험하고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 세상을 이글 수 있는 참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능력은 아무리 강해도 다 부정적인 능력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죽이는 능력은 있어도 살리는 능력은 없고, 미워하는 능력은 있어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남을 쓰러뜨리는 능력은 있어도 남을 일으켜주는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우쭐할 줄은 알아도 겸손히 남을 섬기는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능력은 죄를 짓고 타락하는 능력은 있어도 죄를 사하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능력은 그 근원이 아무리 강해도 그것이 사탄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의 능력은 정말 우리를 살려 내시는 긍정의 능력입니다. 즉 주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신 능력이시기에 우리를 살리고 생명을 주시며 사랑하고 용서하고 겸손하고 섬기고 소망을 주고 영생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 능력은 다 부활의 주님의 능력에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활의 능력을 받기 위하여 어찌하든지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려고 하는 자를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아멘.

출처 : 한나의 정원
글쓴이 : 데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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