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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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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3. 주일 낮예배 설교문
본 문 : 출애굽기 15 : 19 - 27
제 목 : 마라의 고통과 시험을 극복하자
찬 양 : <새>240, 243, (246) 272, 488, 489, 492.
복음송 : 우물가의 여인처럼(찬미예수2000. No,1065)
할렐루야!!
오늘도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요즘 뉴스를 들어보면 좋은 뉴스보다는 우리들을 울적하게 만드는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구제역 발생으로 인하여 3개월여 동안에 전국적으로 살 처분하여 매몰시킨 가축수가 350만 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하여야 이 난국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감동하시어 오늘 본문 말씀을 주셨습니다. 분명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다 같이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마라의 고통과 시험을 극복하자」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7절을 보면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림이란 곳은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그곳은 물이 펑펑 솟아나는 샘물이 열두 곳이나 있고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수 있는 종려나무도 칠십 주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다 장막을 치고 잠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마라의 고통을 겪고 난 후에 엘림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엘림이란 오아시스는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라는 고통을 잘 이겨냈을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후 저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충천하였습니다. 미리암과 많은 여인들이 소고를 치면서 미리암의 선창에 따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기쁨과 환희와 흥분된 마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용기 충천하여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말로만 듣던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 앞에는 실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많은 난제들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의 생활을 끝마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진군하는 이스라엘의 60만 대군들에게 고통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물이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합니다. 목이 마르면 마셔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갈증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의 고통입니다. 저는 1967년도에 월남전에 참전하였을 때에 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험을 한바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서 스루 광야를 지나는데 3일 길이나 행진을 하였으나 그들은 물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뜨거운 태양은 내려 쪼이고 마실 물은 없었습니다. 3일씩이나 물을 마시지 못하였으니 그 상황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러던 차에 한 곳에 이르러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달라붙어서 그 물을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써서 물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독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물을 “마라” 라고 하였습니다. 마라라는 말은 “쓰다” “괴롭다” “쓰리다” “애달프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낙심했습니다. 사흘 전의 그 기쁨이 아침 안개 같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어제의 기대에 찬 소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한 걸음도 더 걸을 수가 없이 지쳤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 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이 때 한편에서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세를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폭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입니다.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불과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모세가 황급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나무를 지정하여 주시고 모세는 그 나무 가지를 꺾어 물어 던지니 그렇게도 독소가 있어 마실 수가 없던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할렐루야!!
바라기는 수르 광야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기적이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1.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마라와 같은 세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들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야는 빈들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우리는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한계 상황에 다다랐을 때에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 우리를 도와주시고 살려주십니다. 바라기는 마라의 기적의 역사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의 가정에서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수 있는 단물을 원했는데 마라의 쓴물이 나타났던 것처럼 우리 앞에도 너무나 많은 마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룻기에서 ‘마라’ 라는 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그곳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을 앞세우고 모압 나라로 이사를 갔습니다. 모압 나라에서 아들을 결혼시켰는데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고 이어서 두 아들도 죽습니다. 할 수 없어서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 고향의 친구들이 환영을 하며 “이게 누구냐! 나오미가 아니냐?” 하고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이 때 나오미가 말하기를 “나를 나오미(희락)라 하지 말고 ‘마라’ 라고 하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라요, 인생도 마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하였지만 신학자 키엘케콜은 “내가 고통 하는 고로 내가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각기 쓰라린 고통이 있습니다. 남이 아는 괴로움도 있고 남이 모르는 괴로움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안으로 밖으로 많은 마라의 고통에 둘러싸여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고통에 싸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이기는데서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아 멘>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다가 낙심하여 세상으로 떠나갑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예수를 믿으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만사가 형통하고,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돈을 잘 벌고, 자녀들이 잘 되고, 계급이 승진할 줄 알았는데 예기치 않던 고통이 닥쳐올 때 그만 낙심하고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신자라는 이름 때문에 정직하게 살다보니 세상에서 손해 보는 일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환난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속적인 신앙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환난을 당했을 때에 그것을 신앙으로 잘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항상 우리들을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네가 예수를 믿어서 처음에는 기뻤지만 그러나 네가 지금 얻은 것이 무엇이냐? 네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인생의 쾌락이라도 있지 않았느냐?” 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2. 마라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여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고통에 처한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라의 쓴물을 맛보고 모세를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사람마다 모세를 향하여 고함을 질렀습니다. 모세는 자기를 향하여 죽일 듯이 달려드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는 사자와도 같고 성난 노도(怒濤)와도 같은 그 무리들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마라를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므로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4:13절 말씀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있을 때에 우리가 할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의 노력으로 아무리 어려운 난관을 돌파해 보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절대적인 상황을 가르쳐서 칼야스퍼는 한계 상황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한계 상황을 돌파하는 길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앙과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밖에는 없습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3. 원망과 불평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들은 벌써 두 번째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을 보면 나쁜 일은 기억을 하면서 좋은 일은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로 3일전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그런데 사흘밖에 되지 않았건만 벌써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받은 은혜를 오래도록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항상 새로운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잊어버리면 불평과 원망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품이 아주 조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잠시를 참지 못하고 원망을 합니다. 홍해를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으로 건너고 뒤쫓아 오던 애굽의 군사들이 모두 수장되는 것을 보고 소고를 치며 춤을 추면서 감사의 찬송을 부른지 겨우 사흘이 지났는데 3일을 참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잠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모든 죄가 다 위험하지만 특히 원망과 불평의 죄는 참으로 위험한 죄악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고전10:10)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4.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폭동이 일어날 때 모세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여 주었습니다. 그 나뭇가지를 베어서 물에 던지니 쓴물이 금방 달아져서 먹을 수 있는 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올 것을 대비하여 벌써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나무를 키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는 분이십니다.<아멘>
(마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5. 하나님은 인간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못하도록 한 가지 규례를 정하여 주었습니다.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아브라함 때부터 선택을 하여 선민으로 삼아주셨는데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이 말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또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고 치료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치료에는 세 가지의 치료가 있습니다.
(1) 육체의 치료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병을 앓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병의 발병 원인을 보면 죗값으로 오는 병이 있고, 또는 신앙의 연단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 정신의 치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세상을 지배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창조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신이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병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병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3) 영혼의 치료가 있습니다.
다른 어떤 병보다도 영혼의 병이 더욱 무섭습니다. 다른 병은 인간을 단지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영혼의 병은 인간을 영원한 멸망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이 영혼의 병은 반드시 죄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메데르 박사는 그가 정신과 의사로서 20년 만에 인간의 정신 속에 병을 만드는 원인이 죄 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죄는 만병의 원인이 된다.” 고 하였습니다.
6. 하나님은 마라의 고통 후에 엘림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마라의 쓴물은 우리 성도들이 다 맛보아야 할 시련의 샘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니 마라는 단물이 되었습니다. 쓴물을 단물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나무가 무슨 나무이냐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마라의 쓴물은 우리들을 괴롭히지만 믿음과 순종은 이 쓴물을 달게 만들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홍역을 치른 후에 엘림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엘림은 오아시스입니다. 종려수가 70주나 있어서 시원한 그늘에서 쉴 수도 있고 생수가 솟아나는 물 샘이 열둘이나 있어서 목마를 염려가 없습니다.
(1) 엘림은 인생의 안식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에서 마라의 고통을 당한 뒤에 엘림을 만나 그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마라의 고통을 지나고 나니까 엘림의 안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광야와 사막에는 이와 같은 오아시스가 있어서 나그네와 대상들의 안식처입니다. 인생은 항상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밤이면 잠을 자야 합니다. 고달픈 인생은 누구나 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엘림을 바로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나그네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곳입니다.
몇 날 며칠을 뜨거운 뙤약볕에 그슬린 인생들에게 시원한 나무 그늘이야말로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우리는 왕상19:4-9에서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엘리야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으며, 박 넝쿨 밑에서 뜨거운 태양 볕을 피하던 요나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그네들에게 나무 그늘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엘림은 어디에 있습니까?
(2) 엘림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사막 길을 여행하는 나그네나 장사꾼들에게 엘림이 소중한 것처럼 이 세상에 교회가 없다면 광야와도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사랑과 은혜가 한량없으신 하나님은 이 땅 곳곳에 영육 간에 지쳐있는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교회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와 같이 교회는 평안과 안식과 기쁨과 위로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있습니다.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사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마라와 같이 쓴 이 세상을 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살던 사람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마치 수르 광야와도 같은 세상이요 마라와 같은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상상도 못했던 우발적인 사건들이 속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우리가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아무쪼록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예측할 수 없는 이 마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항상 쓴 것도 달게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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