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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이 넘치는 사람이 되려면

복이 넘치는 사람이 되려면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욥기 22장 21 - 30절(개역개정)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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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일본 관광지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니꼬]라는 유명한 관광지에 있는 어느 사찰에는 네 개의 우물이 있답니다. 그 우물물을 마시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각각의 우물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수(壽), 부귀를 의미하는 부(富), 권세를 의미하는 권(權), 사랑을 의미하는 애(愛)라는 글자가 쓰여있다고 합니다. 그 우물마다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수(壽)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주로 60세가 넘은 노인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서 있답니다. 부(富)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주로 삼사십 대 젊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서 있다고 합니다. 권(權)이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국회의원 후보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한 자리하고 싶은 갈망으로 서 있다고 합니다. 애(愛)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주로 이십대의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연인을 소망하며 이 물을 마시려고 서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관광 갔던 한 분은 네 군데 우물물을 모두 다 마셔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福)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아멘은 하지만 여러분들 중에는 기복신앙의 비판 때문에 뭔가 개운치 않은 아멘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가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이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복신앙은 하나님께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에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말이 마차 앞에 있어야 마차가 달릴 수 있습니다. 마차가 말 앞에 있으면 그 마차는 달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복을 받는 것이 우선이 되면 신앙은 멈추게 됩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복신앙의 문제점은 성경적인 복을 잘 이해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복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런 것들은 성경적인 복이 아니라 성경적인 복이 올 때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성경적인 복은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 덩어리가 되면 복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부모가 떠나고 나면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없지요. 물고기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것들을 소유하는 정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복덩어리가 되어 내가 하는 일에 복이 넘치고, 내가 가는 곳에 복이 넘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우물이 없으면 물이 필요할 때마다 물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만 우리 집에 우물이 있으면 물이 필요할 때 물을 퍼서 사용하면 됩니다.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복이 없어서 복을 찾아 헤매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복의 근원으로, 복 덩어리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복 있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연단이고 훈련입니다.
   욥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이 사단의 시험으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욥은 사단의 역사로 하루아침에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악한 자들에게 빼앗겼습니다. 몸은 병들었고 아내는 욥을 떠났습니다. 욥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이 그렇게 고난을 받고 있을 때 욥의 친구들이 욥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한 것이 아니라 욥과 논쟁을 했습니다. 욥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변론하는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욥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받아서 고난 전 보다 2배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말입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욥에게 하나님의 복이 회복되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이 한 말들에 대해서 욥의 말보다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 말 자체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말보다는 말하는 그들의 중심과 태도가 잘못된 부분이 더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의 친구들의 말을 모두 이치에 어긋난 말이라고 치부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들의 말이 모두 이치에 어긋났다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욥과 친구들의 변론을 30장이 넘는 분량을 사용해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겠습니까.
   오늘 설교는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고기를 얻어먹는 정도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되는 비결이지요. 물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집 안에 우물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되는 비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우리가 복 있는 사람, 복이 넘치는 사람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봅시다.
   21절에 보면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23절에 보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라고 했는데 이 말은 다시 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혹시 망한 분들이 있다면 다시 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23절에 보면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복된 가정이 되는 것이죠. 25절에 보면 전능자가 보배가 되시고 귀한 은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6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고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말입니다. 27절에 보면 우리가 하는 기도가 응답 됩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를 바랍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또 서원을 갚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약속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킬 의지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있는 형편이 안 돼서 못 지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서원한 것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절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면 그것! 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우리의 길에 빛이 비추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 빛이 임하여 길이 보이기를 축원합니다. 29,30절에서는 낮아진 자리에서 그리고 고통 중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복이 넘치려면 우리가 복을 좇아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이런 것은 자동으로 넘치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복 있는 사람, 복의 근원, 복덩어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21절).
   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까?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복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물질적인 복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건강의 복도, 명예의 복도, 가정의 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모든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해야 합니다.
   성경은 복을 악속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실제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욥기에서 가르쳐주는 것 두 가지를 나눠보겠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연단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귀하게 만드시려고 순금처럼 연단하십니다. 욥 23:10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단련을 통과한 후에 순금처럼 나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단련하시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욥기에서 보여주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과 불목입니다.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데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 막히는 것입니다. 수도 파이프가 막히면 어떻게 물이 전달되겠습니까.
   왜 하나님과 불목하게 됩니까? 죄와 교만 때문입니다. 바느질을 할 때 실에 매듭이 있으면 바느질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직도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다면 복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묶인 매듭을 먼저 풀어야합니다.
   우리는 쉽게 작은 교만이나 사소한 죄들을 그냥 두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이게 큰 실수인 것입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런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소한 교만과 사소한 죄도 쌓이면 영적인 면에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합니다. 죄가 발휘하는 강력한 괴력은 마귀는 불러드리고 하나님은 밀어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멀리해야 하고 하나님은 가까이 해야 복이 되는데 이것을 죄가 거꾸로 해버리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마귀는 불러드리고 가까이 모셔야 할 하나님은 밀어내는 것입니다.
   하루에 우리는 죄를 얼마만큼 짓고 살아갈까요? 하나님께는 우리의 행동만 죄가 아니라 잘못된 마음과 생각 그리고 가볍게 한 말 한 마디도 죄가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에 10번 정도만 죄를 짓는 사람도 상당히 훌륭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매일 하루에 10번의 죄를 짓는다면 1달이면 300번입니다. 1년이면 3,600번입니다. 10년이면 36,000번입니다. 20년이면 72,000번 죄를 짓습니다. 40년을 산다면 144,000번, 60년을 산다면 216,000번의 죄를 짓습니다. 만약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우리의 전과기록을 조회를 해보면 적어도 100,000번 이상의 범죄 경력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다고 할 때 사용하는 ‘화목’이란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밀착시킨다, 아주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제 재산은 누가 물려받습니까? 당연히 저와 가까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입니다.
   시 73:28을 보면 시편기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뭐가 복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피로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반드시 짐승을 잡아서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 제주는 짐승을 데리고 와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물을 드린 후에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했었습니다.
   레 17:1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교제가 안 되는데 죄를 사하는 방법이 피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짐승의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재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의 피를 힘입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했던 것 역시 그림자입니다. 짐승과 짐승의 피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피를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의지하여 죄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5:1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롬 5:10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려면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방법은 피로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 짐승과 짐승의 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22절).
   복 있는 사람 즉 복의 근원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22절을 읽겠습니다.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시 107:10,11입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시 107:19,20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 고난을 당하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그를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히 4:1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는 말씀을 사람이 탈을 쓰는 것으로 이해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제가 전도사 때는 짐승의 탈을 쓰고 어린이 전도를 했습니다. 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 탈을 쓰면 탈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그걸 보고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살아있고 활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말씀이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을 살립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던 사람을 깨우고, 영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을 능력자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구제불능이었던 사람이 은혜를 받고 변화된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 속에 생명의 성령님과 생명의 말씀이 들어가니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능력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딤후 3:15-17을 보겠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살아있고 활력 있는 말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물에 소금을 타면 물이 짜집니다. 왜 짜지죠? 소금의 짠 기운이 물을 짜게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물에 설탕을 타면 물이 달게 됩니다. 왜 달게 되나요? 설탕의 단 기운이 물을 달게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말씀의 능력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고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눅 6:45에 보면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말을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 사람 속에 악한 것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말을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시 그 사람 속에 선한 것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말씀을 두면 그 말씀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복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편 1:1-3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쌓은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통해서 복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성경을 읽고, 왜 설교를 들어야 하며, 왜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투명한 유리컵에 검정색 잉크를 부으면 컵이 검정색으로 변하고, 노란색 잉크를 부으면 컵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세상의 것들이 들어오면 우리는 세속화 되는 것이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신령해지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면 마음에 말씀을 채우십시오.

3.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23절).
   23절에 보면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지음을 받는 것은 개역성경에서는 “다시 흥하리라”고 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망했던 사람이 전능자에게 돌아가면 다시 흥하게 됩니다. 쇠했던 사람이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능자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전능자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말 3:7-10을 보면 하나님과 망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변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답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 드리지 않고 헌금생활 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이스라엘 온 나라가 저주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온전한 십일조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말 3장에서 가르쳐주는 ! 교훈은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 생활과 헌금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왜 온전한 십일조 생활과 올바른 헌금 생활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온전한 십일조와 올바른 헌금 생활은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고백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나는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십일조를 가지고 계산을 하면 복잡해집니다. 한 달에 30만원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1년이면 360만원이고 10년이면 3,600만원입니다. 50년이면 1억 8천만 원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드리고 언제 집을 장만하고 언제 자식들 결혼 미천 준비하나’라고 생각하면 십일조 못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합니다. 왜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24,25절을 보겠습니다.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보화를 버리고 오빌의 금을 버리라는 말은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오빌의 금은 금 중에서 제일 좋은 금을 말합니다. 이 말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이거 아니면 안 됩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을 티끌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는 강가의 돌처럼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중요한 것이 뭔지 잘 모릅니다. 재물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사막의 천막에서 두 명의 보석 상인이 자신들이 가진 보석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한 상인이 일부러 큰 진주 하나를 떨어뜨리자 그것을 주워 본 다른 상인이 말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작은 일부에 불과하네.” 그 때 그 옆에 있던 아랍 유목민이 웃으며 “나 역시 당신들처럼 보석에 관심이 많았죠.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 바람에 며칠 동안 먹지 못하고 탈진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큰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지요. 혹시 음식이라도 있나 기대하며 열었는데 진주만 가득했지요. 그 때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금이 필요한 것이지만 음식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는 금보다 중요한 것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딤전 6:17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십시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욥과 솔로몬은 성경의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가져본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루아침에 완전히 빈손이 되었습니다. 물질이 내 손을 떠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가장 부요했던 왕인 솔로몬은 많은 재물을 가져본 결과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안 가져본 사람이 이 말을 하면 믿어지지 않지만 가장 많이 가져본 사람이 한 말이니까 믿음이 가고 또 우리가 신중히 들어야 합니다.
   렘 2:13에서는 유다 백성들의 2가지 악을 지적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인가를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생수의 근원을 버렸습니다. 생수의 근원을 붙들고 있으면 물에 대한 걱정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팠습니다. 그들은 그 웅덩이가 자신들의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웅덩이가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설 명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세배하고 세배 돈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세배 돈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어떤 아이가 세배 돈을 좀 많이 받았습니다. 100만 원 정도 받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린이에게 100만 원이면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그 아이가 큰돈이 생기니 교만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엄마아빠가 없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아빠 도움 없이 스스로 살기로 결심하고 엄마아빠와 결별합니다. 자, 그러면 이 아이가 그 때부터 잘 살 수 있을까요? 자유로운 몸이 되어서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하며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피조물인 인간들은 남보다 조금만 잘나면, 남보다 조금만 더 가지면, 남보다 조금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하나님에게서 독립하고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결별한 사람이 잘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혹시 이 땅에서는 잘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럼 영원한 세계는 어떻게 합니까? 죽음 후의 세계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의지하십시오. 돈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십시오. 사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 하십시오. 건강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 하! 십시오.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말씀 정리하겠습니다. 복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 복덩어리,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3가지를 명심합시다. 첫째,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십시오. 셋째,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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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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