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臨在)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시편 22편 3절(개역개정)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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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요즘 기독교에서는 임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임재가 중요합니다. 찬송을 해도 그 찬송에 주님이 임재 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아무리 준비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실패한 예배입니다.
생일잔치를 하는데 생일을 맞이한 당사자가 없다면 그 잔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찬양, 임재가 없는 기도, 임재가 없는 예배는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는 크게 세 가지 면을 다루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임재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임재의 결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셋째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가를 나누겠습니다.
1. 임재란 무엇인가?
임재라는 말은 한문의 뜻을 풀면 임할 임(臨)자에 있을 재(在)로 ‘임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께서 개인이나 단체나 어느 장소나 공간에 임하셔서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 ‘계신다.’는 말이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야샤브’라는 말인데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임하셔서 쭈~욱 계속해서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보통 성도들이 하나님이 임재를 체험하기를 하는데 잠간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송하는 중에 한 소절 정도 체험하기도 하고, 기도 중에 잠시 체험하기도 합니다. 좀 강하면 예배를 드리는 내내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면 임재가 사라지고, 교회에서 나가면 임재가 사라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임재를 체험하는 정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임재가 계속 되는 것을 동행이라고 합니다. 1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그 1년간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 된 것입니다. 1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10년간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 된 것입니다.
에녹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65세에 무드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임재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임재로 시작해서 임재로 끝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들과 에덴동산에서 함께 하신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자기 백성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계 20장에서는 천년왕국과 사탄의 패망 그리고 백보좌 심판이 나옵니다. 이 세 사건은 인류 역사의 종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21장과 22장에 보면 영원한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해 말씀하고 성경의 기록이 끝이 납니다.
그런데 계 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 얻은 우리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 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원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임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간절히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2. 임재의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무슨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임재’라는 단어가 겔 37:1에 한번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임재 하셨습니다. 여기서 임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야’라는 단어인데 뜻은 ‘~이 일어나다, ~이 되다, ~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뭔가가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면 임재를 경험한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겔 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일어난 한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임재 하셔서 에스겔을 통해서 마른 뼈가 살아납니다.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른 뼈가 큰 군대를 이루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마른 뼈의 회복은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입니다. 겔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사건을 기록한 후에 11,12절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나라를 잃고 온 세계에 흩어져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마른 뼈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니 마른 뼈들이 무덤을 열고 나오듯이 열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예언이 지금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우리 비전교회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사역을 통해서 이 일에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 1:2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땅의 상태가 혼돈하고 공허하고 캄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성령님계서 임재 하셔서 뭐하고 계셨습니까? 운행하셨습니다. 운행이라는 말은 움직이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혼돈이 사라지고 질서가 만들어졌습니다. 공허가 사라지고 충만해졌습니다. 흑암이 사라지고 빛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니 뭔가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임재의 결과로 좋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LPG 가스가 새면 가스가 새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알 수 있죠.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냄새로 알게 됩니다. 가스가 새면 냄새가 나서 아는 것입니다. 원래 LPG가스는 무색무취입니다. 냄새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스 회사에서 가스가 새는 것을 알게 하려고 LPG가스에 암모니아 가스를 함께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스가 새는 것을 냄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도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나타나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나타는 결과 혹은 현상을 나눠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담대해집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순교자들은 사자의 밥이 되는 순간에도 담대했고, 화형을 당하면서도 담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임재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담대해진 것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죽음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순국이고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순교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산으로 올라가서 3일을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기도하던 장소에 함께 있었던 조카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사흘 동안 기도만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뭔가 계시를 받은 듯 미친 듯이 기도를 마친 그의 얼굴은 온통 환하게 빛이 났고 말에 힘이 있었고 담대한 모습이었습니다.” 유관순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담대함이 임했습니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서 사람들을 설득했고 만세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유관순은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유관순이 당한 고문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치욕스러운 고문이었습니다. 밥에 모래와 쇳가루 넣기, 성폭행, 납이 달린 채찍으로 때리기, 고춧가루를 넣은 물을 코에 붓기, 머리에 콜타르를 바르고 가발을 벗겨내듯이 머리 가죽을 벗겨냈습니다. 손톱과 발톱을 뺀지로 들었다 놨다 하면서 천천히 뽑아냈다고 합니다. 입에 호수를 꼽아서 위장에다가 이물질이� �똥을 직접 투입시키기도 했답니다. 면도칼로 코와 귀를 깎아냈습니다.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상장에 대못을 박아놓고 약 3,4일을 그곳에 들어가 있게 했다고 합니다. 칼로 양쪽 가슴을 잘라냈고, 발바닥 가죽 벗겼습니다. 입을 찢었습니다. 전기고문, 달군 인두로 몸 지지기, 시뻘겋게 달궈진 쇠몽둥이로 때리기 등이었습니다. 그런 고문을 당하면서도 유관순은 당당했습니다. 담대했습니다.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담대했던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 대환난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극심한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때의 환난은 유관순 열사가 당했던 환난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 시대에 대환난이 찾아온다면 믿음을 지키고 환난을 잘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환난을 이기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관순 열사로 하여금 환난을 이기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담대함을 주셔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시 23:4에 보면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면 담대합니다.
2)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기쁨이 넘칩니다.
몇 년 전에 우리교회 김기범 장로님 댁에 불이 났습니다. 하루는 경비 아저씨가 강윤정 권사님에게 웃고 다니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죠. 불이 났는데 웃고 다니면 미친 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불이 난 후에 강권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답니다. “기뻐해라” 그래서 기쁘게 다니다보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나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니 울어야 할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우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입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 16:11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의 앞과 주의 오른쪽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니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3)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구원을 받습니다.
출 3장에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괴로워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시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내려가시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재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재하시니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출애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인류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하시기 위해서 임마누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때문에 영혼의 구원을 얻은 것처럼, 환경에서 구원, 질병에서 구원, 악인들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4)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님께서 가시니 물이 포도주로 변화 되었습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대학 다닐 때 시험에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에 대하여 설명하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두 시간동안 학생들은 머리를 짜내어 답안을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런은 딱 한 줄로 짤막하게 답을 적었습니다. “물이 그를 창조한 주인을 만나매 얼굴이 붉어졌더라”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듯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고후 5:17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면 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헌 것을 고치는 변화가 아닙니다.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하는 정도의 변화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가 생기는 변화입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삼상 10:6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했던 예언이 나옵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사울에게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사울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만큼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없습니다.
난생 처음 백화점엘 가 본 시골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기한 듯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문이 열리고서는 예쁜 아가씨가 내리니까 이 할아버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손자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니네 할머니도 저 기계 속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야겠다.”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하고 부인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5)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형통합니다.
창 39장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디발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라고 되어있습니다. 23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형통케 해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요셉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결과가 형통이라면 형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보다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왕자가 산에서 사냥하다가 크게 다쳤습니다. 나무꾼이 잘 보살펴주어서 궁궐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왕이 고마워서 나무꾼을 불러서 무엇을 해줄까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다른 것을 필요 없고 임금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하룻밤만 주무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이 나무꾼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궁궐에서 사람이 나가서 나무꾼이 사는 동네 길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이 사용할 모든 침구도 준비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음식재로도 준비했습니다. 임금님이 임재 하려고 하니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형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형통합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형통은 만사가 자동문이 열리듯이 열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은 종살이를 하면서 형통했고 옥살이를 하면서 형통했습니다. 형통이란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이 땅에서 잘 되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되는 것 보다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고난을 통해서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형통입니다.
6)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속성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진으로 이끌지 않고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홍해 길로 들어갔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였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것 같고 망할 것 같은 그 길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들은 홍해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 때로는 돌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우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날 때 성막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성막 중에서도 지성소에 임하셨습니다 지성소 중에서도 법궤 위에 임하셨습니다. 금으로 된 법궤 뚜껑을 시은소 혹은 속죄소라고 합니다. 그 위에는 두 천사가 마주보고 날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 뚜껑 위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기구입니다.
민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군시에 3지파씩 내 줄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때 가장 앞에는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앞장섰습니다. 법궤가 앞장섰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임재 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롬 8:14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비결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의 일화입니다. 청교도였던 존 번연은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존 번연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부인과 가족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존 번연은 고마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가다가 되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성령이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이 갇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만약 존 번연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다면 그날 존 번연과 간수장은 참수를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사건 후에 간수장은 존 번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당신에게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가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임재 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7)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승리합니다.
사 41:10에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11-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승리 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사람들에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자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들은 패배하여 사라져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 됩니다. 그들은 바람에 날아가는 겨와 같은 존재들이 되고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자들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승리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반별로 축구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반에 세계제일의 축구선수인 메시가 들어갔다고 가정을 합시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어느 반이 이길까요? 당연히 메시가 들어간 반이 이기죠. 메시의 임재가 그 반을 승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이 내게 임재 하셔서 나와 동행하신다면 나의 승리는 보장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3대 적은 마귀와 세상과 육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면 마귀도 세상도 자기 자신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의 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사는 영적 전쟁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재 하시는 하나님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사십시오.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면 일어나는 좋은 결과는 이루다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오늘은 시간 관계상 이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3.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가?
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임재하십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틈만 있으면 강제로라도 밀고 들어가서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그 때 들어오십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혹시 아직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마음을 여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성경 요 1:1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느 목사님의 할머님의 간증입니다. 할머니가 많이 연로하셨는데 아무리 예수 믿으라고 해도 “나는 원래부터 불교를 믿었고 그동안 친구들도 다 불교 믿는 친구들이니까 난 내 길로 갈 테니, 너는 예수를 잘 믿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할머니! 그러면요. 이 땅에서 할머니와 손주지만은 이제 죽고 나면 할머님은 극락에 가고 나는 천당에 가버립니다. 극락과 천당이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압니까? 거기에는 비행기 타고도 못가요. 할머니하고 나하고는 영원히 영원히 이별입니다. 아시겠어요?”, “서로 왔다갔다 못하니?”, “못하지요. 나는 천당에 가고 할머니는 소히 불교계에서 말하는 극락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리 가버리면 우리는 생이별하고 영원히 못보지요.”, “어이 그러면 안되지. 그러면 내가 너를 만나봐야지.”, “그러면 손주 따라 가야지요.”, “그럼 어떻게 하노?”,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 됩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손주 따라 가려고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습니다. 할머니가 그 후에 성령 받고 늘 하신 말씀이 있답니다. “복이 있어야 예수님을 믿지 복이 없으면 예수님을 못 믿는 � 탑� 아무나 믿는 줄 알아? 복 있는 사람이어야 예수님을 믿는 거야.” 여러분! 복이 있어야 예수님을 믿지 복 없으면 예수를 못 믿습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기도 중에 임재하십니다.
출 3:8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데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이유를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재 하셨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눅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 변화 되셨고 기도하실 때 구름이 산을 덮으며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행 2장에 보면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셔서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믿음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 임하십니다.
3)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재하십니다.
시 22:3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우리가 찬송할 때 중심을 드려서 주님을 높여드리면 우리의 모임 중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부흥회를 인도했던 곳이 전라도 고흥군에 있는 익금화평전원교회입니다. 그곳을 담임하시는 목사님은 천상식 목사님이십니다. 약 1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인데 주변의 몇 교회들과 교통을 잘 해서 마지막 날에는 60-70명이 참석을 했습니다. 이 집회에서 들은 간증입니다.
주변에 도천 한마음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은 권영홍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께서 혼자 2013년 여름에 4개월 동안 사택과 교회를 건축하셨습니다. 현재 교인은 2명입니다. 2명 나오는데 제게 내년에 부흥회를 해달라고 하시네요. 그 교회가 교인은 2명이지만 목사님은 빔 프로젝트가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셨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교회를 방문했을 때 함께 찬송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2시간을 찬송 하는데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니 천상식 목사님이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천목사님은 돈이 하나도 없지만 본인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천상식 목사님이 평상시 알고 지내던 분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본인이 3년간 매달 몇 만원씩 저금을 했는데 그 돈을 보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송금된 돈이 120만원이었고 프로젝트는 100만원 자리이지만 권목사님이 20만원을 하겠다고 해서 천상식 목사님은 80만원을 지불했습니다. 40만원이 남아서 그 돈으로는 자동차를 수리하였다고 합니다. 찬송 중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몇 주 전에 최낙중 목사님께서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실 때 나타났던 찬송의 능력에 대한 간증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네요. 학생들이 성탄 새벽송을 돌다가 무당집 앞에서 찬송을 했습니다. 그 때 안에서 굿을 하던 무당 둘이 쓰러지고 집 주인 무당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이 찬송 중에 임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임재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과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자동차에 운전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보면 성령을 받기 전과 성령을 받은 후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 받기 전에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손에게 성령께서 머물러 계실 때와 성령께서 그를 떠나셨을 때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그에게 나타난 가장 큰 차이는 능력의 차이입니다. 성령이 머무실 때는 엄청난 능력을 행하던 삼손이 성령이 떠나고 나니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적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는 비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성령의 사람인가를 살펴봅시다. 육신으로 살고 있다면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산다면 생명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교회 생활은 가짜입니다. 믿음도 가짜고 기도도 가짜고 예배도 가짜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생겼다고 사람이 아닙니다. 그 속에 영이 있어야 사람입니다. 사람에게서 영이 떠나면 시체입니다.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한 평생 선교사로 일했던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에게 하루는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묻기를 “내가 이렇게 교회를 들락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세례도 받고 정식으로 믿고 싶습니다. 성경을 몇 번 읽어야 됩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허드슨 테일러는 “자네 촛불이 언제부터 빛이 나나?”라고 묻자, 청년은 “심지에 불을 붙여야 빛이 나는 것이죠.”라고 답했습니다. “마찬가지네. 성령의 역사가 자네 마음속에 역사할 때에 그때부터 온전한 교인이 되는 것이네.”라고 했습니다. 참 옳은 말입니다.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으면 온전한 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단 며칠을 다녀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진짜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임재 하십니다.
5) 하나님은 깨끗하면 임재 하십니다.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에게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시 24:3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누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으냐?라는 질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할 수 있으냐?입니다. 4절에 답이 나옵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깨끗한 사람입니다.
출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건이 나옵니다. 출 33:3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들에게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똥이 묻어 있는 사람에게는 파리가 오겠지요. 꽃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벌과 나비가 오겠지요. 죄가 있는 곳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죄를 처리 받아서 깨끗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재 하시기 전에 먼저 백성들의 정결함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십계명을 받기 전에 목욕하고 정결하게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깨끗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개혁 되어야 한다는 소리들이 많이 들립니다. 저는 지금의 한국교회는 개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하고 거룩한 교회가 될 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온갖 음란하고 더럽고 악한 방법으로 역사를 합니다. 사단에게 조정당하는 세상에 빠지지 마십시오. 자신을 성결하게 지키므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에게 임재 하십니다.
6) 하나님은 교회에 임재하십니다.
사무엘 시대에 사무엘은 자신의 고향인 라마 나욧에서 신학교를 운영했습니다. 라마 나욧은 교회가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라마 나욧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충만했냐면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가 되었든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삼상 19장에 보면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피해서 라마 나욧으로 가서 사무엘을 만나고 그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 소식을 사울이 듣고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군인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라마 나욧에 도착한 군인들이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윗을 잡지도 않고 사울에게 돌아가지도 않고 그곳에서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이 다시 다른 군인들을 보내지만 그들도 앞 사람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울이 또 세 번째 군인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의 임제를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이 직접 군인들을 이끌고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라마 나욧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재 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왕복을 벗고 벗은 몸으로 넘어집니다. 그리고 그는 하루 반을 넘어진 상태에서 누워서 일어나질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강하면 육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청년 중에 한 명이 제게 안수를 부탁했습니다. 안수를 받고 그 청년이 넘어져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그 청년의 표현을 빌리면 쪽팔려서 일어나고 싶었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며칠 후에 그 청년이 다시 와서 제게 안수를 부탁하면서 “목사님 살살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얹었는데 그 청년이 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사울이 넘어졌던 것과 동일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겔 48장에 보면 하나님의 다른 이름 하나가 나옵니다.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입니다. 거기가 어디입니다. 그 앞에 보면 성전의 식양이 나옵니다. 거기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올라갔던 것입니다.
지금은 성전이 성도 개인의 몸을 말하지만 구약의 성전은 교회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함께 하십니다 마 18:20에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입니다.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건물에서 매주 정해진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에 우리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모이기는 해도 주님의 이름이 아닌 우리들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우리의 모임은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려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 길에서 몸이 얼어서 오돌 오돌 떨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몸이 따뜻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길에 그냥 서 있으면서 몸이 따뜻하기만을 바란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난방시설이 잘 된 실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곧 얼었던 몸이 녹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저를 만나려면 제가 있는 곳을 찾아오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찾아와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의 집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하게 임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별나게 사랑하셨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특별하게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시 84:2에 보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주의 집을 사모했으면 쇠약할 정도이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집에 가고 싶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시 84:10에 보니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전에서 문지기라는 천한 일을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천한 일이 없습니다. 청소를 하고, 주방에서 봉사를 하는 것은 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모두가 거룩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교회는 교인들이 세우게 하십니다. 노아의 방주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수고해서 만든 것입니다. 성막도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헌금해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많은 헌금을 가져오니 나중에는 그만 가져오라고 말려야 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헌신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경기도 한 도시의 교회에 있었던 아픈 이야기입니다. 6.25직후 미군 부대 옆에 있는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해 오셨습니다. 교인들이 많지도 않은데 교인들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충성도 전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이 두 분이었는데 그 두 분이 서로 패거리를 만들어 싸웠던 것입니다.
싸우는 것은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해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싸울 일이 있어도 싸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당은 다 찌그러져 가고 있는데 교회당을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교인들이 서로 싸우기만 하니 목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어느 주일, 목사님이 아픈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는데 막내아들이 교회학교를 마치고 뛰어나왔습니다. 초라한 검은 색 광목옷을 입고 구멍이 난 양말을 신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종을 칠 시간이 되었는데, 아빠가 종을 치면 예배 시간에 늦을 것 같으니 네가 좀 쳐 주렴.”, “알았어요. 아빠.” 그 아들이 종 줄을 잡고 종을 쳤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종을 칠 교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이 기쁜 마음으로 종을 치고 집으로 뛰어가다가 과속으로 달려오던 미군 부대의 차에 치었습니다. 아이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목사님은 그것도 모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설교를 하고 있는데 교인들이 빨리 마치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무언지 모르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내려가니 아들이 차에 치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죽은 아들을 본 사모님은 졸도했습니다.
미군 부대의 장군이 부관들을 데리고 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운전병이 실수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자 교인들이 목사님께 이때 한몫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입니다. “장군님, 바쁘신데 이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내 아들이 죽은 것은 장군님 부대 운전병의 실수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아들을 데려가신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리고 간곡히 부탁드리는데 내 아들을 친 운전병을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실수로 그런 것이니 너무 꾸중하지 마세요.”
완전히 주님으로 사는 목사님이라 아들이 죽는 아픈 일을 당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미군 부대의 장군이 감격하여 “세상에! 이렇게 귀한 분이 계시다니, 이렇게 향기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계시다니…….”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장군이 부대에 돌아가 참모들을 모아 놓고 목사님의 말을 전하며 부대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의논했습니다. 그때 참모들이 찌그러진 교회를 새로 지어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대에서 목사님과 의논도 하지 않고 교회를 허물고 거기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봉헌식에 총회와 노회의 임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모여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봉헌 예배를 뜨겁게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로님이 목사님에게 교회 열쇠를 드리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열쇠를 갖고 강단으로 올라가다가 중간에 멈추어 서서 덜덜 떨며 울었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장로님, 어서 올라오세요.” 그래도 장로님은 올라가지 않고 여전히 울기만 했습니다. “장로님, 그러지 말고 어서 올라오세요.”, “목사님, 저는 여기에 서 있을 자격도 없고 열쇠를 목사님께 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장로이지만 교회 부흥을 위해 일하기는커녕, 성전 건축을 위해 일하기는커녕 싸움만 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목사님의 아들이 희생 제물이 되어 교회가 세워졌는데 제가 어떻게 열쇠를 목사님께 드리겠습니까?”
목사님도 울고, 모든 교인도 울고, 손님들까지 다 울었습니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내려가 장로님을 모시고 올라와 장로님을 꼭 껴안았습니다. 그 후 교회가 귀하고 아름답게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은 우리 교회 가운데 강하게 임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든든히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스는 “장차 종교는 있으나 성령이 없고, 교회는 있으나 예수가 없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 되시는 주님께 순종하고 머리 되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7) 하나님은 임재의식을 가지고 살면 임재 하십시다.
요셉이 잘 했던 것이 임재의식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는 사람은 없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를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며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장로교를 만든 칼빈은 “30센티 앞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리교를 세운 웨슬리는 “집에서 늘 내 옆에 의자를 둔다. 왜냐하면 내 옆에 주님이 계시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살았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에 남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시 143:6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마른 땅에 물을 뿌리면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십시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구요한 목사님의 글에 실린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여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았던 로렌스 형제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로렌스 형제로 알려진 니콜라스 에르망은 17세기 초에 불란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수도원의 주방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 영성가다.
수도원에서 식당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 힘썼던 로렌스 형제는「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에서 크리스천이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죄에서 보호되는 가장 쉽고 가까운 길은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느냐 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하나님을 나의 생각과 영혼의 모든 느낌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주했다. 지정된 기도 시간 중에 나는 시간을 들여 묵상하고 읽기보다는 우리가 믿음의 빛으로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진리와 성품을 묵상했다. 예수님 자체를 묵상함으로써 나는 내가 항상 그분 속에 거하기로 결정한 이처럼 사랑스러운 분에 대한 나의 지식이 더해갔다.”
“하나님의 위엄에 완전히 몰두하여 나는 부엌에 내 자신을 가두었다. 거기서 내가 할 일을 다한 후에 나는 혼자 남은 시간을 기도에 몰두했다.”
“기도의 시간은 실제로 일하기 전과 일한 후에 가졌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며, 주님의 뜻에 의해 저는 외부의 일을 해야 하므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주님의 임재 속에 거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와 함께 일하셔서 제가 최선의 일을 하게 해주옵소서. 저의 일과 저의 사랑을 사랑의 제물로 받아주옵소서.”
“일을 하는 동안 나는 항상 주님이 마치 나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주님께 계속 말을 하곤 했으며 주님께 나의 일을 바치고 도와주심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일이 끝났을 때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점검하곤 했다. 만일 잘한 일이 발견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만일 잘못을 발견하면 낙심하지 않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난 후 주님 속에 거하면서 일을 계속했다.”
“이렇게 매일 주님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연습을 계속하고 잘못하면 즉시 주님의 용서를 구하였기 때문에 한때는 어려웠지만 지금의 나에게 주님의 임재는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계신 주님에게 계속 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반복적인 임재 훈련을 통해서 주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사십시오. 계속적인 임재로 인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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