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3장 15절(개역개정)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여러 가지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신자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주인이시고 신자는 종입니다.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신자는 양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신자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신랑이시고 신자는 신부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신자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가 왕과 백성 혹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 더 가까웠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 혹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더 가깝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다양한 표현 중에서 집과 집의 주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크게 2가지를 다루겠습니다. 첫째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집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4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 천국이 하나님의 집이다. 요 14:2에 보면 주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천국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 1:12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로 믿으십니까? 아멘인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집에서 삽니다. 제 두 아들은 저의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의 집에서 살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구천을 떠도는 혼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 후에 갈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집입니다. 믿는 우리는 죽음 후에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요 14:1-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천국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는 죽음 후에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 가게 됩니다.
2)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다. 눅 2:49에 보면 주님은 주님을 찾아 헤맸던 마리아를 성전에서 만나신 후에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구약적인 성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성전 제도가 개혁되었기 때문입니다. 요 2:21에 보면 주님의 육체가 성전이라고 했고, 고전 3:16에 보면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성전이라는 말과 우리가 성전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성전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성도가 하나님의 집이다. 성경 히 3:6과 고전 3:16을 보면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여기서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히 3:5,6을 봅시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5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충성했고 6절에 보면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의 충성이 우리를 위한 충성이었고, 예수님의 충성 역시 우리를 위한 충성이라는 말입니다. 놀랍죠! 그리고 감사하죠! 여러분! 저는 저의 집에서 삽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에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에 사시고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믿는 내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안에 사시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믿는 우리를 집으로 삼으시고 믿는 자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4)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다. 바울은 디모데전후서를 통해서 디모데에게 목회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저를 따라 합시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다. 우리 비전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천국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집이고 교회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2.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오늘 두 번째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입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집보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건물보다 인간의 모임보다 그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분입니다.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은 주인의 뜻을 따라 되어져야 하고, 집 안의 살림도 모두 주인이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누가 남의 집 일에 간섭을 하거나 주인의 뜻과 상관없이 가구를 배치하려고 한다면 주인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은 주인의 뜻대로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면 하나님은 교회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여러분의 집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누가 그것을 채워야 합니까? 여러분이지요.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스데반은 행 7장에서 설교 하면서 ‘광야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후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광야에서 40년을 거했습니다.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나갈 때 급하게 나갔기 때문에 며칠 먹을 양식 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간 먹고 입는 것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광야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비전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필요도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저는 빌 4:19의 말씀을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가 제 집을 돌아봐준다면 저는 그 분을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기회가 된다면 저도 그분 집을 섬겨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지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일에 헌신한다면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기뻐하시죠. 그리고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반드시 은혜와 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를 붙잡아야 한다. 본문에 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고 진리의 터전입니다. 이 말은 교회가 없는 진리는 없다는 말입니다. 기둥이 없는 건물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터 없는 건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입니다. 교회 없는 진리는 없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입니다. 교회 없는 진리는 없습니다. 진리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요 14:6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진리가 아닙니다. 교회의 간판을 걸었으나 오직예수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혼합주의를 주장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은 교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교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스는 “장차 종교는 있으나 성령이 없고, 교회는 있으나 예수가 없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런 교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요 17:17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성경을 버린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을 붙잡는 교회가 참교회인 것입니다. 성령님이 진리이십니다. 사도요한은 “성령은 진리니라”(요1 5:6)고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가 참교회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이크가 마이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전류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전류가 차단된다면 이 마이크는 마이크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마이크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떠나신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몸 안에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생명이 떠난다면 사람의 몸은 고깃덩어리에 불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교회의 역할, 성도의 역할을 하려면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교회가 무너지고 신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님이십니다.
3)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라. 사 56:7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1:17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를 원형교회라고 합니다. 원형교회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오리지널교회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교회가 힘썼던 일이 기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 1:14에 보면 성령을 기다리던 성도들이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행 2:42에 보면 성령 받은 후에 초대교회의 신앙의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초대교회는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따라합시다.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다” 행 6:4에 보니 사도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도들도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고 교회의 지도자들도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로지 기도에 힘을 쓰는 신앙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신앙,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어려움을 만난 분들은 교회에 오셔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원 가실 필요 없습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집입니다. 평신도들 가운데 신앙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니시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교회생활에 충실하십시오. 교회에서 기도하고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를 통해서 진리 위에 서게 되면 다른 배움이 필요 없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던 시대였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 말고 브닌나라는 아내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브닌나는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브닌나는 늘 한나의 마음을 격동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나는 당시에 법궤가 있던 실로에 갑니다. 그리고 주의 집에서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한나에게 자식으로 주셨습니다. 인생의 캄캄한 밤을 만난 분들이 있다면 교회로 오셔서 기도하십시오. 시 134을 봅시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여기 보면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밤은 시간적인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만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밤을 만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집을 찾으십시오. 3절에 보니 그렇게 인생의 밤을 만난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찾으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라 시 84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절에 보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하나님의 집에 너무나 간절하게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으니 몸에 병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주의 집에 가고 싶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4절에 보면 다윗은 주의 집에 있는 자가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6절을 보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복을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하기 때문에 샘을 만나고 비가 내리는 것은 큰 복입니다. 10절을 보면 다윗이 주의 집의 가치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의 집을 궁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집에서 하루가 세상에서 천 날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또 악을 행하며 집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주의 집에서 문지기처럼 하찮은 일을 해도 주의 전이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면 집이 좋아집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집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미워지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집니다. 집에 들어가도 바로 집에서 나가고 싶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의 전을 사모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얼마나 사모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자꾸만 찾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증거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습니다. 행 2:46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을 찾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아니요’라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해보시기 바랍니다.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히 10:25을 봅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마지막 시대의 특징 중에 하나가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모이기를 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반복해서 몸에 익힌 버릇을 말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는 것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이유든 교회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면 신앙이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를 만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자기도 모르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세우실 때에는 사람의 협력을 필요로 하십니다. 방주를 만드실 때에는 노아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성막을 세우실 때에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성전을 세우실 때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땀과 눈물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전 3:9에 보니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밭을 가꾸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은 밭에서 곡식이 자라도록 씨를 주셨고, 때를 따라 태양도, 바람도, 비도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노력할 때 밭에 곡식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땀과 눈물, 우리의 헌금, 우리의 봉사를 원하십니다. 저를 따라합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비전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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