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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세의 영성

모세의 영성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민수기 12장(개역개정)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11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12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1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15 이에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십보라가 죽은 후에 모세는 구스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구스 여자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한 잡족 중에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구스는 지금의 에디오피아를 가리킵니다. 이 여인은 아프리카 구스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이 일로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모세의 형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아마도 아론 보다는 미리암이 적극적으로 비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말을 많은 하지 않습니까.
정황으로 볼 때 모세는 미리암의 공격에 대해서 저항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3절에 보니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미리암의 공격에 대해서 모세는 묵묵히 온유하게 반응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회막으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일반 선지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주의 종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통 선지자들에게는 환상이나 꿈으로 하나님을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인정할 만큼 충성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셨고 은밀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신 후에 진노하시고 떠나셨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요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비방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의 몸에 나병이 발하게 하셨습니다.
영적인 관계는 육신적 차원에서 보면 안 됩니다. 주의 종을 육신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로 따지고 실력으로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크기로 목사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주의 종이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 종은 나이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사자로 봐야 합니다.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주의 종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주의 종을 대할 때 아주 조심해서 대했습니다. 왕하 13:14에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리면 누구든지 그 행색이 초라해집니다. 엘리사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전에는 대단한 역사를 일으켰었지만 지금은 초라한 모습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눈물을 흘리며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라고 했습니다. 왕도 주의 종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영적인 권위를 인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변 아주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개척교회 목사라고 우습게보면 안 됩니� � 주의 종은 어디까지나 주의 종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과민반응을 보이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동생이 이방인과 결혼한 문제로 누나가 동생을 비방 좀 했다고 나병에 걸려서 죽어간다니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면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을 떠나신 후에 모세를 비방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미리암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 살이 반이나 썩어서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의 종을 원망하거나 대적해서는 안 되겠지만 혹시 그런 일이 있을 때 절대 앞장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보면 늘 주의 종을 원망하고 비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특별히 앞장섰던 사람들은 즉각적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불이 삼키기도 했고, 전염병으로 죽기도 했고, 땅이 삼켜버리기도 했습니다.
미리암이 나병에 걸려 죽게 되니 놀란 아론이 모세에게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조금 전까지 모세를 비방했던 아론이 미리암이 나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보니 놀라서 모세에게 ‘내 주여’라고 합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라 하나님께 미리암을 고쳐주시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미리암을 치료해주셨습니다.
모세가 자격이 없는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던 이방인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엡 2:12,13을 봅시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자격 없는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모세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서 저에게 모세의 영성의 특징 몇 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영성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습니다.

1. 넓은 마음
모세의 영성의 특징 첫 번째는 넓은 마음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우리 둘째 아들은 농담으로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가끔 합니다. 엄마 아빠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 아빠를 놀리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인종이나 피부색에 대한 차별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문화에서 30년 정도 살던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 생활을 하면 불필요한 일로 인한 충돌이 많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문화적 충돌이 분명히 있습니다. 서로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깊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던 분의 아들이 일본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날마다 부부싸움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그 부부에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서로 이해가 쉬운 한국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선민의식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큰 벽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의식이 형성되어가는 초기였지만 선민의식 사상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리암은 ‘어떻게 유대인이 이방인을 아내로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선민의식의 틀 때문에 마음이 좁아졌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민족이나 피부색이 문제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성결하게 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그 말은 유대인들을 화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감히 이방인들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거짓말 때문이었잖아요.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는 이방인들에게 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방인이 성전에 들어오면 죽어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방인들에게 좁아져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계 7장에 보면 하늘의 예배가 나옵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144,000명도 있었지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찬양을 합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넓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좁은 마음으로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도 생각하고 이웃의 유익도 생각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창 14장에 보면 4개국 연합군이 소돔성을 공격해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가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집에서 훈련시킨 군사 318명을 데리고 연합군을 쳐서 승리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찾아서 돌아오다가 영원한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소돔왕에게 연합군이 탈취해갔던 모든 것을 돌려줍니다.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재물은 아브라함이 갖고 사람만 돌려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재물을 소돔왕에게 돌려줍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 사람들에게는 큰 은인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재물을 가져도 그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모든 재물을 소돔왕에게 돌려주었을까요? 창 14:23을 보면 그 이유가 나옵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혹시라도 소돔왕이 ‘아브라함이 저렇게 복 받은 것은 내가 양보한 재물 때문이! 다’라고 할까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엄청난 재물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 15:1에 보면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넓은 마음으로 재물을 포기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은 정말로 아브라함에게 방패로 지극히 큰 상급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넓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자기의 작은 유익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큰 상급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어떤 모임에 참석 하면 좁은 마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더군요. 때로는 제가 좀 손해가 되는 요구가 있어도 저를 희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재정적인 손해이든 자존심을 내려놔야 하는 경우이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공동체를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실 것입니다. 좁은 마음을 넓히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 온유함
모세의 영성의 특징 2번째는 온유함입니다. 3절에 보니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다고 말씀합니다. 온유한 모세는 온유하신 우리 주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 11:29에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함이라는 말은 따듯하고 부드럽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아나우’라는 단어인데 ‘가난한, 고통 받는, 겸손한, 온유한’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온유함이란 고난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온유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말은 주인의 말을 잘 듣습니다. 주인이 좌로 가라고 하면 좌로 가고 우로 가라고 하면 우로 가고 서라하면 서고 달리라고 하면 달리는 말이 온유한 말입니다. 야생마는 길들여지지 않아서 온유하지 않습니다. 기수가 올라타도 기수의 말을 듣지 않고 펄쩍펄쩍 뜁니다. 기수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이런 말은 온유하지 못한 말입니다. 신앙생활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성경을 모세오경이라고 합니다. 모세오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이 모세오경을 보면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을 잘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세오경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다는 말씀이 46번이나 나옵니다. 모세가 자기 생각대로 했던 일은 제가 알기로는 딱 한 번입니다. 46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만 하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충성되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본문 7을 보십시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하나님이 그의 충성을 인정하셨던 이유는 그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모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순종을 잘했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데서 왔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출 33:11을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34:10에 보면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날마다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모세를 통해서 순종의 비결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기계가 움직이려면 동력이 필요합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연료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순종할 수 있는 영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력을 어떻게 얻습니까?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 잘 하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힘쓰십시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사는 길이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힘쓸 때 영적인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잘하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중보
모세의 영성의 특징 세 번째는 중보입니다.
모세는 자기를 비난하여 나병에 걸려 죽어가는 미리암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3절을 봅시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미리암을 진 밖에 이레 동안 가두게 하신 후에 다시 회복시키셔서 진 중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중보기도 때문에 살아났고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미리암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내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시거나 심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받으시고 마음을 돌이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시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우리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도 중보자라고 믿는데 그 믿음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딤전 2:5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두 분이 아닙니다. 한 분이십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이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 14:6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행 4:12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아멘. 저를 따라합시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우리는 몇 주 전에 강남구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우리교우들이 많이 참석은 못했지만 참석해서 유월절과 관련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그 컨퍼런스에 참석한 후에 연합집회의 좋은 점 몇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신선한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듣지 못했던 메시지를 들으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좋은 점입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로서 좀 걱정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강사의 잘못된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사 중에 아주 저명하신 목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분은 회중에게 절기에 대해서 너무나 명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솔직히 주강사의 강의보다 훨씬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 가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첫 열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분은 첫 열매는 보리의 첫 열매만 첫 열매라고 한다고 했는데 성경과는 좀 다른 내용입니다. 민 18:12을 보면 보리만이 아니라 기름도 포도주와 곡식도 있다는 것입니다. 민 18:13을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날 이 선교사라는 분이 기도에 관한 특강을 했습니다. 그분은 정말 말을 잘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을 빨아드리는 어떤 강력한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내용도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영성적인 깊이는 좀 의심이 생겼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강의 중에 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힘주어서 말했던 내용 중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날 강의를 들으신 분들 중에 기억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실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롬 8:34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또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롬 8:26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전 솔직히 그분의 강의를 듣고서 말은 잘하지만 실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 잘 포장 되어있지만 실제가 아닌 말의 포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우리의 중보기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들이 중보기도자로 서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하지만 중보기도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중보기도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엡 6장에서 전신갑주를 소개한 후에 엡 6:18,19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은 목회자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중보기도자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겔 22장에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고관들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겔 22:30,31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멸망을 받을만한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기 전에 먼저 찾으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사람들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찾지 못하자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쏟으셨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밑바닥까지 다 드러난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선장과 선원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제가 이 정도이니 세상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인터넷을 보면 온통 판단과 비판과 비방의 글과 기사들이 가득합니다. 페이스북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믿음의 사람들이나 정부와 대통령을 비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은 비방할 때가 아니라 기도할 때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비방을 그치고 자중하며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일이 있을 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비판하고 비방하는 일을 멈추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많은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비판하고 비방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세처럼 중보의 영성으로 무장하고 중보기도자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모세와 같은 중보기도자들을 많이 일으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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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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